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월] 열린 토론, 세상을 보다 – 인권강의를 듣고서

일터기사

열린 토론, 세상을 보다
– 인권강의를 듣고서

한노보연 회원 이 진 철

박래군씨는 이 동네에서 꽤나 오래 머물렀는데도, 난 동지라는 말이 어색하다. 왠지 내가 동지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좀 미안한 사람들도 있고 또 내 입에서 나오지만 실제로는 내 단어가 아닌 것 같아 입이 불편하다. 박래군씨는 예전에 인권운동사랑방 MT에 따라갔다 처음 보았다. 그 때 당시 느낌이 참 부럽고 좋았다. 부러운 것은 그가 그 엠티에 온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모두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었다. 연장자를 가장 많이 놀리며 즐거워하는 분위기 말이다. 이미 지난주에 한번 빠졌던 보건대학원 수업이 있는데도, 다시 한번 결석을 감행하며 연구소로 발걸음을 향한 것의 팔할은 그 때문이었다.

인권, 인권이라는 단어가 원래 세계 2차대전까지는 right of man 이었다고 한다. 남자들만의 권리였던 게지. 그게 human right로 바뀐 거다. 그러니까 인권이라는 단어는 결코 하늘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 예전에 조직운동에 골머리를 썩는 동기들을 보며, 후배는 하늘이 내리니 고민하지 말라고 위로했었는데, 그와 다르게 인권은 세상이 만들어가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권은 보편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구체적인 시대 조건속에서 매번 새롭게 규정되어 가는 거라는 거. 그게 오늘 강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 아니었을까?

인권, 여성, 생태, 평화. 박래군씨가 제시한 4가지 개념이다. 맥락을 떠나서 그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외우기로 했다. 다만 아이구 전 소장님이 제시한 것처럼, 그게 어떠해야 하늘에 붕붕 떠다니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조직하는 힘으로 될 수 있을까. 어찌되었건 다함께 바라보던 세상이 있던 때가 지나갔는데, 공유하는 전망이 없고 그래서 방황하는 사람들.

방황, 난 전망이 없어서 방황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람 사는게 그런 것 아닐까. 인간은 그 알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학생시절 활동을 할 때도 누군가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속에 조직의 이야기를 숨기고 활동하는 사람들에 힘들었던 적은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전망이 없어서 힘들어하는데, 난 왜 그럴까.

전망, 앞이 보이지 않아서 힘들다는 건데, 난 어린시절부터 캐릭터 자체가 앞이 잘 안보이는 데서 커 온 거 같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익숙하고 오히려 편안하기도 한 것 같다. 난 스피노자가 했던 우리 모두 내일 지구가 끝장나도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는 노래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낭만적인 유물론과 중세와의 단호한 결별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희망없이도 씨앗을 뿌리면서 살아가자 인간들아”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아니면 혹시, 학생시절에만 활동을 해서, 그것도 세상에 대한 책임을 덜 느끼는 소규모 단체 활동만 해서 그런 훈련-전망을 고민하는 훈련-이 안 되어있는 걸까? 아니면 덜 진지한 걸까? 그런데 그런 것에 익숙해 질 것 같지 않다. 그런 나도 진보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면이 어딘가에 있겠지. 그 부분에 있어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재천이형,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재천이 형과 이야기를 했다. 재천이 형을 처음 본게 8년전인데. 형도 나도 나이가 들었다. 어디 결석하는 법 없이 다니는 형이랑 오랫만에 한 지하철에 탔다. 형이 나보고 옷 싸이즈 XL냐고 물었다. 맞다고 했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더니 민주노총 소식지 봉투에 든 흰 티를 꺼내준다. 며칠전 산재노동자 체육대회에서 남은 티를 나 주려고 챙겨 논 거라고 한다. 자기는 내일 가서 받으면 된다고. 형이 많이 지친게 눈에 보여 좀 쉬라고, 배를 째기도 하라고 이야기 했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활동이 아니라 공부하는 일을 선택한 나지만, 그래서 실제 내 공부가 어떻게 쓰일지 잘 모르겠는 나지만, 먼 훗날에 다른 사람은 아니어도 재천이 형에게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재천이 형을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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