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12월ㅣ송선생의 특검일기] 세번째 이야기. 특수검진 의사의 한계

일터기사

세 번째 이야기

특수 검진 의사의 한계

한노보연 / 산업의학전문의 송 윤 희

1. 검진 “서비스” 기관의 한계

특수 검진의 고질적인 문제는 다들 알다시피, 사업체의 노동자 검진 “서비스”를 대신 해주는 검진기관과 그 사업체가‘갑을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여 추가 서비스-덤핑, 가격 조절 등의 공공연한 편법들이 횡행하고 있는 이 검진업체의 세계에서 사업체와의 계약을 따내는 영업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한편 이러한 경쟁 체계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예로, 지방 공단 지역에 특검기관, 혹은 종합병원이 한 두개 있을 경우, 그런 치열한 경쟁과 편법적인 추가 서비스 없이 업무가 이루어진다. 물론, 갑을 관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하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도시나 경기도 지역과 같이 검진기관이 많은 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정글의 세계라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업과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당연히 검진기관은 기업의 비위를 더 살피고 맞추고자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특수검진은 판정에서 그 폐해가 막심해진다.
나의 경우, 직업성 질환 요관찰자로 판정하는 C1 이라는 판정을 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C1이라 함은 말 그대로 관찰을 요하는 자이므로 사업장 보건관리자가 주의하여 추적 관찰과 관리를 해주는 것이다. 즉, 직업병 유소견자인 D1의 경우 노동부 통계에도 잡히고, 이후 감시와 추적 조사도 있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부담이 되는 판정이라면, C1은 부담이 크지 않은 판정이다. 하지만 일차 검진업체이기에 이러한 판정마저도 사업주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2. 고용된 산업의학 의사의 한계

검진업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직업 관련성 판정은 상당히 엄격하다. 웬만해서는 개인 질병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사업주에게 보고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한 사업장에서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자외선이 노출되는 공정에서 눈이 쉽게 충혈되고, 흐릿해서 안과에도 다니는 노동자가 있었다. 입사 후 증상이 생겼고, 매일 1시간 정도 자외선을 본다고 하였다. 자외선은 노출 정도를 측정할 길이 없기에, 노동자의 증상 호소에 기반하여 판정을 할 수밖에 없다. 방문한 안과에서는 특이한 상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진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증후는 명확하게 있고, 일을 하고 나서 생긴 것이기에 더 이상 논쟁 없이 C1으로 판정하여 직업병 요관찰자로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는 개인적으로 보호구를 100% 착용하여, 최대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매해, 눈과 관련된 증상이 더 심해지지는 않은지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자외선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진행하지 않도록 더 유의하라는 뜻에서 C1 판정을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노출을 완전히 피하는 것, 즉 작업 전환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사업장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행정 담당자는 C1을 내리기 전에 더 신중하게 해달라며 부탁했고, 최소한 인근 안과(대학병원이 아닌 기관에서는 안과 협진을 받지 못하기에 인근 안과에 환자를 또 보내야 한다)에 가서 정밀 검사를 더 받게 하고 (그 정밀 검사란 세극등현미경검사, 정밀안저검사, 정밀안압측정, 안과진찰로 C1 판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검사임) 검사 결과 특정 진단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상인 것으로 판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돌려 말하지만, 결국 판정에 있어 현실적인 상황을 좀 이해하고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이해되지 않은 것은, 그러한 정밀 검사는 과잉 의료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안과의사가 보면, 더 상세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진찰 결과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일반 타과 의사도 알 수가 있다. 그랬을 경우, 환자의 호소에 따라서 이상 증후를 의사의 권한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행정 쪽에서, 재검 결과 이상이 없으면, 정상 A로 판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시 얼굴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특정 진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정상이다? 아마 그분께서 재고를 해본다면, 옳지 않은 논리라고 이애하리라 생각한다. 진단이 없더라도 이상 증후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진단 도구에서 발견되지 못하더라도, 그 조직에는 미세하게 불건강한 상태일 수 있다. 그런 상태를 C1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결국, C1으로 하나 C2로 하나 생각해보면, 그다지 중대한 결정 사항은 아니고, 향후 예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타협하여 사업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판정을 했지만,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행정담당자 분의 말은, “우리가 갑을 관계가 아니면 왜 (C1을) 못 내겠습니까.. 이런 관계 아니면 정말 내키는 데로 다 하죠..” 라며 이 구조적인 모순에 한탄을 하는 말이었다.

3. 효력 없는 듯한 노동: 특수 검진

그런 타협을 했을 때 기분이 상했던 것은, 아마도 첫째는 나의 권한이 타협이라는 제목 하에 침해당했기 때문이고, 그랬을 때 의사들 특유의 욱하는 마음 “감히..날.. 의사 말을 뭘로 알고…”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의사가 개인적으로 행정 쪽과 쟁투 끝에 원하는 판정을 내린다 한들, 크게 노동자의 작업과 건강 예후에 있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들, 저런들 특수 검진이라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 이후에 사업주의 법적 의무를 다 해준 것 말고는, 검진 기관에 돈을 벌어다 주고, 의사 자신도 월급 값을 한 것 말고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수 검진에서 직업병이 너무나 발견이 안 되어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 안에서 제 살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용감하게 직업병을 발견해서 판정해 줄 검진 기관은 없다. 정리해보자. 특수 검진의 목적은 이상이 있는 노동자의 직업병, 직업관련성 질환을 발견하는 데 있다. 검진 기관의 목적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이익을 취하는 데 있다. 산업의학 의사의 목적은 위 둘 다이다. 제도의 목적과 제도를 수행하는 민간 업체의 목적은 다르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한 한계인 것이다.
의사의 경우 두 가지 목적이 다 있기에 특수검진 본연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 의사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한계가 많다. 왜냐면, 분명히 그 사업체는 향후 다시는 그 검진 기관과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진 기관 역시 연매출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업체와의 재계약에 막대한 지장을 준 의사를 계속 고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젊고 조금 더 적극적인 의사를 고용하기를 원했으나, 검진기관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처럼 판정을 한다면, 오히려 이전에 나이 지긋하고 판정도 알아서 행정쪽에 맡기는 그러한 나일롱 의사가 더 낫다고 판단하지는 않을까..
나의 경우, 다만 판정할 때마다 생겼던 행정 쪽과의 충돌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뿐이고, 이러한 판정의 결과에도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더 나은 건강을 위한 선택권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 허무감을 느낄 뿐이다. 얼마나 더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아생전에 소음성 난청 말고 직업병이라고 판정을 내릴 기회(?)가 있을까.. 심히 의심된다. 더 경험해 봐야겠지만, 누가 악덕기업이고, 누가 더 선한 문제는 절대 아니다. 생각해보면, 자신 생계에 지장이 없기에 자신의 원대로 판정을 하는 것이지 않을까. 만일 고용된 검진 기관에서 계약이 성사되는 건에 따라 월급이 프로테지로 들어오는 것이라면, 의사인 나 역시 먹고 살기 위해서 좀 더 부드럽고 유한 판정을 내리지 않을까..
결국 하나를 말하기 위해 중언부언하며 긴 글을 썼다. 3자 지불제도는 필수적이다. 갑을관계가 계속되는 한 특수검진에서 직업병 발견이 안 되는 이 고질적인 문제는 계속 될 것이다.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상태에서 개인 검진 기관이나 의사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미봉책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3자 지불 제도 역시 제대로 운영되려면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덧붙여서 출장 특수 검진의 질적 한계에 대해서 언급을 해야겠다. 반도체 사업장의 경우, 공정이 거의 한 공간에 같이 있고 알다시피, 클린 룸 안의 공기가 70%는 순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화학물질에 직간접적으로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수많은 물질들에 준한 특수 검진을 받는다. 예로, IPA, 메틸알코올, 안티몬, 삼수소화비소, 황산, 질산, 염산, 불산, 이소부틸알콜, 아세톤, 시클로헥산, 메틸이소부틸케톤, 포스핀, 톨루엔 등이 있다. 수많은 물질들이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장기 장해에 대해서 이것저것 고려할 것은 많지만, 결국 질문을 한가지다. “일하고 나서 어디 안 좋은 데 없으세요?” 질문을 좁혀서, 몇 가지 대표적인 장해들을 물어보기도 한다. “입사 후에 눈코입 점막 자극이나, 호흡할 때 장해 없으세요?” “생리가 불규칙해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이렇게 세 가지 질문이 주를 이룬다. 작업력에 관해서 20명 중 한 명 정도가 다른 업종에 이전에 종사했을 뿐이고, 반도체 회사 업무가 능숙해지는데 몇 개월이 소요되기에 거의 업무 변경이 없는 관계로 근무 기간 내내 동일 업무를 한다. 따라서 직업력에 관한 문진 역시 아주 짧게 끝난다. 총 문진 시간을 대충 재보니, 10초에서 30초이다. 아주 가끔 증상 호소가 길어지고, 얘기를 더 할 필요가 있을 경우 1분에서 2분사이다. 물론, 이상 호소가 없는 건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문진이 일찍 끝나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마 뒤에 길게 늘어선 줄 없이 조용히 일대일로 5분 정도의 간격으로 수검자를 만난다면 나름 호소하는 증상이 더 있을 것이다. 이들이 실로 건강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특수 검진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출장이 없어지고 모두 내원으로 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1인 의사당 하루 100인 미만(오전에만 할 경우 60인 미만)의 규제를 두지 않은 이상 이런 특수 검진의 한계는 피할 수가 없다.

4. 3자 지불 제도가 주춤하고 있다면 차선의 제도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편안하게 얘기하는 글에서 정립되고 제고된 정책을 제안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상을 즐겨하기에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았고, 상상의 나래에서 나온 것들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글 마무리에 써 본다.

1) 이런 것은 어떨까? 의사 처벌.

미봉책이고 무의미하겠지만, 상상을 해보도록 하자.

노동부 감시 결과 제대로 된 판정을 하지 못한 경우 이제껏 특수검진 기관에 그 처벌을 가했는데, 그러지 말고 의사에게 처벌을 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 특수검진 자격 박탈을 하거나 자격증을 취소시키는 것이다!! (공상에서 생각나는 그대로 말한 것임) 그렇다면 의사는 자신의 전문의자격증을 유지하기 위해 소신껏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철저하게 직업과 관련된 것이라는 판정을 내리지 않을까.. 검진기관은 일언반구를 못할 것이지 않나. 의사 자격증이 박탈되면, 그 검진기관 역시 문제가 생기므로..
그렇다면, 갑을 관계를 떠나서 의사는 자신의 자격증을 지키기 위해 타협 없이, 갑을 관계에서 어떤 간섭 없이 판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의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다. 소신껏 판정을 할 수 있는 핑계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판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둘째로, 지나치게 직업병 요관찰자나 유소견자로 판정을 많이 받아, 그 의미 자체가 희석 될 수도 있겠다. 웬만
히 일하고 나서 증상이 생겼다 하면 C1, 또 이전에는 간신히 C1 정도로 줄 것을 D1으로.. 그 여파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게 정말 정착이 되어간다면, 사업체는 D1 하나에 벌벌 떨거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조치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지 않을까. 혹은 반대로 더 과민 반응하여 개개인 노동자는 더욱 퇴사의 압력을 받거나, 애초에 D1이 나오기 전에 회사에서 알아서 걸러지거나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2) 검진기관 등급 분류 작업

이전에 학회에서 한번 언급된 적이 있는데, 3자 지불제도와 함께 특수검진기관에 성적을 매겨서, A, B, C 세 등급으로 검진기관을 분류하는 것이다. 즉, 한 번도 오판정을 하지 않거나 잘못된 절차로 검진을 하지 않은 우수 검진 기관을 A로 두고, 그렇지 못하는 기관을 그 횟수나 정도에 따라 B, C로 구분을 해 놓고, 그에 따른 이득과 손해를 적절하게 준다면 A 기관이 되기 위해 나름 기관 내부에서도 고전분투하지 않을까. 그런 과정에서 의사의 판정에 사업주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러한 제도 정착 시 문제는? 노동부 인력 부족이겠다. 그런 판단을 하려면, 일정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져야 하고, 안 그래도 과중 업무에 시달리는 산보연에서는 그 정도관리 체크리스트를 위해서 연구를 하거나 용역을 줘서 해야 하고, 그런 모든 것이 세팅이 다 되었을 때에도, 큰 업무 하나가 더 늘어난 상태에서 노동부 인력은 보충되지 않을테니, 노동부 안에서 일을 제대로 할 의지가 안 생길 것이다. 웃기는 것은, 이러한 공상 끝에서도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정권 교체라는 너무나 허무한(혹은 당연한?) 결론뿐이다. 또한 A 등급 기관이 되기 위해 정글의 세계에서는 온갖 편법을 동원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에 대한 제제를 또 가하는 것 역시 큰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공상을 계속 하다 보니, 갈수록 태산이다. 일은 계속 늘어나고, 편법은 끊임없이 존재할 것 같고… 무언가 경험담을 공유하여 정립된 의견을 제시하려했으나 그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여파가 너무나 많다. 이것저것 다 고려해보면, 그냥 “이래서 뭐하나..” 라는 냉소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특수 검진 의사의 현실적인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으나 쓸모없는 결론에 이르렀고, 긴 신세 한탄으로 끝맺어질 글을 쓰고 있는 듯하다. 한숨과 허탈 웃음이 나을 뿐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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