[05/6월] 고려대학교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고려대지부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고려대학교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고려대지부

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이혜은
사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해미/민중언론 참세상 김정우

(intro)
아직 푸른 새벽안개가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전국시설관리 노동조합 고려대지부(이하 시설노조 고대지부)의 일터 이야기를 취재하러 고려대학교 자연계 캠퍼스에 들어섰다. 길 물을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한 게 평소 보아온 활기찬 대학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드디어 이학관이라는 커다란 건물 강의실을 청소하고 계시던 민영애 부지부장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강의실, 화장실, 교수연구실 등을 따라다니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시설노조 고대지부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용역회사는 6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라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일을 다 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는 이르면 새벽 4시부터 나오고 보통 5시쯤 일을 시작해야 되요. 학생들 강의실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이랑 강의실 청소를 다 해놔야 하니까. 그렇다고 퇴근을 빨리 하는 건 아니고요. 지난 번 설문조사에서 1인당 평균 500평을 관리한다고 하는데 더 되는 거 같아요. 어쨌든 뛰어다니면서 일해야 돼. IMF 전에 둘이서 하던 것을 지금 혼자 하려니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쓰레기 모으고 바닥 걸레질을 하시느라 땀방울이 송송 맺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말씀하신다. 강의실 책상 서랍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종이컵과 과자 봉지 등의 쓰레기들을 보니 나도 학생 때 무심코 쓰레기들을 놓고 나왔던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오전 9시까지 맡은 영역 청소를 끝내고 아침식사를 겸한 1시간의 휴게시간을 갖고 다시 화장실, 복도 및 빈 강의실 청소 등을 한다. 이런 평소 업무 외에도 방학기간을 이용한 건물 내 대청소와 학기 초에 있는 인사이동시의 추가적 업무로 노동 강도가 강화되나, 한 번도 별도의 추가 수당이 지급된 적은 없다.

고용승계 투쟁으로 세워진 노조

시설노조 고대지부는 현재 미화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교 및 자연계 캠퍼스에서 157명이 가입된 상태이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10년 이상 고려대에서 일해 온 장기근속자들이다. 노조 설립은 2002년 고려대 학생들의 학내 미화노동자 실태조사로부터 시작된 연대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2004년 그동안 쌓여온 학교와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면서 이루어졌다. 고강도의 노동을 하면서도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567,260원이라는 당시 법정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미화노동자들이 종전 용역회사와의 계약은 만료되었으나 재입찰 시기가 늦춰지면서 고용한 회사 없이 일만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졌던 것이다. 결국 학생들과 여러 사회단체들과의 연대활동으로 전원 고용승계 원칙, 생활임금 보장, 체불임금과 추가수당 보장 등의 원칙을 세워 노조를 만들게 되었다.

일한 만큼만 줬으면 좋겠어

시설노조 고대지부 노동자들이 현재 노동조건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저임금이었다.
“일이 힘든 거는 몸으로 때운다 쳐도 임금 적은 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문제잖아요. 제발 일한 만큼만 줬으면 좋겠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똑같은 일 하면 똑같은 대우를 해줘야죠. 임금 차별만큼은 하지 말아야지. 노동자들 월급 조금 받는다고 물건 싸게 파는 데가 어디 있어요, 물가는 다 똑같은 건데… 출근 일찍 한다고 해도 수당도 없죠. 아마 수당 준다고 하면 더 일찍도 나와서 일할 걸. 우리 미화노동자들… 이게 천한 일이잖아요. 누가 나 청소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 없을 거야. 그래도 천하고 힘든 일이면 더 대우를 해줘야 될 거 아니야. 특별대우는 못해줄 망정, 일한 만큼도 대우를 안 해주니…누가 월급 얼마냐고 물어 보는 게 젤 창피해. 처음 여기 들어와서는 어디 가서 38만원 받고 일한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노조가 생기고 나서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이라도 받게 됐지, 전에는 40만원 받고 그랬었어요.”

2005년도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641,840원이다. 그러나 이 금액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각종 학내 행사에는 마치 물 쓰듯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학교가, 새벽같이 출근하여 쾌적한 면학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는 학내 미화노동자들의 생활임금 보장에는 고개 돌리고 있는 게 지금 학교의 모습인 것이다.

매년 이맘 때면 시작되는 고용불안

“이제 6월 말이면 또 재계약을 맺어야 돼요. 이때부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죠. 이번에 전원 고용승계가 되어야 할 텐데…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고 그러면서 매년 이번에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심정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고대 100주년 기념행사 한다고 연장근무 해가며 10년 된 건물 천장이고 뭐고 안 닦은 데가 없고 건물 벽이랑 바닥에 잡초 다 뽑고 해도 막상 잔칫날 우리 자리는 없어요. 아무리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똑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차별해서 되겠어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직접고용은 현재 노조의 최대의 과제이다. 저임금에 노동강도 강화, 고용불안이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노조가 있으니까

“그래도 노조가 생겨서 많이 달라졌어요. 그나마 못해도 법정 최저임금은 받게 된 것도 노조가 있으니까 그런 거죠. 우리는 매년 재계약하니까 퇴직금도 1년에 한 번 받는데 노조 생기기 전에는 10개월, 11개월 일시키고 내보내면서 퇴직금도 안 주고 그랬어요. 이제는 1년 못 채워도 한 달에 5만원씩 계산해서 퇴직금 다 받을 수도 있게 됐어요. 연/월차 휴가도 3일이지만 생겼고 전에는 휴게실도 바퀴벌레 우글거리고 도저히 식사시간, 휴식시간에 쉴만한 곳이 못 됐는데 이제는 깨끗하게 고쳐줬고요.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자신감도 없고 그래요. 남들이 인간대접도 안 하는 것 같고… 우리 보고 웃기나 해요, 인사나 해요? 그저 우리는 땅만 쳐다보고 청소나 하는 거예요. 그러다 노조가 생겨가지고 우리 목소리 낼 수 있고 어려운 점 바라는 점 얘기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전에는 너무 힘들고 억울하고 어떨 때는 나쁜 놈들 만나서 성희롱 당하고 그래도 어디 말도 못했어요. 얘기할 데도 없고.”

‘그래도 노조가 있기에 아무리 못해도 최저임금은 받는다‘며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 50% 적용, 올 최저임금 815,100원 쟁취를 내걸은 민주노총의 최저임금투쟁에 함께 할 계획을 말씀하시는 부지부장님의 기대에 찬 모습에서 조직된 노동자의 힘과 앞으로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아침 주요업무가 마무리된 시간, 교문으로 밀려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수많은 학생들이 진리와 지식을 배우고 학습하는 교육의 공간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시켜주는 시설노조 조합원들. 이제는 그들이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며 학교를 구성하는 당당한 주체 중의 하나로 서서 하나하나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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