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05월ㅣ이러쿵저러쿵] 고스톱 노동(?)의 비애~

일터기사


고스톱 노동(?)의 비애~

한노보연 손진우

나는 작년 11월에 결혼을 해서 할머니, 동반자 동지와 함께 셋이서 살고 있다.
결혼은 형식적인 요식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인 우리는 딱히 할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양쪽 집안에서의 완고한 반대 때문에 하게 됐다. 어차피 둘이 사는 게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이왕 하는 거 재미있고, 즐겁게 하자는 생각으로 식을 치뤘고, 많은 동지들이 함께해 축복해 준 뜻 깊은 자리가 됐다.

누구는 ‘시’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고, 되도록이면 시집과 멀리 떨어져서 산다고 하는데……동반자 동지는 졸지에 시부모도 아닌 시할머니와 동거하게 됐다. 둘 다 활동을 하기 때문에 생활패턴이 들쑥날쑥 해서, 많은 부분의 가사노동은 할머니가 맡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들은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하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주와 손주 며느리를 데리고 살고 계신 상황이다.
나와 동반자 동지는 어차피 함께 살려면 같이 살 공간도 필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구성하려면 필요한 제반의 조건들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지만 막상 동반자 동지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나 보다.
평일이 아닌 휴일에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잠 자기도 힘들고, 늦게 들어오면 잠든 할머니가 깨실까봐 눈치 보면서 샤워를 해야 하고…. 어쩌다가 둘이 의기투합해서 뭐라도 할라고 치면, 할머니가 고민해 놓으셨던 주말 스케줄을 제시하시기 때문에 그에 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할머니는 70이 넘은 그 나이 때의 할머니들과 다른 감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신다. 얼마 전까지 아파트 청소일을 하시다가 관두고 나서는 노인대학을 나가시는데, 노인정에서 늙은 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하시는 양반이라…또래의 맘 맞는 친구를 새로 사귀기를 꺼려하신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할머니가 소녀의 감수성을 가지고 계시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시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동반자 동지가 터득한 노하우는 무조건 귀여움을 떠는 것이다. 늦게 들어왔을 때는 할머니께 달려가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라고 비음과 혀짧은 소리를 섞어내며 아양을 떨기도 한다. 이것이 시댁에서 살아남기, 이쁨받기를 위한 어려운 감정노동이기 때문에 대체로 둘만 잠들기 전에는 동반자 동지가 나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며 하소연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일이 생겨 버렸다!
얼마 전부터 할머니가 집에 계시더니,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으로 고스톱에 취미를 붙이신 거다. 때마침 3월 한달은 나도 잠깐 나름의 내 인생에서 휴가를 갖기로 해서 쉬고 있던 중이라 동반자 동지는 고스톱을 열심히 배워서 행복한 가족이 되자며 일찍 퇴근해서 매일 같이 할머니, 나와 고스톱을 치게 됐다. 할머니는 3명이 함께 즐기는 고스톱의 재미가 쏠쏠하셨던지 이때부터는 동반자 동지가 몇시에 들어오든 “빨리 씻고, (혹은 빨리 밥 먹고, 빨리 짐 풀고) 판깔자~”라고 하시게 됐다.
활동공간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들어와서 집에 와서 좀 다리 펴고 잠깐이라도 머리를 식히게 되는 건 상상도 못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출근하는 동반자 동지에게 할머니의 아침 인사는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오니? 빨리 와서 고스톱치자~”가 되어 버렸고, 내가 늦게 들어가는 날은 둘이 맞고판을 벌이는 경우도 왕왕 생겨 버렸다.

요즘 나는 동반자에게 많이 미안하다. 결혼해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함께 사는 삶이 즐겁기만 할 꺼라고 다짐했었는데……여러가지로 시집살이가 주는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상처받기 쉽고, 어려움이 많다. “너는 바뀔게 없지만, 너랑 같이 살 친구는 그렇지 않고 많이 힘들꺼야” 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뭔 얘기인지 깊이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즘은 참 많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는 동반자 동지가 감정노동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름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실행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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