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월] 98년의 그 ‘열대야’

일터기사

[문화마당]

98년의 그 ‘열대야’
노동자의 힘 전주희

98년 4월17일, KBS 9시뉴스, 자막은 ‘대량해고 신호탄’으로 나오고, 건조한 뉴스 앵커는 “현대자동차 고용조정안은 전체직원 4만여명 중 8천여명 정리해고하겠다는 안입니다”를 빠르게 읽는다.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 <열대야>는 그렇게 시작되어 무려 3시간 15분을 철저하게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 더운 여름날의 투쟁을 기록하고 있다.

<열대야>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이근호 감독 역시 98년 부산KBS에서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는 곧장 카메라를 들고 2달 동안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반대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렌즈를 통해 함께 호흡했다. 이제까지 제작된 ‘노동운동’ 다큐멘터리와 판이하게 다른 영상문법을 구사하고 있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생존권 투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울산 현장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수많은 노동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토해내는 그 목소리를 여과없이 담아냈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를 충돌시키고 자신은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으며 지켜보고만 있음으로 시간을 유지한다. 어떤 편에도 자신을 동일화시키거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태화강 갈 필요 없이 청와대로 가야죠. 이 인부들 다 어디로 가겠능교.”라며 절박함만큼 투쟁의 의지를 표현하는 노동자, 노동조합의 파업철회 후 고통분담안을 발표하는(7월17일)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숙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김광식 위원장의 눈물, 그리고 기자회견 마지막의 비장한 한마디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가 가해진다면…(물을 마시며 잠시 침묵) 위원장으로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정리해고 통지서 보낸 반장 ‘집구석에 쫓아가서 도끼로 찍어죽이겠다’던 노동자, “여기서 내 해골이 부서져서…내 남편이 흘린 땀, 피가 억울해서도 못나갑니다… 제발 나를 밟고 들어오시오.”라며 온 몸으로 전경들을 막아내던 가대위 아주머니의 앙칼진 선동 뒤에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식당 여성조합원들의 밥주걱 선동, 위원장의 직권조인 뒤 태워지는 사수대 옷들…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보여줄 뿐이지만 이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결론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관객 스스로의 결론내기를 유도하는 미덕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식당아주머니 조합원’들에 대한 감독의 인식의 부족함이다. 식당 여성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의 조합원이며, 정리해고 1차 대상으로 싸우고 있는 주체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 조합원과 분리되어있다. 그녀들은 한편으로는 투쟁하는 남성조합원들을 바라본다. 그녀들의 독특한 시선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놓친 것이다.

파업의 마지막 순간, 모두가 함께 정리해고 대상자였으며 파업의 주체였다가, 마지막으로 277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로 확정되는 순간, 그들의 대부분이 ‘식당 아줌마’가 되는 순간, 묘한 감정의 갈라짐은 없었을까? 남성 노동자들은 미안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파업기간 내내, 아니 그 이전부터 식당아줌마가 ‘우리 조합원’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던 남성 조합원들에게 이들의 정리해고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그것은 아마도 98년 현자파업이 끝난 후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1년이 넘는 완강한 투쟁에 대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반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지금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찾고 싶다. 그 때 카메라에 있었던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 끝까지 싸우지 못해 울분을 삭여야 했던 노동자들, ‘목숨 걸었던’ 위원장 이하 노동자들, 지금 다들 어디 있나?

17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