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월/이러쿵저러쿵] 88만원 세대의 자화상

일터기사

88만원 세대의 자화상

한노보연 김 태 훈

답답했던 학교를 1년 벗어났다가 다시 들어오니 당연했던 여러 가지 현상이 새롭게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주변 친구들, 학생들(내 주변에서 보이는)이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전 지구적 인류문제, 한국사회의 문제 같은 것을 학생들의 양심에 열심히 호소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학생들의 사회 무관심의 원인을 양심을 버렸다거나, 여가시간에 책은 읽지 않고 게임하고, 각종 유흥에 시간을 보내는 등의 개인적 이유 말고,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취업예비생에게 요구하는 의식이라는 사회적 문제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가 취업예비생에게 요구하는 의식은 뭘까. 내가 보기에 그건 기성사회의 세력 구도는 당분간 변동되지 않을 것이니, 힘 있는 어른이 누군지 판단한 뒤, 그 사람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다. 인기 있는 주말 쇼프로처럼, ‘라인업’을 위해 ‘무한도전’해라. 그것 아닐까.

요즘 졸업반이라서 학교에서 졸업여행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에 국내로 가던 졸업여행을 몇 년 전부터 해외로 가는 이야기가 생겼고, 비용
을 개인당 80만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설문조사 중이고 계획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으나 학내는 시끄럽다. 문제는 두가지인데, 첫 번째는 강압적 단체행동의 문제이다. 정확한 발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학년대표와 학년담임선생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졸업여행은 필참’ 이라는 인식이 잡히고 있는데 그것이 권유 수준이 아니라, 약간의 협박 같은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익명게시판의 글을 보면 단체 생활하는 걸보면 앞으로 사회생활도 보인다고 말하면서, 학년 담임선생님이 우리가 졸업하면 다수가 취업하려고 하는 사업장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빠지는 사람은 불이익을 각오하는 게 나을 테고, 전체 학번 이미지에도 손상이니 여행에 필참하자고 협박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정말 교수님이 그런 발언을 한 건지 내 스스로 확인한적 없고 또한 발언이 정말 실현된다면 정말 그건 상식 밖의 일, 불법부당한 일이므로 진지하게 듣긴 힘들다. 그러나 그 출처불명의 협박이 폐쇄적이고 소심한 이 취업예비생 집단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고, 따라서 상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적인 학생들의 반발을 받고 있다. ‘이거 뭐 꼬찔찔이 초딩 여행도 아니고, 10년 전에 고등학교서 선생들이랑 싸울 때랑 똑같구만’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익명게시판에 올라왔다. 두번째 문제라고 볼 수 있는 학생 빈곤문제이다. 게시판에 글을 쓴 학생은 학자금도 다 대출받았고, 돈이 없어 교과서도 못 사기도 하는 처지인데, 80만원짜리 여행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문대 예비의사로서 그 정도 돈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과외 2달 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 할 말도 없다며 이미 낙담을 하고 있었다. 거의 나의 경제적 형편과 똑같았다. 게다가 나는 애초에 내 공동체라기엔 어색해서 안 가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그 글을 쓴 친구는 또 친한 친구들이랑 좋은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 정신적 부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난 그 친구 심정이 이해가 된다. 20-30만원 정도에 국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여유 돈으로 오십대가 되어도 건강진단 한번 못하고 일만 죽어라고 하시는 부모님들 여행 다니며 쉴 여유라도 만들어드리고, 건강진단도 받게 해드리고 싶은 것 아닐까. 너무 가족주의적으로 이야기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상식적으로도 그런 것 아니냔 말이다.

요즘 학생 동지들이랑 학생 빈곤에 대해서 고민해 보려는 활동을 준비 중이다. 2MB대통령도 매번 자랑하듯 학생 때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구체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현재 학생들의 빈곤 양상은 과거와 다른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절대적 빈곤뿐만이 아니라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된다. 대학생까지 영어학원, 컴퓨터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교육이 확대되면서 부모의 경제적 차이는 ‘스펙’의 양극화를 낳는다. 기성세대의 경제적 빈곤이 자라나는 세대의 희망의 빈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전적인 조언은 학생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벌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학벌이라는 대학의 문턱에서 좌절한 학생이 다수다. 운 좋게 정말 ‘교과서만 열심히 보고’ 명문대에 유학 온 학생들이라도 다시 대학에서 계속된 교육 불평등을 겪게 된다.

취직할 기회가 적은 것을 넘어, 그러한 기회 자체의 불평등까지. 갈수록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도 혼자라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20대들. 토익 책을 덮고 짱돌을 들자고 말하는 외침에 ‘넌 짱돌 들어라. 난 토익 보련다.’고 말하는 20대들. 그러나 토익을 공부할 시간과 공간 제공 자체를 부모의 능력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현재의 자본이며, 아무리 토익을 잘 봐도 빽 있는게 최고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기업의 고위간부들 같은 ‘자본주의 전도사’들 아닌가. 그런 것이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씁쓸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분사회가 완전히 도래했음을 의심치 않게 한다. 취업예비자의 경제적 불안정은 그들의 사회정치적 위축을 낳고, 그로 인해 더 심한 불안정을 만드는 사회적 흐름이 저항 없이 진행된다.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우리 손으로 끊어내야 한다. 아직 스스로 고통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20대들의 빈곤 양상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것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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