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ㅣ12월ㅣ이러쿵저러쿵] 서로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일터기사

서로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한노보연 이병근

언젠가부터 노동운동진영 내에서는 활동주체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근래에 더욱 강조가 되고 있다는 것임.) 운동진영 내에서 소통이 중요성이 부각되기 이전부터 사회적으로는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왔던 것 같다. 어쨌든 노동운동진영 내부든 외부든 현재 전 사회적으로 주체간의 소통이 강조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럼 너나없이, 현 시기 중요하다고 말하는 주체간의 소통, 즉 주체간의 관계 맺기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주체간의 관계 맺기의 과정과 내용을 정치, 사회적 전반에 걸쳐 검토해보자는 것을 결코 아니다.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단지 평소에 내가 주변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웠거나 후회되었던 경험을 통해서 느끼게 된 반성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던 사람과 처음 관계를 맺는 것, 즉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는 관계 맺기를 시작하는데 큰 부담이나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관계 맺기가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편하고 쉽게 생각했던 관계가, 크고 작고에 차이가 있을 뿐 여러 이유들로 어려워지고 부담스러워진다는 것이다.(내가 비사회적 인간형인가?)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체 서로가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보니 관계 맺기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소통의 과정을 지나고 나면 서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관계는 그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한 즐거움이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 중에 하나가 되어 일정정도 나를 구속하는 수많은 끈 들 중 하나로 변해버리고 만다.(반대로 익숙해져서 편안해지고 포근해지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관계의 어려움과 무거움의 일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시작되면 지금까지 나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대부분 상대방이나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가 느끼는 관계의 어려움과 무거움을 상대방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방도 나와의 관계를 신선한 즐거움 보다는, 익숙한 또 하나의 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즉 문제의 원인이 나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상대방에게 즐거움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누구의 말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즉 내 자신을 채워가는 것이 관계의 즐거운 떨림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관계의 즐거움 떨림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솔직함일 것이다. 아무리 즐거운 관계도 솔직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관계의 거짓이 관계자체를 없애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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