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월/특집1] 아시아 재해노동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 회의에 다녀오다

일터기사

아시아 재해노동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 회의에 다녀오다

한노보연 상근활동가 공유정옥

지난 9월, 난생 처음 대한민국 영토 밖을 사흘간 다녀왔다. “아시아 재해노동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ANROAV, 안로브)”에서 해마다 회의를 여는데, 그 회의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소개해달라는 거였다.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은 회의를 이십 일쯤 앞둔 시점. 부랴부랴 생애 첫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표를 사고, 발표할 자료를 만들고… 좌우당간 이놈의 인생은 뭘 해도 벼락치기인가.

다행히 혼자 가는 게 아니라서 어려움이 훨씬 적었다. 전직 삼성반도체 노동자이면서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은 유족인 정애정씨, 그리고 민중언론 참세상의 변정필 기자가 동행했다. 게다가 우리들 말고도 안로브 회의에 참여하러 가는 한국 분들이 계셔서 더욱 편했다. 잘 모를 때는 ‘묻어가는’ 게 확실히 편하다.

어쨌든 필리핀 마닐라에서 생애 첫 해외 여행을 별 탈 없이 마쳤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들, 그들과 함께 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저항의 세계화가 필요하다

공식 일정은 9월 27일 오전 전체 모임으로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이십 분 정도 발표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황유미씨의 죽음과 그 이후 지금까지 ‘반올림’의 활동을 소개한 뒤, 애정씨가 십여년간 근무했던 삼성반도체 현장의 노동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삼성을 소개했다. 경제는 물론 정치, 언론,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이 기업이 얼마나 크고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지. 한국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 아니라 “삼성 공화국(Republic of Samsung)”이라 한다고 말하자 다들 한바탕 웃었다. 영어로 말해본 적도 거의 없었지만, 영어로 사람들을 웃긴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다들 금새 얼굴들이 굳는 걸 보니, 이들의 웃음도 어이없는 현실에 대한 ‘썩소’였을게다. 요즘 우리들의 웃음처럼.

전체모임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저항의 세계화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했다. 작더라도 직접 함께 만들어보자고, 일단 내년 4월 28일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반도체, 전자산업 사망 노동자들에 대한 세계 공동 추모 행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반도체와 전자산업 문제로 투쟁한 경험이 있는 한국과 필리핀, 대만, 미국, 영국 정도만으로라도 일단 시작해보면 참 좋겠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남았다.

교육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전체 모임을 마친 뒤 진폐증, 전자산업, 피해자 조직화 세가지 분야에 대한 워크샵이 열렸다. 각자 원하는 주제의 워크샵에 참석하는 방식이었다. 전자산업 워크샵에 들어갔다.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는 전자산업 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대한 지식과 투쟁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라고 예상했다.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자리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열심히 참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중에 주최 측 사람을 만나 워크샵의 내용과 성격을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이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일방적인 교육, 대형교회에서의 설교처럼 앞에 선 강사는 좋은 얘기, 맞는 얘기를 줄줄 늘어놓고 정작 참가자들은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교육, 왜 이걸 알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교육, 강사에게도 고된 일 중 하나일 뿐 보람도 재미도 없는 교육, 이런 게 지금 한국의 소위 ‘현장 안전보건교육’ 아니던가. 그조차도 아예 실행하지 못하는 현장이 절대 다수인 지경이고 말이다.

이번 교육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교육의 소재와 주제를 정해두었을 뿐,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은 강사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점이다. 참여형 교육이라고나 할까. 그게 가능한 조건은 세가지였다. 첫째, 충분한 교육시간. 첫날 오후와 둘쨋날 오전, 꼬박 만 하루를 들일 수 있었다는 것. 둘째, 적당한 규모. 스무 명을 넘지 않아 참가자 모두가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셋째, 참가자들의 목적의식과 자발성. 그리고 이를 이끌어내고 격려하는 강사의 태도와 방식. 혼자만의 기억으로만 남겨두기엔 참 아까운 경험이었으니, 조금 자세히 소개해볼까 한다.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중요시하는 교육

제일 먼저 참석자들끼리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흔히 해왔듯 ‘고도리 방향으로’ 빙 돌아가면서 ‘어디에서 온 아무갭니다’라고 한마디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을 들이는 방식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되, 어디 출신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이번 교육을 통해 무얼 얻고 싶은지를 물어보도록 했다. 약 오분간의 시간동안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면서 한두 명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난 뒤, 자기가 인사를 나눈 상대방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새로 만난 친구를 소개했다. 소개 말미에 이번 교육에 참여한 목적을 말하면, 보조진행강사가 그 내용을 큰 종이에 받아적었다. 모두의 소개가 끝난 뒤, 강사는 미리 교육 목표를 적어둔 종이를 그 옆에 나란히 붙였다. ‘다행히도 우리의 목표가 크게 다르지 않군요’라면서.

교육은 시종일관 강사가 던지는 질문이나 과제를 참여자들이 스스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무얼 위해 이 자리에 왔는지를 아는 게 중요했다. 강사는 지식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답을 찾도록 정보를 주거나 격려하고, 발표 후 간단히 보충하거나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하나의 질문으로 더 깊게 생각할 기회를 만든다

첫 번째 주제는 작업장의 위해요인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우선 참여자들은 다섯 개 조로 나누어 작업장을 하나 정하고, 거기에 어떤 위해요인이 있는지를 토론했다. 토론 결과를 그림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것이 과제였다. 우리 조는 애정씨가 일했던 반도체 가공공정에 대한 위해요인 지도를 그렸다. 설비에 제품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들이마시는 화학물질 증기를 그렸는데, 애정씨는 그 위에 물음표를 그려넣자고 했다. 그 물질이 무엇이며 어떤 위험을 지닌 것인지를 모른다는 사실, 즉 노동자의 알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 자체가 또 하나의 위해요인이라는 의견이었다.

강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위해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참가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기반하여 다양한 답을 했다. 공장 노동자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위험하기 때문에, 현재 세대에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들에게도 해롭기 때문에,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을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에, 건강영향이 심각하진 않지만 광범위하기 때문에, 작은 노력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등등. 전체 발표가 끝난 뒤 강사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중요성을 토론해서 현장 노동보건활동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면 된다고.

둘쨋 날의 주제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세 개의 조를 만들어 강사가 제시한 메탄올, 아세톤, 자일렌 중 하나씩을 맡았다. 각 조에는 심장, 폐, 간, 위, 자궁, 뼈 등 온몸의 장기가 그려진 커다란 티셔츠 한 장와 스티커, 그리고 각 화학물질에 대한 두 종류의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제공되었다. 우리는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읽고 해당물질이 주로 어디에 쓰이는지를 알아내야 했고, 이 물질이 어느 장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여 티셔츠 그림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 작업을 마친 뒤, 각 조에서 한 사람이 티셔츠를 입고 다른 사람은 조사 결과를 모두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강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물질의 유해성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며 그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대부분 생식기능 장애 문제를 꼽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이 모습을 인상깊게 느낀 다른 이들과 그 이유가 무엇일지 토론해보았다. 아무래도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여성이 많기 때문에 불임과 유산으로 인한 고통에 더욱 민감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녀에게 선천적인 질병이나 기형이 생겼을 때 그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곤 하는 아시아의 가부장적인 문화도 한몫하는 건 아닐까.

우리 조에서는 자일렌의 유해성을 준비해서 발표를 했고, 내가 티셔츠를 입은 모델로 나섰다. 온갖 위험들 중 무엇이 가장 심각한 것 같냐고 강사는 내게 물었다. ‘간독성이 제일 심각하다. 나는 워낙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간을 다치면 안된다’라고 대답했더니 다들 박장대소다. 영어로 사람들을 두 번씩이나 웃기다니, 내 자신이 참 기특할 뿐이다.

사실 이런 방식은 한노보연에서도 익숙하다. 현장 근골격계 사업을 할 때 커다란 종이에 사람 몸을 그려넣고 아픈 곳에 스티커 붙이기를 하곤 했으니까. 한국을 비롯하여, 소그룹 교육을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다른 아시아 친구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다고 얘기를 했다. 영어가 짧아 제대로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재미있었겠다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친구들의 미덕. 땡큐 베리 마치였다.

역시나 교육의 마무리는 실천

워크샵의 맨 마지막 주제는 실천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세 조로 나누어 특정 주제를 잡고,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간의 실천 목표와 실행 계획을 세우라는 게 과제였다. 우리 조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반도체 현장의 노동자들의 인식을 높이자는 목표를 가지고 (1)여러 지역에서 소규모 길거리 선전과 전시 등을 시도하기 (2)다양한 시도들의 결과물들을 축적하기 (3)여기서 얻은 사진, 동영상, 글 등을 이용하여 인터넷 접근성이 높은 20대 여성 노동자들이 쉽게 내용을 알아갈 수 있도록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만들기, 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조들은 목표와 실행계획이 구체적이지 못하여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우리 조는 아주 좋은 계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은 과제는 이걸 진짜로 해내는 것이겠지.

“찡텐꾸언꽁쯔엉 밍텐꾸언쯔엉부”

마지막 날 오후에는 메트로 마닐라 지역의 “FAR ESTERN GARMENTS”라는 의류회사 노동조합의 농성장을 방문했다. 아시아에서 701번째 부자라는 사업주가 전체 인력을 비정규직화하기 위해 위장 폐업을 해서 백여명의 정규직과 5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31일부터 두달째 천막농성 중이다.

그나마 덜 더운 날씨라지만 그냥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덥고 습한 날씨였다. 농성장은 무척 초라하고 작았고 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천일 이천일 투쟁을 너무 많이 보아와서인지, 두달이라는 농성 기간이 처음에는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20년 넘도록 이 공장에서 옷을 만들어오다가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은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난 마음은, 투쟁을 이어온 기간이 2일이건 2개월이건 2년이건 마찬가지일 터.

각 나라에서 한명씩 나와서 연대사를 했다. 한국 일행들이 자꾸 나보고 나서란다. 이런이런. 복잡한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영어가 짧은지라 “한국에도 이와 같은 투쟁이 많고, 승리도 많다. 승리하는 길은 오직 단결과 연대 뿐이라는 노래가 있으니 노래나 한마디 하겠다”라고 짧게 말하고 단결투쟁가를 불렀다. 한국 일행들이 함께 불러주긴 했는데, 음을 너무 높게 잡아서 엄청 악을 써야 했다.

연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만에서 온 여성활동가가 가르쳐 준 구호였다. “오늘 너희가 공장 문을 닫는다면, 내일 우리는 정부의 문을 닫겠다”라는 뜻이라는데 우리 8박자 구호처럼 간단한 리듬으로 계속 반복하는 건데, 중국 말투로 빠르게 외치면 제법 신이 난다. 한번 소리내서 해보시라. 발음이 대충 “찡텐꾸언꽁쯔엉 밍텐꾸언쯔엉부” 뭐 이렇다.

다들 촛불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저녁에는 “연대의 밤” 행사를 열었다. 간단한 부페식 식당 2층을 빌렸다. 필리핀 민중가수가 나와서 이주노동자의 노래 등을 대여섯 곡 불렀는데, 한국 팀은 좀 지루해하다가 술마시러 나갔고 나 혼자 남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각국에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 혼자 졸지에 한국을 대표해서 노래를 하게 된 거다. 마닐라에 와서 노래를 두 번이나 부르게 되다니. 이런이런. 다들 자기나라의 투쟁가를 부르길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면 좀 덜 뻘쭘할 거라 생각했는데, 앞서 홍콩 사람들이 해버렸다. 그래서 어차피 혼자 부를 거, 짧은 걸로 골랐다. 내가 아는 제일 짧은 노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촛불집회를 아냐고 물었더니 다들 알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외국의 활동가 누군가가 촛불집회 때문에 두 번 놀랐다고 했단다. 우선 ‘저토록 많은 이들이 모이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며 놀라고, 두 번째는 ‘저렇게 많이 모였는데도 끄덕도 안하다니 대단하다’라며 놀랐다나 뭐라나.

서로의 간격을 인정할 때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다

다녀와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운 게 많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고, 한 술에 배부르겠냐고 스스로 달래보기도 한다. 하지만 온갖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느낌 하나는 깊이 남는다. 그건 바로 진지하고 성의를 담은 교류의 태도였다.

처음 본 이국의 활동가와 일대 일로 만나 얘기를 할 때,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상호 전제였다. 당연히 답답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있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진지했고,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대화를 하면서 딴청을 부리는 건,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몇몇 사람들밖에 없었다. 영어가 서투른 이들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시 묻고 다시 설명했다. 미사여구로 치장할 수도 없기 때문에, 부족하긴 해도 겉치레 없이 생각과 느낌을 나눴다.

서로 지극히 다른 경험들을 해왔다는 사실, 너무도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공통점에도 크게 반가와했다.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과 서로 알아가기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서로를 알아가려 했다. 전체 모임에 모인 백여 명이 소리모아 노래하던 순간보다, 한 명씩 얼굴을 맞대고 만나가던 그 순간이 더 오래, 더 깊게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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