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월/특집2]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일터기사

특집2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공공의약센터 권 미 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제약산업은 군수산업, IT산업, 금융업보다도 이윤율이 높은, 세상에서 가장 이윤율이 높은 산업이다. 그리고 의약품은 민중의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에 새로운 의약품 개발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이다. 즉, 의약품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수요가 점점 더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이윤율도 높은,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에이즈 때문에 죽는것이 아니다’ : 지난 6월 15일, 한국다국적제약산업협회(KRPIA)는 화이자, 브리스톨마이어스큅, 로슈 등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약제비 적정화방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장소에서 한 HIV/AIDS 감염인이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을 수 없어서 죽는 것이다”라는 영문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들고 제약협회의 기자회견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제약산업은 신약 개발에 관련된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한다.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특허’이다. 세계 의약품 시장 매출 순위 1위 제품인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Lipitor)’가 2004년 매출액만 108억달러(약 11조)를 기록했고, 화이자사 전체 매출(525억달러)의 1/5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특허’가 제약자본이 이윤을 창출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입증하는데 충분한 증거이다. 미국이 세계의약품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제약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위해 특허권강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FTA를 통한 초국적 제약자본의 요구

초국적 제약자본은 떼돈을 벌기위한 장난질을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FTA를 통해 지적재산권에 관한 세계규칙을 변화시키고, 의료시스템을 더욱 상업화하려 한다. 따라서 FTA를 통해 특허권의 강화뿐 아니라 각국의 의약품제도, 의료제도의 변화를 직접 요구하고 있으며, 제약회사가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고자 한다. 미국은 호주, 싱가폴, 칠레, 중앙아메리카와의 FTA에서 거의 똑같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했다. 아래 내용을 통해 태국-미국 FTA 6차협상에서 공개된 지적재산권 조항을 살펴보자. 한미FTA는 미국이 체결한 FTA 중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FTA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1. 독점기간을 연장하라 미제약자본은 특허보호기간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묘하게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 제약회사가 특허청에 특허출원신청을 하면 심사를 해서 특허승인을 해준다. 그리고 의약품을 판매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안전성, 유효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미제약자본은 특허심사기간에 대해 4년 이상, 판매승인을 받기위한 심사기간만큼 특허기간을 연장하라고 요구한다. 환자는 연장된 독점기간만큼 비싼 약값을 더 지불해야 한다.

미제약사의 독점기간을 연장시키기 위한 장난질 중 다른 하나는 의약품의 판매승인을 받을 때 제출하는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정보를 5년간 배타적으로 보호하라는 것이다. 태-미FTA나 CAFTA의 경우 ‘가’제약사가 미국시장에 신약 ‘나’를 판매하고 태국에는 판매하지 않을 경우라도 태국은 5년간 신약‘나’의 복제약을 승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태국 민중은 그 약을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5년 후 ‘가’제약사가 태국에 신약 ‘나’를 시판한다면 그 후 5년간 ‘나’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가’제약사에게 독점적으로 보호해 줘야한다. 즉 신약 ‘나’보다 싼 복제약을 복용하기위해 환자는 1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 특허권을 영구화하라 기존 의약품의 화학구조를 약간 변형시키거나 약의 용도와 용법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도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포함되어있다. 새로운 발명이 아니어도 임상용도나 용법의 변화에 대해 특허를 부여받음으로써 특허를 계속 연장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예를 들면 릴리사가 판매하고 있는 우울증 치료제인 ‘푸로작’은 2001년 8월에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자 릴리사는 푸로작이 월경증후군에 효과가 있다며 ‘세라팜’이라는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동일한 화합물이지만 새로운 치료용도를 발견했기 때문에 ‘세라팜’은 2007년까지 특허를 연장 받게 되었다.

골다공증 환자는 치료제와 함께 칼슘을 처방받기도 하는데, 유유산업이 내놓은 복합신약 맥스마빌정은 알렌드로네이트와 칼시트리올을 혼합시킨 것이다. 기존에 있던 성분 두 가지를 혼합함으로써 칼슘을 따로 먹어야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되었다는 극찬(?)을 받으며 2005년 한국신약대상을 받았고 특허청으로부터 100대 특허제품상을 받았다.

3. 제약자본의 독점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을 막아라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제3자가 그 의약품을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미국은 정부 이외에는 강제실시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요구한다. 그것마저도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 국가비상사태나 응급상황, 불공정행위를 시정하기위한 것으로 제한한다. 강제실시제도가 특허로 인한 제약자본의 독점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강제실시를 막으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되면 에이즈치료제를 싸게 먹기 위해 태국국영제약회사와 태국의 에이즈환자들이 강제실시를 청구했던 것이나 한국의 사회단체들이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에 대해 강제실시를 청구했던 일은 앞으로 불가능해진다.

4. 명확하지도 않은 특허침해 주장, 값싼 복제약 생산을 막아라 미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의약품을 허가해 줄 때 ‘특허침해여부가 있다면 허가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특허침해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사안이다. 실제로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권 중 무효로 판정되거나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진 사례가 매우 많다. 남희섭. 한미FTA저지 지잭재산권부문 대책위원회 대표. 의약품독점제도와 FTA. 2006. 6 그런데 미국은 특허침해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도 전에, 특허자료만을 가지고 ‘값싼 복제약을 허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5. 사람에게 이용하는 치료방법에도 특허를 인정하라 가장 비상식적인 장난질은 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WTO TRIPS)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인간이나 동물에 이용하는 진단, 치료, 외과적 과정을 특허화하라는 요구이다.

의사A가 복부를 절개하지 않아도 되는 맹장수술법을 개발했다고 하자. 의사A의 수술방법에 특허를 인정해주게 되면 다른 의사들은 이 수술방법을 의사A의 허락이 없는 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면 환자는 의사A에게만 이 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술비가 비싸질 뿐 아니라 오랜 시간 대기해야한다. 설령 의사B가 의사A의 허락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로열티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수술비가 비싸질 것이고, 위중한 경우에 일일이 의사A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과정은 환자에게는 병을 더 악화시키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유전자 치료나 환자맞춤형치료 등 신치료기술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유전자치료를 할 때마다 유전자 특허를 가지고 있는 제약회사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고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유시민 왈“한미FTA와 약제비적정화방안은 무관”
웬디 커틀러 “의약품협상결렬”선언

한국에서는 아직 의약품협상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둘러싸고 한미FTA 2차협상이 결렬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미FTA 의약품협상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5월 3일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발표한 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미FTA는 약값, 의료비 상승과 무관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6월 15일, 초국적 제약회사들로 구성된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환자들에게 신약 사용을 저해하고, 제약회사의 연구개발 투자의욕을 감소시킬 것”이라며 약제비적정화방안에 반대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한미 FTA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웬디 커틀러는 다국적의약산업협회와 똑같은 이유를 들어 의약품협상을 결렬시키는 초강수를 던졌다. 이들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미FTA 체결되면 약제비 적정화 방안 무력화

약제비적정화방안이란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비용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약만 보험등재를 해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가협상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것이 약제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와 제약회사에 대한 정부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그 자체로 한계가 있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왜냐면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요구를 FTA속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고, 그 파괴력은 약값상승, 약제비적정화방안 무력화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허승인과정만큼 특허기간을 연장할 것,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것, 강제실시 무력화 등을 통해 특허약의 독점기간이 연장되면 약제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약가결정에 대해 초국적 제약회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데, 정해진 약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독립적인 항소기구나 절차를 통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허침해여부가 있다면 의약품을 허가해주지 말라’는 요구는 의약품에 대한 평가기준을 안전성, 유효성, 비용에서 특허침해여부로 바꾸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한국측 협정문 초안 제 8장 투자조항에 포함되어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인데, 제약회사가 약제비적정화방안으로 인해 투자상의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또 약제비적정화방안이 ‘지적재산권으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을 침해’했다며 비위반제소를 해서 분쟁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유시민 장관은 한미FTA반대를 선언하라

결국 한미FTA는 직접적으로 약가폭등을 유발하고,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초국적 제약자본이 특허권을 강화하여 더욱 독점적인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제도, 약사법, 특허법 등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폐해를 낳을 것이다. 웬티 커틀러가 의약품협상을 결렬시킨 것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쇼일 뿐이다. 유시민 장관이 <한미FTA→약값인상→약제비절감방안 마련>이라는 도식으로 한미FTA의 효과를 방어하고자 한다면 이는 너무 단순한 발상이거나 속임수에 불과하다. 유시민 장관이 한미FTA를 반대하지 않고 약제비절감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한미FTA의 파괴적인 효과를 은폐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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