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8월 |현장의 목소리] 부산예인선노동자, 깃발아래서 파업가를 부르다!

일터기사

부산 예인선 노동자, 깃발아래서 파업가를 부르다

“우리는 노동자다!”

글, 사진 / 한노보연 부산연구소 상임활동가 서 은 실

예인선노동자들이 노조인정과 근로기준법 사수투쟁을 외치며 파업한 지 26일 째 되는 9월 1일, 이들을 만나기기 위해 감만항에 있는 농성장을 방문했다. 직장폐쇄로 예인선이 모두 치워져 텅 빈 부두를 이곳의 진짜 주인인 노동자들의 함성으로 가득 채워, 뜨거운 태양아래 그보다 더 뜨거운 파업승리의 결의를 힘차게 다지고 있었다.

여기, 예인선노동자가 있다!

부산항만의 예인선 노동자는 총 6개의 예인업체에 고용되어 있으며,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대형선박

의 접안과 이안작업을 한다. 예인선 노동자는 장기간 항해로 선박에 장기간 머무는 선원 노동자들과는 분명히 다르며, 이미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예인선 선원에게 근로기준법적용이 타당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는 사측의 요구에 따라 이들에게 선원법을 적용시키려는 무리한 법개악을 시도하고 있으며, 사측은 노동조합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교섭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선원법? 근로기준법?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그동안 예인선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선원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문제가 발생해도 호소할 곳 없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짓밟혀 왔다. 항만청과 노동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사측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취업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는 보호적 성격의 법은 무시하고 불리한 법만을 골라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며 예인선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었다.

예인선 노동자들에겐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법정 근로시간도 없고 초과 근로수당이나 휴가근로 수당도 없다. 월차, 연차도 없고 따로 정해진 휴일도 없다. 이것은 24시간 맞교대를 법적으로 가능케 했고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월차, 연차, 휴일도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게 만들었다. 사측은 이들이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 선원이기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선원법조차 준수하지 않아, 얼마 전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는 선원법과 근로기준법의 보상제 중 어느 하나도 적용받지 못했다. “너희들 주장대로 선원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보기에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도 아니므로 어떤 보상도 해 줄 수 없다”는 게 사측의 입장이다. 이는 사측의 아전인수격 준법정신(?)과 교활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예인선 선주들이 예인선노동자들을 법의 사각지대에 몰아넣고 입맛대로 법적용을 시키는 동안 예인선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시간의 두 배인 주당 80시간이 넘는 노동과 24시간 맞교대는 예인선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과로와 수면장애를 가져왔고 인간다운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대체인력이 없는 24시간 맞교대로 인해 한 사람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하루를 쉬게 될 경우, 교대자는 꼬박 48시간을 근무해야하는 구조이다. 부모님상이나 신혼여행을 가게 될 경우엔 일주일을 잠도 못자고 근무해야하는 믿기 힘든 일도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도 휴가조차 쓸 수 없으며 공휴일과 주말은 물론, 명절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형편이다.

예인선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다리나 안전장치도 없이 배를 건너 뛰어 다녀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물에 빠지기도 하고, 예인선이 큰 배 아래로 말려 들어가거나 배가 옆으로 쓰러질 경우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기상악화나 태풍이 불면 배들을 피항시키는 일도 예인선 노동자가 하는데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한 작업이다. 태풍 ‘매미’ 때는 해양경찰도 피신한 바다에서 집채 만 한 파도와 싸우며 24시간 구조작업을 했는데 그 때 받은 수당이 만원이었고 그조차 주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당 80시간씩 목숨 걸고 일한 대가로 예인선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얼마나 될까?

근속 4년의 수십 년 원양선 경력의 1등 항해사의 경우 월 200만원 안팎의 수준이다. 상여금은 기본급(95만원)의 50%인데 이마저도 없는 곳이 많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으로 먼 항해에서 돌아와 예인선 노동자가 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임금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었고 선원으로 벌어 놓은 돈으로 버티다가 이마저 까먹고 결국 맞벌이 부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흩어지면 죽는다

어색했던 머리띠를 매고 서툴게 파업가를 부른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사측도 노조는 절대로 안 된다고 탈퇴를 종용하고 교섭에도 불응하며 직장폐쇄를 강행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들은 예인선조합을 만들어 담합하여 임금은 더욱 낮은 수준으로 동결시키고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하게 만들어 놓았다. 온갖 불법을 자행하며 만들어 놓은 착취수단을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노조를 탄압하고 어떻게 해서든 기필코 막아내려는 심보로 보인다.

예인선 노동자들은 10여 년 전 노조 설립 좌절을 겪으며 힘들게 버텨 왔다. 힘든 싸움인 줄 알고 시작했다. 여기서 흩어지면 인간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결의로 사측과 정부의 탄압을 견뎌내는 그들, 예인선 노동자들이 감격으로 벅차오를 부두의 승리를 반드시 쟁취해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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