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월/특집3] 투쟁의 끝과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

일터기사

특집 3

투쟁의 끝과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김병훈

작년 1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을 조직하고 진행하였는가? 과연 우리가 치열하게 투쟁했던 만큼 ‘적’에게 타격을 주었던가? 그리고 그 치열함에는 진정성이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던지고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전국적 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파편적인 투쟁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작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근로복지공단 3대 독소 규정 폐기 투쟁을 진행한 지역이 얼마나 있는지. 또한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투쟁이 3대 독소 규정 폐기의 전면적 요구를 가지고 진행된 것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작년 우리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을 통해서 공단의 폭력행정이나 독소규정 등에 대한 폭로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완강한 저지전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부터 산재보험개악 저지 투쟁과 3대 독소 규정 폐기 투쟁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투쟁의 중심을 잡아내지 못했다. 결국 노동부와 자본의 일정에 맞춰 우리의 투쟁이 진행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근로복지공단 항의 투쟁은 지역에서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파편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즉, 현실적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서 현장에서는 일상적인 근로복지공단 지사 투쟁을 진행하였지만 그러한 투쟁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실례로 자문의사협의회 참가 투쟁이나 무산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도 못했고 협의회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과격민원처리지침 투쟁 역시 마찬가지이며, 근골지침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3대 독소 규정 폐기 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또한 산재보험개악저지 투쟁을 진행할 수 있을까? 3대 독소 규정은 일상적으로 산재노동자와 현장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지만 그것을 돌파하려는 노력은 구체화되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의 경우 선전전, 토론회, 집회 등의 형식적 일정만을 중심으로 투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을 할 것이다. 실제로 노동안전보건진영에서 3대 독소 규정 폐기 투쟁에 대해서 일반 조합원들과 산재노동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조차도 하지 못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현실적 불이익을 막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그 판단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항변을 할 수 있지만 10년 뒤를 보고 현장에서 착실하게 준비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현장과 노동안전보건운동 활동가와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현실적으로 느꼈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작업장안과 밖에서의 전면적 공세

실제 근로복지공단 투쟁의 중심에는 자본과 정권의 노동유연화 정책과 노동강도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을 가지고 현장에서 투쟁을 세워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현장과 공단 투쟁은 따로 놀고 있었다. 투쟁을 전면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하고 일상적 투쟁은 개별적 노동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형태로 끝나고 말았다. 실제로 개별적 항의 투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으나 집단적 항의 투쟁은 근로복지공단의 근본적인 문제를 결국 아무것도 바꾸어 내지 못하고 역량만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다보니 노안활동가들은 단발적이고 개별적인 투쟁으로 인해 지쳐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3대 독소 규정 중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3대 독소 규정은 자본의 전술 중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공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근골예방프로그램과 2년 전 대우조선에서 연구하였던 적정요양기간이 실제로 노동부의 근골 지침으로 표면화 된 것이다. 즉, 대공장에서의 근골예방프로그램과 적정요양기간에 대한 것이 결국 일반화 되어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에 대한 전면적 투쟁을 조직해 내지 못하고 묵인하는 사이에 경총과 정권은 노동자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근골예방프로그램 시행이란 명목으로 거대한 ‘공화국’을 만들어놓았다. 병들거나 다친 노동자들은 회사 안에 갇혀 산재라는 이름으로 치료 받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리고 회사 밖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의 3대 독소 규정으로 인하여 산재 불승인과 강제 치료 종결이 자행되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산재로 나가는 것을 꺼려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부와 외부에서 자본과 정부는 동시에 현장 노동자를 포위하였고 노동자들은 강화된 노동 강도에 시달리더라도 아무 소리 못하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인가?

올해 초 위기감을 느낀 노동안전보건운동 활동가들이 모였지만 결론을 내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한 한탄만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부와 자본은 이미 3대 독소 규정을 넘어 산재보험개악을 준비하고 있지만 우리는 적절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상부단위의 지침이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현장에 다가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기만 하다. 더구나 상부 단위는 이미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정체된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과거를 계속 반복하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상투적인 말을 쓰기에는 안쓰러울 정도로 노안활동가들은 지쳐 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에 반해 자본과 정권은 굳건한 연대를 과시하면서 현장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과 정권은 과거 대대적인 노안진영의 공격을 받은 뒤 위기를 맞이할 정도로 절박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굳건한 연대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켰다. 우리의 공격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항간에 떠돌고 있는 정기 유해요인 조사 폐지는 저들의 자신감을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더 이상 노동진영이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의 표현인 것이다.

더 이상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가 노정간의 불안요소나 노사간의 불안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작용하더라도 이제는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 저들은 위기를 곧 기회로 만들었지만 우리는 기회를 위기로 만든 오류를 범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문제점은 이미 알고 있다. 자본과 정권의 굳건한 연대의 의도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넘어 최종 한미 FTA를 통해 자본의 이윤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그 중심에 바로 노사관계로드맵과 산재보상보험법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집단적 노사 관계의 틀을 자본의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어 내고 산재보상보험법을 통해 개별적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결국 자본의 착취를 별다른 저항 없이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인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저들에게 단발적이고 개별적 투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량을 손상시킬 뿐이며 패배감만 더할 뿐이다.

정권과 자본의 일정은 이미 나와 있으며 더 이상 일정 따라가기 식 투쟁을 진행해서는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힘이 없어 후퇴하더라도 조직적인 후퇴는 우리의 손실을 줄일 수 있으며 다음을 준비할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의 투쟁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시 현장으로 우리의 힘을 뻗어나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혹자는 상투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상투적인 것조차도 우리는 제대로 조직해내지 못하고 있다. 적들은 10년을 준비하고 우리와 싸우는데 우리는 한달뒤의 상황도 제대로 준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뒷받침이 되어 줄 곳이 과연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듯이 현장과 투쟁의 공간이 분리될수록 우리의 힘은 약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운동을 진행해야 하며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즉, 지역 운동을 더욱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과 지역간의 연대를 굳건히 하고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지역간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또한 현장에서 활동가들을 재조직하는 작업을 병행하여야 한다. 활동가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활동가들도 현장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그들의 투쟁은 파편적이고 조직되지 못한 채 개별화 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이 현장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함께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가 노정, 노사 불안정 요소로 자리 매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결국 정기 유해요인 조사 폐지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설문조사 토론회를 통해 여론화 작업을 조직할 것이 아니라 2002년부터 시작된 근골격계 투쟁을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가 유일한 대안이다.

노자간의 계급 대립이 가장 치열한 때는 임단투가 아닐 것이다. 노자간의 계급 대립이 가장 치열한 곳은 바로 일상적 노동이 진행되는 현장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결정이 난다. 자본은 노동자의 일상을 재구성하여 노동자의 몸을 통제하고 그를 통해서 노동강도를 강화시켜왔다.

이러한 자본에 맞서 우리의 노동자 건강권 투쟁 역시 노동자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일상화된 자본의 통제에 맞서는 투쟁을 다시 조직하는 것이 현재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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