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월/특집1] 직업병이면 그냥 직업병이다

일터기사

[특집1]

직업병이면 그냥 직업병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김형렬

지난 5월 10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 13명은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 적응장애’라는 질병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고, 근로복지공단은 ‘노사갈등으로 인한 문제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지난 2000년부터 4년째 노동조합에 대한 감시와 차별 등 노동탄압을 계속해 왔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정신적 질병을 얻었다고 판단되어 산재요양신청을 한 것이었다. 공단측은 조합원들의 질환이 “우울증상을 수반한 적응장애”로 인정되고 노사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요인도 인정된다고 말했지만, 이를 업무상질병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탄압으로 인한 노사갈등은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본 것이다.

현재도 사업주의 명백한 고의에 의해 발생한 노동자의 질병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우선 당해 노동자에게 산재보상을 해주고, 이후 사측에 문제가 있다면 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노동조합이 민사소송을 통해 사업주에게 정신건강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런 방식이라면 이미 백여년 전에 만들어진 사회보험은 그 근간이 흔들린다. 근로복지공단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대표적인 사회보험이다. 어느 사회이건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에 앞서 산재보험을 먼저 시작한다. 산재보험의 기본적인 사회적 협약은 산재처리의 신속성에 있다. 사회적 약자로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산재가 사업주 책임으로 발생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적절한 치료시점을 놓치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산재보험에서는 사업주의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산재노동자에게 직업병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이루어낸 협약이다. 노동조합 탄압에 의해 정신질환이 발생했다면, 노동조합활동과 조합원의 업무가 고용관계 내에서, 회사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는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우선, 질환에 대한 산재승인을 하는 것이 산재보험의 기본 정신이다. 전문가에 의해 제시한 의학적 진단에 대해 기업주의 입장을 고려하는 정치적 행위는 근로복지공단의 기본 업무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산재보험의 정신에 어긋난 것이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직업병 논란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노동자들을 비롯하여 최근 KT상품판매노동자들의 노동탄압과 노동 감시로 인한 정신질환의 발생,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공황장애 등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청구성심병원에서 근로복지공단은 노동탄압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을 산재로 승인한 바도 있다.

직업병이면 토를 달지 말고 직업병이라 말하면 된다. 왜 거기에 기업에 대한 고려, 경제에 대한 고려가 들어가는가? 실제로는 직업병인데, 현재는 아니다? 혹은 국가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직업병이 아니다? 직업병은 직업병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지금 신경써야 할 부분은 직업병 발생이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는 예방대책을 내오는 것이며, 장기요양에 대해 강제치료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산재환자들이 제대로 치료 받고 조기에 복귀할 수 있는 좋은 치료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다. 직업병을 아니라고 우긴다고 직업병이 줄지는 않는다. 제발 탁상행정에 머물지 말고, 현장의 노동자를 찾아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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