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월/칼럼] 주목받지 못하는 노동운동, 벼랑 끝 일까 수렁일까

일터기사

주목받지 못하는 노동운동,
벼랑 끝 일까 수렁일까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임 성 규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없이 존립할 수 없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온통 노동자에 대한 압제와 탄압의 역사, 그리하여 반란과 혁명의 역사인 것은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착취를 근간으로 존립하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운동이다.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운동이 노동운동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운동만이 자본주의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유일한 저항과 도전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 부른다. 신자유주의는 그 동안 이윤보다 공익에 우선했던 공공부문 등을 경쟁시장으로 편입하는 것(시장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을 축소․배제하고 자본의 국경을 없애는 것(자유화), 마지막으로 노동비용 등 생산비용을 대폭 낮추는 것(유연화)으로 요약된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1997년 IMF를 계기로 마각을 드러냈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민영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던 기업의 구조조정과 초국적화, 노동시장 유연화…… 그중 핵심이면서 노동운동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파장이 큰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다. 1998년 정리해고제, 파견제, 시간제노동의 합법화에서 2006년 비정규악법과 노사관계로드맵의 법제화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노동운동을 의식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권이나 자본조차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한 850만 비정규직노동자들, 그리하여 비정규직이 같은 비정규직의 삶까지 서로 위협하며 갈등하는 구조!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7%수준, 그리하여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갈등하고 나아가 정규직노동자들의 전통적 임금인상투쟁은 아예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 사회개혁투쟁 어쩌고 하는, 사회적 여론과 국민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 전술을 구사해봤지만 주장만 난무한 채 몸을 움츠린 현장노동자들은 움직이지 않은 노동운동! 진보운동을 이끌어왔으나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히 추락한 노동운동!

노동운동, 이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벼랑 끝 일까, 수렁일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등장한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하고 그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준 신이다.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찮은 인간이 불을 사용한다는 것은 곧 신의 반열에 올라서는 격이다. 그러므로 신들의 입장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천기를 누설한 배신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는 암벽에 쇠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무자비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고통을 다 견뎌냈다. 잘못했다는 속죄의 말 한마디면 풀려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신화는 이 대목에서 인류에게 무엇을 귀띔하고자 했을까? “아닌 것”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다.
인류사회의 진보는 억눌린 자들의, 차별받는 자들의,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자들의 “저항”과 “도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생생한 기록이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알 수 없다 치더라도, 엄연한 기록과 함께 인간의 기억력으로 전해주는 근현대 역사는 분명히 그렇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중대한 고비가 있었고, “저항과 도전”이 엄청난 희생을 수반하고 수없이 패퇴하기도 했지만 역사는 꾸준히 진보해왔다. 역사는 앞으로도 도도하게 진보할 것이다. “아닌 것”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 계속되는 한!
이제 와 되짚어보니 프로메테우스와 그 밖에 신들이 끝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수없이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는 인류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었다. 특히 인간은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특히 인간은 “아닌 것”을“아니다!”라고 외치고 잘못된 세상에 대하여 끝없이“저항”하고“도전”하는 동물인 것이다. ……….“아닌 것”에 대한“저항과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저항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진보의 속도가 달라질 뿐 외치고 잘못된 세상에 대하여 끝없이 “저항”하고 “도전”하는 동물인 것이다.
현대 사회, 빈부가 세습되고 그 격차가 확대 고착화하는 사회, 노동계급 내 계층분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나 신자유주와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사회, 이 사회 역시 “아닌 것”에 대한 “저항과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저항하고 도전하느냐에 따라 진보의 속도가 달라질 뿐.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은 우리 사회의 “아닌 것”인 신자유주의를 향해 잠재하고 있는 거대한 “저항과 도전” 세력의 작은 한 줄기이다. 다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에 “저항과 도전”이 제대로만 조직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태풍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산별노조운동은 산별노조 건설이 끝이 아니라 그 건설 과정부터가 새로운 시작이고 차원이 다른 “저항과 도전”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신자유주의의 거침없는 행진에 제동을 거는, 산별노조 틀을 짜는데 우선하기보다 틀이 그 결과물로서 형성되도록 하는 공동행동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과거 전노협 시절을 돌이켜보건대,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착취가 쌓이고 쌓였을 때는 노동자들이 업종과 산업 구분없이 하나가 되는 저력을 보였었다.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으로 사는 한, 우리 노동자들은 결코 “저항과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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