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포커스]
정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 송홍석
산재요양 중 노동자, 또다시 자살해…
근골격계직업병으로 산재요양 중이던 노동자가 요양과정 중 발생한 심리적 고통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에 의해 또 다시 사망했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고 이흥수 조합원은 2004년 3월부터 1년이 넘도록 허리 근골격계직업병으로 산재요양 치료를 받은 뒤, 지난 4월 현장에 복귀했으나 복귀 2일만에 통증이 재발해 병원에서 재요양을 받다 유서와 함께 실종된 뒤 지난 6월 30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통증이 없어 복귀하여 일을 시작했으나 재발병하였고 그로 인한 재요양 때문에 마음의 병까지 얻어 우울증, 무력감, 삶의 의욕마저 상실했다. 회사는 다녀야 하는데 남자가 병이 나서 돈을 못 버니 가족을 이끌어 갈 수 없어… 통증이 사라진다 해도 회사일을 하면 바로 통증 때문에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또 재요양할 수는 없고… 이만, 이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라’고 남긴 유서는 치료와 재요양과정에서 그가 느낀 심리적 부담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준다. 연이어 발생하는 산재노동자의 자살!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심리재활치료의 시급한 도입과 함께, 제대로 된 요양치료와 제대로 준비된 현장복귀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병원노동자도 근골격계질환 심각하다
작년 경북대병원에 이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직업병 실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5일 발표한 서울대병원지부노조에서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응답자의 83.4%가 근골격계질환을 호소하였고, 이 중 심각한 증상을 호소해 즉시 의학적 조치를 취해야 할 ‘질환의심자’는 27.3%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수치는 2003년 민주노총에서 실시한 금속제조업노동자의 질환의심자 비율 18.1%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병원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짐작케 한다. 조사된 주요 유해요인으로는 협소하고 부적절한 사업장, 환자 운반 및 취급에서 발생한 과도한 중량취급, 제한된 시간에 집중되는 노동강도와 과도한 작업량 등으로 파악됐고, 이에 따라 노조는 병원측에 부족인력 확충과 사무환경 개선, 근골격계 질환으로 진단된 노동자에게 산재인정 등을 요구한 상태다.
산재은폐, 산재다발 사업장 처음으로 공표
노동부가 지난 6월 13일, 2003년 7월 산업안전보건법상 공표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산재은폐 사업장과 산재다발 사업장을 공표하였다. 공표된 사업장은 산재은폐 사업장이 16개, 산재다발 사업장이 196개소였다. 그 이외에도 사망재해 2명 이상 발생 사업장 12곳과 중대산업사고 발생 사업장 4곳이 공표제도 도입 이후 두 번째로 공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표제도는 어떻게 운용되는가에 따라 다분히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의 전시행정으로 전락할 여지가 다분하다. 노동부가 산재를 줄이기 위한 확실한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는 공표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빠짐없이 공표되고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표된 산재은폐 사업장이 16곳에 불과하다는 점이 그런 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공표된 산재예방관리 불량 사업장의 명단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kilsh.or.kr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산재은폐 감소 위해 PQ제도 개선
한국안전연대 등이 지난 7월 1일 개최한 ‘산재감소를 위한 건설안전제도개선 세미나’에서 노동부는 재해율이 입찰에 결정적 영향을 주면서 산재은폐를 조장하고 있다는 PQ제도(재해율에 따라 정부발주공사 입찰에 가감을 주는 제도)의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즉 PQ제도에 재해율만이 아닌 산재은폐 건수를 포함하여, 재해율은 가점으로만 은폐건수는 감점으로만 부여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산안부장은 “건설현장에서 산재은폐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그 주범인 다단계 하도급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산재은폐시 처벌강화, 산재은폐적발시스템강화, 건설현장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산재보험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 열어
노동부와 경총이 그들 나름대로의 산재보험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국회의원 단병호, 노동건강연대 등은 지난 7월 6일 공청회를 열고 선보장 후평가, 산재심사평가원 독립, 재활급여 신설을 주내용으로 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산재 미인식 노동자의 구제를 위해 업무상재해 판정을 일차적으로 의사가 하고, 요양에 관한 최종결정은 독립된 제3의 ‘심사평가원(신설)’에서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 스스로 산재임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도 산재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동자를 진료한 의사가 환자의 질병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지(업무상재해분류표를 보고) 일차적으로 판단한다. 기존 공단의 산재승인 권한이 폐지되고, 공단은 의사나 재해노동자로부터 제출받은 산재신청서를 ‘심사평가원’에 전달하는 가교역할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은 의사의 판단에 입각하여 선보장 후평가한다. 즉, 의사가 업무상재해로 판단하면 그 즉시 노동자에 대해 요양급여를 실시하게 된다. 그 이외에도 재활급여(직업재활, 사회심리재활 등)신설, 사업주의 심사/재심사청구/행정소송 금지 등의 내용이 있다.
그러나 발제 이후 벌어진 토론에서 “모든 의사들에게 업무상 인과관계 판단을 일차적으로 수행토록 하는 것은 현재 의사들의 보수적인 경향에 비춰 실효가 없을 것 같다”는 등의 부정적인 의견이 개진되기도 하였고, 또한 개정안과 무관하게 공단의 ‘산재불승인의 남발’, ‘산재인정기준의 강화’, ‘까다로운 요양업무처리규정’이라는 현실의 벽이 존재하는 한, 그 높은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심사평가원 독립화’라는 제도 역시 애초 그 취지와는 다르게 형식적인 법제도적 틀만 남게 되는, 알맹이 없는 속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포커스]
노동부는 산재사고 은폐를 철저히 규명하라!
지난 7월 5일 경기도 부천 소재 두산위브 더스테이트(주상복합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형틀목수 유용만 노동자가 산재로 추정되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산중공업 사측이 이에 대해 산재은폐를 시도하였다는 것이며, 더욱 더 기가 찰 일은 이를 감독해야 할 관할 지방노동사무소가 사측의 진술만을 일방적으로 믿은 채, 수수방관하였다는 사실이다. 경기중부 건설노조에 의하면 당시 그는 지하 4층 엘리베이터 박스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고, 지하 4층 바닥에서 발견되어 낙하물에 의한 산재사망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사측은 그가 작업이 종료된 후 그냥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으나 결국 산재와는 무관하게 ‘심근경색’으로 인한 ‘자연사’로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두산자본이 산재은폐를 시도하였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유족측에서 찍은 사체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정수리부분과 뒷목, 등 뒤엔 곳곳이 상처투성이였고 일부 출혈자국도 있었다. 도대체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그가 어떻게 정수리부분에 상처가 나고, 옷이 찢겨나가고, 등 뒤가 긁힐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사측은 현장보전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경찰조사 전에 핏자국을 지웠으며, 사고당일 유씨가 착용한 것이 아닌 다른 안전모를 경찰에 제시했다고도 한다. 또한 함께 일했던 노동자를 밤 12시까지 붙잡아두면서 증언을 맞추었고, 병원 응급실의 의무기록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도 한다.
지난 6월 이미 노동부로부터 산재은폐 사업장으로 공표된 두산중공업 사측이 또다시 이런 산재은폐를 시도하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사실을 공표한 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사무소가 노조의 수차례의 사고조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노조가 노동부에 집회신고를 내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현장조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노동조합과 유가족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마터면 산재은폐를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소임이 될 뻔했다.
지난해 노동부 국정감사에서도 산재은폐행위가 심각한 수준임은 이미 지적되었고, 최근 노동부에서는 산재은폐 사업장의 명단을 공표하고,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수준을 강화하고, PQ(정부발주공사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제도에 변화를 주는 등의 산재은폐 대책방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분히 이런 형식적인 대책으로는 건설현장에서의 광범위한 산재은폐와 산재발생을 줄여나갈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산재은폐와 산재발생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이의 핵심적 원인이 되는 ‘건설현장의 다단계 중층 하도급 구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그들의 거침없는 이윤추구를 막기 위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뭉개버리는 한 건설노동자의 건강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노동부에서 공표한 산재은폐사업장 명단에 두산중공업은 STX조선, 현대자동차,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등과 함께 당당히도 그 이름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아직까지도 노동조합이 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두산건설 현장에도 적용시켜달라”는 경기중부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정당한 ‘단체협약’ 요구까지도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두산자본과 노동부의 건설노동자 안전과 보건에 대한 이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건설현장에서의 산재은폐와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요구한다.
– 노동부는 즉각 공개사과하고, 노동조합과 합동으로 전면 재조사하여 산재은폐의혹을 철저히 밝혀라!
– 근로복지공단은 고 유용만 노동자에 대해 신속히 산재로 인정하라!
– 노동부는 즉각 공개 사과하라!
– 두산중공업은 경기중부건설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하라!
2004년 7월 14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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