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월/뉴스] 민주노총 노사정위 앞 농성투쟁 돌입 외

일터기사

민주노총, 산재보험제도발전위 논의저지를 위해 노사정위 앞 농성투쟁 돌입

산재보험법 개정과 관련해 민주노총이 배제된 채 정부가 임의로 노사정위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 (이하 발전위) 로 이관하여 막바지 논의하던 가운데, 8월31일 민주노총이 산재보험제도발전위의 논의내용 전면에 대한 폐기를 요구하며 여의도 노사정위 앞에서 ‘산재보험 개악저지, 노사정위 산재보험제도발전위 논의 중단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곧바로 발전위 논의저지를 위한 천막 농성투쟁에 돌입하였다. 발전위는 8월31일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공익위원들이 검토의견을 제출하였는데, 그 검토의견에는 사업주 이의신청권 (산재승인시 이의제기), 표준 진료지침을 통한 적정요양기간 설정(산재환자 관리), 각종 급여 지급의 제한 및 축소(휴업급여 2년 제한과 휴업급여 지급액 축소),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강제 적용과 노동자 보험료 부담 (산재보험은 사업주 의무) 등의 개악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발전위 논의 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하지 못한 사항으로, 31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부터 본격적인 토론과 조정과정에 들어간다. 이후 10월 입법 예고, 11월 국회 법안상정의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런 형태의 산재보험 개정안은 산재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산재인정을 받은 후에도 치료종결과 저임금의 열악한 요양조건에 취하게 될 것임이 예견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사업주의 ‘이의신청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을 망각하는 최악의 악법으로 전국적 대중투쟁을 통해 반드시 저지해야 할 것이다.

자문의사협의회, 또 주치의 소견 무시하고,산재불승인

공단이 자문의사협의회를 내세워 주치의 소견을 무시하고 산재불승인을 내리는 사례가 부산지역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부산지역 한 일간지에 의하면 벽돌을 쌓는 조적공으로 일했던 최모씨는 지난해 3월 아파트공사 현장에서 벽돌에 깔리는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 이후 최씨는 병원에서 뇌진탕과 경부염좌 진단을 받고 3개월 동안 치료 받았으나 사고 당시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수시로 자해소동을 벌이는 등 불면증과 정서불안 증세를 호소했다.

최씨는 몇몇 병원을 전전한 끝에 올해 3월 부산 고신대병원에서‘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취업이 100% 불가하다’는 소견서를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6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자문의사협의회를 열었고 그 결정을 그대로 받아, 주치의의 소견을 무시한 산재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직장을 구하도록 하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면서. 최씨의 보호자는 이에 불복하고 공단에 재심의를 신청하였으나 1차 심의 때의 위원들이 그대로 재심의까지 맡으면서 산재불인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지난달 정신불안상태가 심각해지면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최씨 보호자는“정신병동에 입원했는데 나가서 직장을 구하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공단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태도 사실은 2004년 말 자문의사협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산재승인의 장벽을 높여온‘내부지침’에 의한 것이고 공단 지들 나름대로의 규정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이 어찌 어처구니없는‘내부지침’이라 하지 아니 않겠는가?

노동부, 사업주에 재활사업 지원금 지급

산재노동자의‘재활’에 대한 산재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표되었다. 노동부의 발표에 의하면 9월1일부터 산재 장해인에 대해 직장적응훈련 및 재활운동을 실시하는 모든 사업주에게 3개월 동안 1인당 월 50만원(직장적응훈련 40만원, 재활운동 10만원) 이내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또한 산재 장해인 직장복귀지원금 지급요건이 현행 1년 이상 고용유지에서 6월 이상으로 완화되고, 지급방법도 직장복귀 1년 후 일시금(12개월분)으로 지급하던 것을 직장복귀 이후 매월 지급한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부의 법적 조치는 현재 논의 중인 산재보험법 개악안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재노동자의 ‘재활’관련한 정부와 사측의 입장은‘재활급여’는 신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대로 된 직업재활 및 사회재활을 위해‘재활급여’를 신설하기 보다는 사업주가 알아서 재활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과연 형식적인 보조금 지원 등의 면피용 정책으로 어느 정도의‘제대로 된 재활’이 가능할지 심히 의문스럽다.

스웨덴 노동조합연맹, 열악한 여성노동자의 작업환경 문제 제기

스웨덴의 노동자들은 노동법률 상 일년에 최소한 25일의 휴가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올해 7월 스웨덴 노동조합연맹인 LO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LO소속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지난해 말 LO가 출판한 “작업환경에 관한 연구-계급과 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LO소속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열악해졌다는 사실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LO소속 여성들의 병가휴가의 증가가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병가 휴가가 늘어난 이유로 상당수의 LO소속 여성 노동자들은 불규칙한 노동시간에 일하고 있고 또한 그들의 노동은 육체에 무리를 가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또한 작업시간과 환경에 대해 개개인의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사실도 지적됐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LO노동조합 대의원들은 작업 환경 문제를 노동조합 활동의 주요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상 한국노동연구원 해외노동동향에서 발췌)노동자의 불건강과 노동자가 처한 작업환경의 문제는 스웨덴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의 화두이다.

미국 노동자, 건강을 위해 “휴가 늘려줘”

미국의 시사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의 보도에 의하면 유럽 선진국보다 여름 휴가가 짧은 미국에서 휴가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 여성 노동자의 3분의 1이 전혀‘유급 휴가’를 갖지 못하고 있고, 남성 노동자의 4분의 1은 1주일 이상 휴가를 갈 경우에는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미국에선 최소한의 유급 휴가를 규정하는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휴가가 꼭 필요하다는 연구가 쏟아지면서‘노동시간 단축’과‘최소 유급 휴가법’제정을 요구하는 단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한다. 재충전되어 돌아온 노동자들이 일에 대해 더 창조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휴가기간이 긴 유럽노동자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대체로 미국보다 더 높다고 한다. 미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동자는 시간당 62.66달러를 벌고 프랑스는 54.03달러, 아일랜드 48.86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반면 미국은 47.42달러에 그친다고 한다.

생산성향상을 위한 휴가가 아니라, 일하는 이들의 몸과 삶을 윤택하게 할 ‘휴가늘리기’가 절실하다.

노동운동가 이정미 전 청구성심병원노조 위원장 별세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극심한 탄압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스총을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와중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조합원들을 챙기던 사람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위를 절제한 후에도 맨 밥 도시락을 싸들고 빈센트 병원의 파업장을 찾아가 조합원들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서 밥을 먹고, 장기 투쟁 중인 사업장의 콘크리트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던 그녀였다. 투병 와중에도 단 한번도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고인은, 지난 3월‘이정미 동지의 쾌유를 비는 후원의 밤’에 참석해“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꼭 살아서, 훌륭한 활동가로 살면서 이 고마움을 꼭 갚겠다.”고 약속했었다.” (공공연맹 병노협 보도자료에서 발췌)

노동운동가 이정미 전 청구성심병원 노조 위원장이 5년여의 위암 투병끝에 8월19일 별세했다. 98년 IMF 시기 청구성심병원 사업장에서는 임금체불과 노동조합 와해공작 등 부당노동행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고인은 이에 맞선 민주노조 사수투쟁을 열심히 전개하였다. 이 와중에 사측이 조합원 총회장에 난입해 식칼테러를 자행하기도 했으며, 위장폐업과 조합원 10인에 대한 부당해고를 자행했다. 그 해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13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으며 100일간의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 조합원 전원의 복직을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중소병원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몸소 절감한 고인은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방지거병원 투쟁 등 중소사업장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하였다.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던 2001년 4월 위암이 발병해 위절제술을 받았으나, 수술 이후에도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의 역할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 해야 했는데, 건강에 무리가 되어 보건의료노조 활동을 접을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과 같이 일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다시 활동할 것을 결심,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집단산재(정신질환)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한국 최초로 사측의 탄압에 의한 조합원들의 집단 정신질환 발병을 산재로 인정받는 소중한 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보건의료노조‘중소병원 담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의 미조직센타 활동 준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1월 위암이 재발하였고, 치료와 활동을 병행하던 2005년 10월 암이 악화되어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5년 9월 청구성심병원 당시 지부장의 분만휴가 기간 동안 노동조합 지부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직무대행 임금을 조합의 빚 청산에 사용하자고 제의하기도 하였다.

청구성심병원 사측의‘똥물 투척’과‘식칼테러’를 이겨내고‘10명의 해고자 복직투쟁’,‘13번의 부당노동행위 판결’,‘집단정신질환 산재인정’등 자본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투쟁을 이끌어 온 故 이정미 동지의 영면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항상 당당하고 치열했던 동지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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