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월/특집1] 한미 FTA와 노동자 건강, 그 뻔한 결말 따져보기(2)

일터기사

특집1

한미 FTA와 노동자 건강, 그 뻔한 결말 따져보기(2)

한노보연 집행위원 해미

(앞의 글 먼저 보기)

줄어드는 공공부문과 복지

멕시코에서 나프타의 효과가 살인적인 노동착취라면 캐나다에서 나타난 효과는 공공부문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다.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자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인지라 이 자유를 침해하는 공적인 무엇은 전부 제재의 대상이 된다.

200년이나 넘은 캐나다의 체신청을 상대로 미국의 다국적 소포배달 사업을 하는 기업인 UPS가 불공정 거래라며 연방법원에 제소를 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유피에스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캐나다 체신청의 독점적 지위를 뒷받침하고 있어 소포배달사업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막고 있다”며 1억6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현재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7년째 계류중이다.

이 사례를 보다가 미국에 갔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머물던 동네에 번개가 전신주를 쳤다. 그로 인해 동네는 정전이 되고 말았다. 한 여름이었는데 에어컨도, 냉장고도 켜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 있는 도시였던 그 곳에서 전기가 다시 들어오는 데는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한국 같으면 공공서비스인 전력회사에서 신속히 수리를 해 주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업화라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하여간 자본이 국가의 공공보건서비스를 불공정거래로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서 국가가 보장하는 다양한 공공서비스가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6세 이하의 아이를 공공보육기관에서 무상으로 맡아 주어 보육에도 거의 돈이 들지 않던 캐나다는 올해부터는 연 1200달러 (우리 돈으로 100만원)의 정부보조금을 받던지 보육시설에 보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가 책임지던 ‘보육’을 개인의 영역으로 넘긴 것이다. 무상의료가 원칙이던 보건의료제도에도 예외가 생겨나고 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 받을 수 있는 ‘장사’가 되는 병원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교육비도 두배 정도 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지의 후퇴는 캐나다의 각종 사회통계를 보아도 잘 나타난다. 국내총생산에서 사회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3년에는 21.6%였다가 2001년에는 17.8%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치가 21.8%에서 20.8%로 줄어든 것과 견주면 캐나다의 감소 폭이 네 배 가까이 더 크다. 보건의료예산 등 각종 공공서비스 지출에서 미국과의 격차도 계속 좁혀지고 있다. 복지 천국,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캐나다의 신화가 나프타 이후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바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민영화 가능성이다. 사실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보험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도 산재보험도 모두 민영화되어 있는지라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험시장은 미국 금융자본의 가장 커다란 시장 중에 하나다. 돈이 없어 보험을 못 들어 고통 받는 민중이 아무리 많아도 비싼 보험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만 챙기면 된다.

지금 한국정부는 산재보험 재정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이른바 3대 독소규정을 내세우며 공공연히 산재승인도 안 내주고 요양을 강제종결 시키는 등 사회보험 본연의 임무를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미 산재보험이나 건강보험의 민영화요구는 자본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미국의 보험회사들이 우리의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에 대해 불공정거래라고 제소를 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닐까?

무너지는 환경규제, 유입되는 유해물질

자유무역협정의 ‘자유’는 기업과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무한한 자유를 뜻한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단어는 결국 ‘착취의 자유’에 대한 경쟁력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규제들은 ‘자유’의 걸림돌이 된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자유무역협정의 대표적 독소조항이 기업-정부간 소송권은 이미 그 유해성이 밝혀진 대표적인 유해 물질들의 유입조차 막지 못하고 있다.

1998년 7월 미국의 화학제품 기업인 에틸은 캐나다 정부를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소했다. 에틸이 생산하는 석유첨가제(MMT)를 캐나다 정부가 팔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나프타의 투자자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였다. 에틸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무려 2억5천만달러. 문제의 석유첨가제에 포함된 성분은 1920년대부터 이미 환경과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캐나다는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다.

나프타 중재기구는 캐나다의 환경규제 정책이 에틸에 영업손실을 끼쳤다며 캐나다 정부가 에틸에 1300만달러를 물어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배상액은 그해 캐나다의 환경 프로그램 운영예산과 맞먹는 액수였다.

나프타이후 멕시코로 옮겨지는 유해물질/폐기물에 대한 풍자 (출처:http://pages.zdnet.com/sartre65/wrack/id38.html)

지난 1999년, WTO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석면 수입 금지 정책을 추진하려는 프랑스와 지속적 수출을 추진하는 캐나다 정부와의 분쟁이 발생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백석면 백석면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면의 95%를 차지하는 것으로, 갈석면, 청석면 등에 비하여 발암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발암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갈석면, 청석면 등은 아예 수입이 제한되어 있으나, 백석면은 허가를 전제로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의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중이었는데, 캐나다 정부는 이 정책이 자유로운 무역에 불필요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정부를 WTO에 제소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백석면의 규제된 사용은 석면과 관련된 건강 영향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수입 금지 정책은 너무 과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건은 1999년에 발의되어 지리한 논쟁 끝에 2000년 11월에 캐나다의 제소를 기각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논의과정에서 분쟁조정위원회의 패널들은 시종일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 패널들은 백석면의 ‘규제된 사용’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려 하였다. 그러나 전문가 자문단 전원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캐나다의 제소를 기각하였다. 만일 전문가 자문단에 이들의 견해에 동조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본에 의해 어떤 때는 유해물질을 수입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수출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넘어와 대규모의 이황화탄소 중독을 유발했던 원진레이온의 설비들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나, 제 3세계에 공장을 확장하고 있는 한국의 거대 자본들도 사실 다를 것이 없다.

약화되는 노동안전보건규제, 기약 없는 이의 신청절차

나프타 체결 이후 국제사회는 부속협정인 북미노동협력협정(NAALC)의 체결로 퍼블릭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도입하며 노동·환경분야의 개선에 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평가했다.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의 체결 반대 여론에 나프타의 체결을 주저하던 클린턴 정부는 NAALC 체결을 조건으로 의회 승인을 약속했었다.

북미노동협력협정은 체결 주체국의 노동법의 엄격한 준수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강제권이 없어 중재는 무시하면 그만이고,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항목의 경우에는 7단계의 중재위원회를 거치는데 시간제한조차 없기 때문이다. NAALC에서 당사국들은 ① 결사의 자유, 조직화의 권리 보호 ② 단체협상의 권리 ③ 파업의 권리 ④ 강제노동의 금지 ⑤ 고용차별의 철폐 ⑥ 동등한 임금 ⑦ 산업재해 및 부상에 대한 보상 ⑧ 이주노동자의 보호 ⑨ 아동 및 청소년 노동의 보호 ⑩ 최저 고용기준 ⑪ 산업재해 및 부상의 예방의 11개 항목의 노동원칙을 ‘옹호할 것을 약속’하였다.

각각의 11개 문제에 대한 제소는 해당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노동시민사회단체들도 가능하게 하여 노동자들의 권리가 향상되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위의 11개 항목 중 1-3번 항목은 국가행정실과 각료위원회협의의 2단계를, 4-8번 항목은 앞서의 심의 단계에 2단계의 전문심의위원회 단계를 거쳐 총 4단계를 거치게 된다. 9-11번 항목은 앞의 4단계를 포함하여 중재의 3단계를 거치게 되어 총 7단계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문제는 어떤 중재가 들어오더라도 해당 정부가 안 받으면 그만이고, 중재를 심의하기 위한 각종 기구의 회의조차 소집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시간의 기약의 강제성이 없다보니 심의 기간은 한정 없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중재모임도 워크샵과 회의만 진행되고 세미나나 연구프로젝트로 귀결될 뿐이었다.

어떤 사법적 권한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해당 노동자를 참여시키는 제도는 전혀 없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다른 나프타 조항에 따라 사용자의 합법적인 부당노동행위가 더 늘어나고 노사간 힘의 불균형은 심화됐다.

더군다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문제는 자그마치 7단계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제에 대해 제소를 하고 이 틀 안에서 해결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멕시코의 경우 노동자들에 의해 제기된 소송이 28건이었는데 그중 7건이 노동안전보건제도와 관련한 문제였다. 멕시코의 노동안전보건 감독 기관은 멕시코 노동자의 계속되는 탄원과 제보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어긴 기업에 대한 감독과 제재를 시행하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체결이후 노동안전보건 감독기관의 예산을 동결했다.

규제완화의 폭풍, 죽어가는 노동자

이미 우리는 규제완화의 효과를 경험한 바가 있다. 노동부와 산자부가 공동으로 시행한 ‘산업안전보건 규제완화에 관한 타당성 분석 연구’에 따르면 93년 상시근로자 30인 이상의 경우 안전관리자를 선임토록 돼 있었으나 97년 ‘기업규제완화특조법’ 개정 시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바뀌었고 이 결과 50인 이하 중소기업에선 산업안전보건 규제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재해율 추이는 각종 제조업의 경우 98년을 정점으로 치솟았다. 97년 ‘기업규제완화특조법’이 전면개정되면서 산재 발생은 98년 대비 2004년 25% 증가, 재해자 73% 증가, 사망자 28% 증가, 경제적 손실을 추정하면 98년 7조2,500억원에서 2004년 14조2,9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멕시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발간된 국제인권연맹 보고서에 실려있는 사례들은 그 참혹한 상황을 실감하게 한다.

“우리는 화학물질 처리를 위한 적절한 작업도구를 제공받지 못했어요. 예를 들면 황산나트륨이나 알콜을 다룰 때 안면 마스크도 공기 정화기가 없었지요. 이들 화학물질을 들이마시면 건강에 악영향을 줍니다. 장갑이 없어 화상을 입기도 했어요. 며칠 동안은 화로를 광택제로 청소해야 했고, 안전장갑이나 시력보호를 위한 안경도 없이 부품을 청소해야만 했지요. 누가 이런 작업을 할지는 제비뽑기로 정했어요. 연기가 빠져나갈 배출시스템도 없었고, 있더라도 부실했어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노동자들이 이러한 작업환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요.”

2004년 5월 발표된 치후아후아(Chihuahua) 주 소재 멕시코 사회보장연구소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3~2003년 동안 주내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건수는 총 90,471개로, 하루 평균 50건의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중 40.7%가 마낄라도라인 시우다드 후아레즈시에서 발생하였다고 한다. 부문별 사고건수는 제조업 36,028건, 상업 16,500건, 사업서비스 10,788건, 그리고 건설업 8,788건이었다.

자본에겐 자유, 노동자에게 죽음과 절망을

IMF 당시, 우리는 속은 기억이 있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고 했고, 외자유치를 위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며 정리해고를 감내했고, 집에 있던 아이의 돌반지까지 기꺼이 내어 놓았다. IMF 직후인 98년 웬만한 회사들의 순이익증가는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정말 위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중소기업들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대자본들은 1년 만에 이전의 이익률을 회복했고 그 이후는 모두들 아는 것처럼 성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노동자들은 여전히 돌아올 수 없었고, 그들의 빈자리는 비정규직이 채웠다. 한번 무너진 평생 직장의 신화는 모든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으로 내몰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노동강도의 강화와 생산의 유연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FTA는 이런 상황이 100배쯤 크게 터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IMF는 정리해고라는 급격하고 양적인 방식의 구조조정으로 단기간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컸던 반면 FTA는 일상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장기간 진행될 충격이라는 것이다. 한 10년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누적효과가 느껴지는 그런 충격 말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우리나라는 두 나라의 어디쯤에 위치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발전수준이 다르고 사회구조가 다른 두 나라의 시장을 경제논리에 따라 합치는 것은 어느 한쪽에 재앙을 부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편하게 돈을 벌어들일지 고민한 자본의 뻔한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와 노동자 건강이라는 뻔한 얘기를 살펴보면서 ‘여기에 비정규 개악안과 로드맵이 합해진다면?’이라고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았다. 자본이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위해 모든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게 지금의 정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운동의 조직률을 약화시키기고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언제든지 노동자들의 단물을 뺏어 먹고 빠지는 게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 개악안을 도입하고 로드맵을 만들어 길을 닦아 놓고 FTA를 통해 외국의 거대 자본들이 들어와서 그냥, 착취만 하면 되는 구조다. 이 와중에 노동자의 건강은, 그리고 삶의 질은…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결과가 될 것이다. 거기에 온갖 유해물질이 들어오고 사회보험체계의 붕괴로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고 죽기 직전까지는 병원에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눈에 보인다.

자본의 자유는 한 번도 노동의 자유였던 적이 없다. 자본이 자유롭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자유롭게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FTA를 저지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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