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월] 2006 학생포럼 후기

일터기사


“노동자의 삶과 건강” 포럼을 들은 후

2006 학생포럼 후기 1

한노보연 학생회원 정호연

3월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당시 일터편집과 독자사업기획으로 2주에 한번씩은 한노보연을 방문하면서 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해에 나의 아마추어리즘과 방향없는 열정이 연구소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생이란 신분이 연구실 사람들과의 만나는 시간, 대화방식, 금전관계, 맡은 일 등 모든 관계를 결정짓고 있었으므로 이름부터 고맙게도 ‘학생강좌’로 지어진 이 기획은 초안을 받아든 순간부터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학생교육의 필요성은 한노보연의 학생회원이 늘어나고 보건의료학생들의 숨, 매듭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학생으로부터 그리고 연구소 내부에서 요구되기 시작했다. 올해 초 민의련(민중의료연합) 해산으로 그들의 남겨진 성과와 일들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민의련이 ‘헬스클럽’등의 이름으로 구성해왔던 노동자건강 세미나를 강좌 형식으로 재시작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병원환자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매듭활동과 하이텍투쟁을 스치면서 내가 보고 있는 일들과 나 자신은 노동보건운동의 역사 및 현장의 틀에서 어디즈음에 놓여있는지, 왜 아파하며 왜 아파하는데 치료받지 못하며 왜 아프고 치료받지 못함을 호소해도 묵살되는지의 물음들을 간직하고서 딱딱한 투쟁의 언어가 아닌 알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배우고 싶어했던 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강좌처럼 남이 떠먹여주는 방식의 공부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5강으로 이루어진 초안만 봐도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그 군침 삼키며 기다렸던 요리를 급하게 먹어버린 지금의 나는 뭘까? 살이 좀 쪘을까? 공연히 배만 튀어나와 행동하기 힘들게 되지나 않았나? 떠먹여주던 유모의 역할은 아이가 씹어삼키는 것으로 끝이 났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구분하여 맞는 음식을 챙겨주던 센스가 있었지만 식사 후에도 유모은 어른인채로 아이는 아이인채로 남았다. 왜 노동운동의 조직율이 고도화될수록 현장성은 저하되는지 묻고싶었던 1강, 구체적으로 제시된 실천의제가 혁명과 전복이기보다 회복과 안정으로 다가왔던 2강, 비정규직은 알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볼 수 없었던 3강, 즐겁고 유쾌했지만 상상력이 우리는 예비의료인이라는 관점에 갇혀 아쉬웠던 4강.. 그 물음들을 듣지 못한 유모는 아이가 될 수 없었고, 여러 사안에서 자기의 의문점을 드러내고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유모의 언어를 듣지못한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없었다.
강좌로부터 남겨진 자료파일을 쳐다본다. 다시 공부해야지. 아직 내게는 한노보연의 책상 한 개와 그곳의 많은 책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없을 내년의 독자사업에서도 평소엔 느릿느릿 재밌는 이야기를 담지만 회의가 시작되면 날카롭게 울리던 학습지 노조언니의 말소리는 그대로일 것이다. 어린 문송면의 죽음, 힘들고 단조로운 일상에 잡힌 노동자들, 은행대출로 미래를 빼앗겨가는 나.. 무엇이 과거이고 무엇이 미래인가. 그 반대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휴.. 후기써야 하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시간도 늦었네@.@
강좌 잼있었어요^^ 담에도 같이(혹은 또다른 나와) 좋은 강좌 만들어봐요~


2006 학생포럼 후기2

한노보연 학생회원 이 소 은

언젠가 나의 오랜 변비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건 망할 놈의 제도 교육때문이라고 결론내린 적이 있다. 수업 사이사이의 10분 이하의 쉬는 시간동안 아이들로 우글거리는 화장실에서 쾌변을 보기엔, 내 대장은 너무 예민했던 것이다. 아침에는 급하게 일어나서 학교 가느라 바쁘고, 쉬는 시간은 짧고 화장실은 붐비고, 야간자습 때는 선생님들이 복도를 지키고 있고, 가끔씩 변을 누면서도 앞에서 기다리는 누군가 때문에 항상 중간에 변을 끊어야 했었다. 요새 가끔씩 통증도 꽤 있는걸 보면 치질도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건 진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병이 아닌가 싶었다.
조금은 사소하고 우스운 얘길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가 건강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그런 환경이 내 의지대로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쾌적하고 여유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하루의 너무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낼 필요가 없는 환경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 대장은 지금쯤 조금 더 건강하지 않을까.

사실 이전까지 ‘노동자 건강권’을 듣고, 가끔씩은 말해오면서도 이건 ‘그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고백한다. 굳이 문송면 군을 얘기하지 않아도, 원진 레이온의 노동자들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프레스에 잘려진 손가락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노동하면서 건강하기’란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부분들인데.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노동을 하는지, 작업장까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심야 노동을 하는지, 충분한 휴식 기간이 주어지는지, 아플 때 충분히 쉴 수 있는 조건인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작업을 거부하고 바꿀 수 있는지. 노동은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몸’을 구성하고 있었다.
병원 실습을 돌면서, 무릎 관절이 아파서 온, 대형 마트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는 환자에게 의사의 일시적 투약이나 ‘쉬라’는 충고가 얼마나 의미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밥을 꼬박꼬박 먹고 싶지만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고, 밤에 자고 싶지만 심야 노동을 하고, 기침, 가래를 줄곧 뱉으면서도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일해야 하는, 오래 쉬면 해고당할까봐 입원일을 줄일 수밖에 없는 환자들, 그 노동자들. 그들이 왜 건강하지 못한지를 개인적인 습관, 유전적인 요인들에서 찾아내려고만 하는 건, 단순히 약을 주는 것으로, 습관을 교정하라는 것으로 그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너무나 고의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노동 보건운동의 역사, 노동자건강권의 의미, 비정규직의 건강, 노동보건운동과 우리. 이제 의대 졸업을 얼마 안 남긴 상황에서, 이 포럼이 내 삶을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게 할까 궁금해 하며 첫 강을 들었고, 또 세 강을 더 들었다. 노동자 건강권이 무엇인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노동하면서 건강하지 못한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마 지속적인 고민들이 아직도 필요하겠지만, 오랫동안 고민하고 행동해왔던 이들의 얘기는 그만큼 많이 와 닿았던 것 같다. 이전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알고, 우리 몸을 지배하려는 자본의 논리를 간파하고(?), 노동과 건강에 대한 감수성과 상식을 조금씩 더 키워갈 수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동으로 인해 병을 얻어도 ‘산재’로 인정받고 치료받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1000명중 9명의 노동자가 재해를 당해도, 매일매일 수십명의 노동자가 죽어가도 외면하는 세상.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나의 몸이 원하는 대로 건강하게 바꿔나갈 수 있을 그날까지는 멀고 힘든 싸움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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