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5월 | 칼럼] 스승의 날 즈음하여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 현실

일터기사



스승의 날 즈음하여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 현실

교육노동자 송용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독자님들께 이렇게 글을 통하여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교육노동자 송용운입니다. 얼마 전까지 서울선사초등학교에 근무하였습니다. 작년 10월 실시된 일제고사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시험 선택권을 존중해 주었다는 이유로 ‘파면’ 징계를 받았다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해임’으로 경감되어 지금은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해고노동자입니다. 전교조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교육노동자로서 바라본 학교 현장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5월 15일은 소위 ‘스승의 날’이라고 불리우는 날입니다. 1964년 4월 청소년적십자단원 대표들이 전라북도 전주에 모여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제정 목적은 학생이나 일반국민들에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데 있었으며 학생들은 빨간색 카네이션을 스승의 가슴에 달아드림으로써 불우한 처지에 있는 스승을 위로하고 스승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 뜻이 변질되어 그 날을 학교자율휴업일로 정하여 쉬는 학교도 많습니다. 상인들의 얄팍한 상혼에 부추겨져 고가의 뇌물성 선물이 학생,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오감으로써 동심을 멍들게 하고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악화시키는 일들이 사회 문제화 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조합원인 교사들은 일체의 선물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사들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이도록 받은 선물을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집으로 운반하여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스승의 날’이 교사들에 대한 존경을 사회적으로 확인하는 날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들을 자괴감에 빠뜨리는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이 되면 학교마다 교문 앞에서 출근하는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꽃을 달아주고 기념식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학부모나 지역 주민들이 ‘1일 교사’로서 1시간씩 수업을 하는 등의 행사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악화된 사회적 인식을 의식하여 아무 행사도 하지 않거나 휴업일로 정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학부모 독자님들은 이번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담임교사에게 선물을 주는 일에 대해서 심사숙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작년부터 일제고사가 온 국민의 관심을 끄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저도 일제고사 때문에 해고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입학시험을 쳐서 들어간 마지막 세대입니다. 중학교 입시의 너무나도 가혹한 부담이 한창 건강하게 자라나야할 초등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마침내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였습니다. 그 이후 시차를 두고 고교 입시도 폐지되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입시 준비는 너무나도 과도한 학습 부담을 안겨준다는 확고한 여론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일제고사 방식의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수행평가를 통한 입체적인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도 통지표에 점수나 단계 형 방식이 아닌 서술 방식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학교 현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일제고사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공정택씨가 서울시교육감이 되면서부터 학교 현장에 일제고사를 강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제고사는 현행 교육과정에도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문을 통하여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시행하지는 못했지만 은밀한 방법으로 교장들에게 학교별 일제고사를 시행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일제고사 강요의 부당성을 잘 알고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고사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들에게 아무런 징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부터 사태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학교별 일제고사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일한 문제로 전국 동시에 치르는 일제고사가 도입되었습니다. 시험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전산 처리하게 되면 가공할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기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우선 전국의 모든 같은 학년 학생들을 시험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중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일제고사 도입 이후 청소년 학생들의 자살 증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전국의 모든 학급의 시험 성적 평균을 산출한 뒤 그것을 한 줄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이 부담은 담임교사, 교과 지도 교사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시험 성적 서열이 곧 그 교사의 전국적 서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국적 서열이 뒤쳐져서 비난을 받거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하는 교사들이 오로지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문제 풀이 교육에만 몰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전체의 평균을 산출한 뒤 그것을 한 줄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이 부담은 각 학교의 교장에게 다가옵니다. 높은 서열을 차지한 학교의 교장에게는 인센티브, 당근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낮은 서열을 차지한 학교의 교장에게는 불이익, 채찍이 주어질 뿐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교장이 학교의 교사들을 다그칠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전국 차원의 일제고사가 학교 현장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최근에 ‘일제고사’라는 명칭에 교육과학기술부가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전국 동시에 동일 문제로 치러지는 ‘진단평가’, ‘학업성취도평가’이지 결코 ‘일제고사’가 아니라고 강변하였습니다. 언론에 이름을 바꾸어서 보도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고사’에 대한 전 국민적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입니다. 내용적으로 볼 때 3월초에 새로 맡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이전 학년도의 학습 결과를 측정는 시험이 ‘진단평가’입니다. 상당 기간 학습을 진행하고 그 학년에서 배운 것을 어느 정도 정확히 학습하였는지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 ‘학업성취도평가’입니다. 형식적. 방법적으로 볼 때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 문제로 동시에 치르는 시험이 ‘일제고사’입니다. 그러니까 교과부가 3월에 시행한 시험은 내용적으로는 ‘진단평가’이며 형식적, 방법적으로는 ‘일제고사’입니다. 10월에 시행한 시험은 내용적으로는 ‘학업성취도평가’이며 형식적, 방법적으로는 ‘일제고사’입니다. 3월 시험은 ‘일제고사’ 방식의 ‘진단평가’이며 10월 시험은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성취도평가’입니다. 사태가 이런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시험 명칭을 ‘일제고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음으로는 학교 교육의 주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의 몫, 누구의 권리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학생, 학부모, 교사입니다. 이 셋을 교육의 3주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주체들은 주체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해왔고,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왔습니다. 그 모든 권리들은 오로지 교육과학기술부와 그 관료들만이 독점적으로 행사해 왔습니다. 이 3주체들은 교육과학기술부와 그 관료들에게 빼앗겨 왔던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그 동안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의 ‘수요자’라고 부르면서 마치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주체에게 주체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듯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교육의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시장화’입니다. 그것은 교육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국가의 책무로 보지 않고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합니다.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의 ‘수요자’라고 부르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모멸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한동안 우리는 이 ‘시장화’정책을 ‘민주화’정책으로 오해하고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교육의 시장판 만들기, 교육 시장화 정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를 치러 전국의 모든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면 학생들끼리 상위 서열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학력이 신장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의 특목고로는 부족하여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교 50개, 자율형사립고 100개를 신설하여 특목고를 대폭 확대하면 학교끼리 경쟁하고 학생끼리 경쟁하여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교 선택제를 도입하면 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학교가 되기 위하여 학교끼리 경쟁하고 선호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학생끼리 경쟁하니 역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면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교사들끼리 경쟁하니 역시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육 시장화 정책,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은 교육을 황폐화시켜 교육의 3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를 모두 피해자로 만들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원평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대부분의 국민이 학교에 10여년을 다니면서 수준 낮은 교사로부터 피해를 당한 아픈 기억을 가지로 있습니다. 저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학생, 학부모가 교원을 직접 평가함으로써 수준 낮은 교사의 퇴출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찬성 여론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적격 교사의 퇴출은 교원평가제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부적격 교사들은 교육 관료들과 밀착되어 있어 퇴출 징계를 피해갑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우리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은 해임되었지만 성추행, 뇌물 수수, 폭력 교사들은 모두 구제되었습니다. 또한 처세에 능하여 학생, 학부모로부터 나쁜 점수를 받는 것을 피해갈 수 있는 기술을 재빨리 습득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부적격 교사의 퇴출은 교원 징계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하지 교원평가로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교육은 특성 상 교원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교원평가는 협력이 아니라 교원 상호 간의 경쟁을 요구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교사나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지도 능력을 갖춘 교사들이 후배 교사나 다른 교사들을 위해 자신만의 교수 기술,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교사들 간의 경쟁은 좋은 교육이 아니라 나쁜 교육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것은 교사들, 조합원들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교육을 망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보건을 위해 애쓰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최근 들어 교육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도 크게 악화되어 직업병 발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복직의 그 날까지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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