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월/요양자 이야기1] 요양치료 받기 참으로 힘들다

일터기사

– 요양 노동자 이야기 1 –


요양 치료받기 참으로 힘들다

심소보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91년에 얻은 직업병으로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다.

조립공정에서 일을 하다 어느 날 적재공정으로 옮겼다.
적재 하던 작업자가 왜 다른 곳으로 왜 갔는지는 알지 못했고 적재공정이 다른 작업공정보다 좀 여유로운 공정이고 한시적이라 해서 작업을 했다.
제품무게는 3-10kg정도는 손으로 20-50kg는 기계로 내렸다. 앞쪽에서 나오는 제품을 뒤에 있는 빠렛트에 옮겨 담는 작업이다.
작업시간은 주, 야 12시간 교대 작업이고. 야간작업에는 조립공정에 가서 동료들 작업까지 2시간 정도를 도와가며 일을 했다.
91년 5월 말경에 야간 작업때 누워 쉬고나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얼마나 놀랐던지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다리를 주물리고 꼼지락 꼼지락 하고나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아침에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디스크(추간판탈출증)가 심한 것 같다며 정밀검사를 받아 보자고 했다.


직업병으로 산재치료 받기는 멀고 험난하다.

다음날 회사 안전과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해서 회사 지정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는데 내가 먼저 다른 병원진찰 결과를 이야기를 해서 C/T촬영을 하게 되었고 결과는 4-5번간 추간판탈출증으로 나왔다.
그날 바로 입원해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15일후 쫓겨났지만 말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회사 동료를 병실에서 만났다. 동료는 이때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동료가 회사에서 다치거나 아프면 산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난 그때 산재처리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고민을 했었고 그게 바른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회사에 산재신청을 요구했다.
회사는 알았다며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고 나는 찾아다니며 계속 요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는 노동부에서 산재처리를 담당하고 있을 때라 노동부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 모른다. 창원에서 마산 끝까지 한 주일에 회사, 노동부를 찾아가서 요구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6개월이나 지나서 산재승인을 받았다.
그때까지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병원까지 매일 택시를 이용했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면 다리가 마비가 되어있었고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목욕탕과 수영장을 내 돈으로 내고 다녔다.
급여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그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끝까지 싸워서 우리회사에서 직업병 산재 1호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회사가 그렇게 공상으로 하자고 했던 것 같다. 그 뒤에 몇 사람이 허리 병으로 산재로 했는지 공상으로 했는지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요양노동자는 몸의 아픔을 잊기도 전에 자본과 정권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1년 4-5개월 정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노동부에서 강제치료종결 통지서가 날아왔다. 환자를 한 번도 만나거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은 인간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있나 싶어 다시 노동부로 찾아가 담당자와 엄청나게 싸워서 두 달 더 치료를 받고 회사로 복귀했다.
복귀해서도 한 달을 제조부 사무실에서 관리자들과 아침마다 싸웠다.
내가 다 낳아서 스스로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겠다고 했다는 내용으로 확약서를 써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재발하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회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써 줄 수 없다고 싸운 것이 딱 한 달이다.
아침에 관리자 4-5명과 나 혼자서 마주앉아 다투다가 일과를 시작했고 다툼이 끝나면 1-2공장을 다니며 우리 공장구경을 마음대로 하고 다녔다.
그때부터 직장(반장)과도 엄청나게 싸웠다.
그래도 내가 잘못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고 쓰지 않고도 1달 만에 원직에 돌아가게 되었다.


근골격계 직업병은 언제나 재발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13년이 넘어서 다시 통증이 오기 시작해 검사결과 디스크(4-5간 추간판탈출증)와 협착증으로 나왔다.
협착증이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증상은 5분정도만 운전을 하면 하지 떨림증상과 마비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하는 수 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 수술을 권했지만 거부해서 이제 다른 병명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산재신청을 하면서 문제가 된 것은 협착증과 작업과의 관계였다. 협착증은 뼈가 석회화현상이 일어나면서 생긴 것이다.
내 주장은 4-5번 디스크로 인해서 뒤쪽에 있는 뼈가 힘을 받으면서 생긴 것으로 주장했고 산업의학과 의사가 그럴 수도 있다며 그렇게 진단서를 받아서 옥신각신하다 승인을 받았다.
이제 치료종결을 하면서 공단에서 특진을 가라고 했지만 치료를 더한다고 해서 통증이 없어질 것 같지가 않아서 몸 상태가 궁금했지만 바로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복귀 후 노조에서 만든 산재환자 복귀프로그램에 따라 산업의학과에 가서 근력테스트를 하면서 증상과 통증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한 결과 불절성 불안정증이 있다고 했다.
15도에서 22도 사이에는 본인이 고정술을 결정한다고 했고. 나는 17.5도이고 아직은 참을 수 있는 통증이라 수술까지는 아니지만 근력을 키워서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력이 떨어지면 고정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생활해가는 동안 계속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욱신거리는 허리를 사용하는데 많은 제한을 가지고 있으며 또다시 언젠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삶이 즐겁지가 않고 어떤 일을 할 때는 항상 허리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과 소극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 우울하기만 하다.

(다음호에도 ‘요양 노동자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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