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월/이러쿵저러쿵]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일터기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한노보연 회원 김 보 언

언제부턴가 나는 엽기…스럽다, 그래서 엽기(?)간호사라는 말도 간혹 듣는다. 그건 내가 남들과 좀 다른 엉뚱한 면이 있어서인가? 다 인정할 순 없어도 일정 인정함은 내가 가진 상상이 가끔 현실에서 도발적으로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호흡기내과 병동근무만 7년째… 인공호흡기를 달고 하루하루 버티는 중환자들과 가끔씩 터지는 응급상황들은 그들처럼 담당간호사의 피도 타 들어가게 하고, 부디 오늘은 조용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근무에 들어선다. 그러한 힘든 상황을 버틸 수 있게 하는건 함께 도와주며 아우르는 동료들과의 우애였고 이는 서로간의 여유를 찾게 해주는 힘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스스로 내공(?)을 발휘한다는 엉뚱한 생각에 으쓱해하기도 했던 나다.
이렇듯 처음부터 엉뚱하고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2002년 지부 파업투쟁 이후 스스로 노동자임을 각성하고 일어난 많은 조합원들의 눈빛속에 희망을 보았고, 그래서 시작한 노동조합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후 많은 위기와 좌절,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며 나도 모르는 패배감이 나를 위축되게 했고, 결국 운동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만난 산! 그저 처음엔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에 매료되어 올라갔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즐거워 올라갔고, 새로운 경험이 되어 좋았기에 무작정 따라다니기만 했다. 미친 듯이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맘 한켠이 무겁고 힘들어 더욱 비워내고 싶어 오르기만 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산행으로 위안 받았고 산을 오를때에 가장 마음 편하고 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안식처였던 산은 어느새 자연이 나에게 주는 커다란 스승이 되었다.
그저 산은 말없이 품어주기만 했다. 산속에선 내것이 없고 니것이 없다. 넘치면 나누고 부족하면 받는다. 산속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차별이 없고 소유가 없다. 오로지 서로 의지하고 나누기만 할 뿐. 산에서의 나눔과 연대, 차별없는 세상을 배웠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과 자유로움도 가르쳐주었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말해 주었다. 그 모든 것을 품고 산 아래서의 새로운 세상을 다시 꿈꾸며 살며시 나를 내려 놓았다.

여전히 나는 엉뚱하고 엽기적인 것을 좋아한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눈뜨고 꿈꾼다. 운동과 활동에 대한 중심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찾아가는 중이다. 그동안의 공백시간은 한편 나에게 많은 자양분이 되었기에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풍요롭게 해주고 길게 호흡하는 활동으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점점 관성화되고 운동에 대한 긴장감을 잃어간다면 지금처럼 나직이 속삭이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를 찾으러 또 나서겠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런 자유로움을 선택하러…

내가 바람과 같은 자유로움을 선택한다는 것… 그 ‘선택’이란 강제하지 않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르는 것이고, 그 선택이 자유로운 쪽으로 나가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은 뭘까?
어디선가 들은 ‘선택의 빅뱅’이란 말이 떠올려진다. 빅뱅(big bang)이란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이란 물리학 용어이고 ‘선택의 빅뱅’ 은 한번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걸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경우가 있지만 선택의 빅뱅은 다르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틀이 한번 깨지면서 빅뱅이 일어난다. 즉 선택의 폭이 열 개에서 수백 개로 넓어질 수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상상인가? 내 안의 틀을 깨고 파괴할 때 자유로울 수 있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음을…

이제 난 내 삶과 운동의 방식에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을 선택하는 ‘선택의 빅뱅’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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