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신2]
서울경인지역 인쇄지부 성진애드컴분회 분회장 이진훈
서울 을지로에는 ‘인쇄골’이라는 인쇄 밀집지역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크고 작은 인쇄소뿐만 아니라 인쇄에 관련된 소규모 영세 업체들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등은 남의 일이겠거니 여기거나, 아예 그러한 법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기본적인 인권조차 무시당하며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곳에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발달해가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인쇄관련업체가 이 성진애드컴 같은 소위 ‘합판집’이라는 곳입니다. 방문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의 인쇄기획사로부터 인쇄물 주문을 받고 주문 받은 많은 인쇄물을 한 데 몰아 싼 가격에 인쇄를 해서 다시 주문지로 배송을 하는 업체입니다.
성진애드컴은 이 지역 인쇄골에서는 제법 규모가 있는 업체이기도 합니다. 주문 받은 인쇄물을 외주 줘서 주위의 많은 인쇄소와 인쇄 후 가공업체들과 협력업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하는 직원 수가 약 75명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복지나 인권이 무시되어 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근로기준법조차도 무시되어 왔던 곳입니다. 식사시간에도 자기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했고, 밥 먹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또는 전화기를 들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더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나이 어린 사장 아들이 과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손님이 있건 없건 직원들에게 “야! 자!”, “이 새끼 저 새끼”하며 고함을 지르고 온 회사를 휘휘 젓고 다니곤 했다는 것입니다. 방문 접수를 하러온 손님들조차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손님들은 안중에도 없냐’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던 곳입니다. 정말로 사장과 사장아들이 이 회사에서는 왕처럼 군림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이곳에 2004년 5월 29일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지요.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노조에서 처음으로 요구했던 것이, 직원의 인격이나 인권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했던 사장 아들에 대한 문제 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에서 노동조합 사례가 별로 없던 터라 처음에는 회사에서도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교섭을 합시다.’ 했더니 노동조합이 생기면 회사가 망하느니 마느니 해가면서 교섭을 거부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섭자리에 사장이 나오더군요. 노조측에서는 계속해서 사장 아들의 횡포에 문제제기를 했고 기본적인 근기법을 지키라며 요구를 했습니다. 이에 회사는 사장 아들이 조용하는가 하면 허겁지겁 식사를 해야만 했던 식사시간을 1시간으로 늘려주었고, 비로소 점심을 회사 밖에서 먹을 수 있게 됐지요. 연,월차도 생겨나고 해서 노조의 당연한 요구에 마침에 회사가 수긍을 하는가 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갑자기 노무사와 변호사를 고용해가며 취업규칙을 새로 만들고, 생리휴가를 쓰려면 생리증명서를 떼어 오라는 미친 짓을 시작했습니다. 한 마디로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 주장에 대해 ‘감히 니들이 사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냐’며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징계와 회유, 부서 이동을 일삼았고 단체교섭에서는 계속되는 말 바꾸기로 진행을 가로막았습니다. 또한 을지로 지역의 인쇄업체 사장들에게 노동조합이 생기면 안 된다는 바람을 넣기도 했다는군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합원과 비조합원들을 분리시켜 조합원들의 자리를 한쪽으로 몰아놓고서는 감시카메라를 집중 배치하는 등 감시의 끈을 계속 조여가면서 노동조합의 와해를 위해 부당 발령을 서슴치 않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조합은 회사측의 부서이동을 거부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지노위에 냈던 쟁의행위 조정신청의 ‘조정 불성립’으로 2005년 1월 11일 파업투쟁에 돌입하였습니다. 이 때의 조합원 수는 해고자 1명을 포함해서 11명이었습니다. 직원 인격을 존중하라며,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며 노동조합의 깃발을 세웠던 처음의 마음을 가지고 분회 조합원들은 파업에 돌입하였습니다. 파업에 들어서면서 투쟁하는 많은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연대의 힘이, 적은 인원이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성진애드컴 현장 안에서는 일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이 많아지는 시간을 이용해서 객장농성을 하는 부분파업 전술로 회사 측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측에서는 5월 초 한쪽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또 한쪽으로는 조합원들 모두에게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가 하면, 업무방해로 고소를 하는 등 이 참에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쓰러질 노동자가 아니지요! 가소롭게까지 느껴지는 회사측의 행동에 노동조합은 5월 4일 성진애드컴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천막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천막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쇄골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 열악한 을지로 인쇄골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승리하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한 달 보름여 동안 천막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지요.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투쟁하라!’ 천막의 외침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 외침이 성진애드컴만의 문제로 승리와 패배를 가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을지로 지역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외치는 함성이 될 때까지 천막은 그 자리를 지켜낼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올 것이고, 지랄같은 장마비가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천막 안에서 투쟁을 외치는 목소리가 있는 한 천막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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