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8월 |현장의 목소리] “열심히 일한 직원 내쫓지 않겠다.”더니….

일터기사


“열심히 일한 직원 내쫓지 않겠다”더니…

공공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김 성 미

비정규직으로는 한 직장에서 2년을 넘게 일할 수 없습니다. 알고 시행했든 모르고 시행했든 그것이 2007년 제정된 비정규직법이 정해준 비참한 현실입니다. 해고 된 후로 계속 복직투쟁을 진행 중 이고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직종으로 일했던 너무도 많은 비정규직들을 만나 왔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정규악법으로 인해 많게는 10여년동안 열심히 일했던 직장을 잃은 분노를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비정규직법은 언제나 비정규직을 보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용자가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악용해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비정규직의 사용과 해고가 자유롭도록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비정규직법 유예안으로 비정규직을 더 양산하고 문제를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 5월 15일부터 2009년 5월 15일까지 정확히 2년을 근무하고 계약해지를 되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곳은 시립 보라매병원(서울대병원 운영) 의무기록실이었습니다. 제 직위는 의무기록사였고 의무기록사는 환자들의 개인정보나 전반적인 진료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의무기록을 유지,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외래환자의 진료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며, 환자가 병원을 방문할 때 진료 기록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환자에게 제공된 의료서비스에 대한 분석과 질병수술처치분류를 통하여 의학연구에 도움을 주고, 데이터를 정보화 시켜 의학 연구와 병원 경영 정보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역할, 기존 종이의무기록들을 이미지화하여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를 PC를 통하여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영상화작업, 등의 일을 합니다.
그중 저는 차트영상화 작업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을 ‘비트컴퓨터‘라는 외주업체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EMR(전자의무기록: 환자의 진료에 관한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새로운 정보의 생성도 가능한 의료정보시스템)의 시행을 위해 시스템 구축사업을 많은 병원에서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라매 병원도 2008년 5월부터 외주업체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영상작업을 하던 비정규직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기 시작하였고 결국 외주업체가 들어오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비정규직들은 계약만료라는 이유로 퇴사를 강요받은 것입니다. 또 병원은 우리를 해고함과 동시에 외주업체에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며 ’자회사 이전’이라는 제안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용역업체를 들일 경우 이런 제안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직장에서 용역업체는 특히 비용 절감을 위한 하청 개념이기 때문에 근무 여건이나 급여 조건 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트컴퓨터 역시 그렇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도 급여는 기존 보라매병원에서 받던 것 보다 절반가량 차이가 나고 전문성과 숙련도가 없는 다른 직원들과 어느 누가 손발을 맞추고 일하고 싶겠습니까. 그것은 병원에서 우리의 일자리를 걱정해준다기 보다 병원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이라면 주기마다 쓰게 되는 근로계약서. 저희는 근로계약서에 한 달 150시간을 계약하지만 저희는 하루 8시간 한 달에 20~22일 정도를 근무합니다. 어림짐작으로도 150시간은 훨씬 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초과 업무한 시간만큼은 월 1일 휴가로 준다는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년에 정기휴가가 6개가 있었지만 아무도 정확한 정보를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쩌다 휴가를 낼 때마다 쉰 것만큼 더 일하라는 등 온갖 눈치는 다 보고 그러다보니 차라리 쉬지 말자 하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근무도 한 달 1회 이상씩 했지만 시간외수당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문제제기 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재계약 하는데 문제가 될까봐 병원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하면서 일했습니다. 근무시간 중에 잠시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그 시간에 더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온 우리에게 외주업체가 들어와서 할 일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보라매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는 6명의 비정규직이 해고 된 상태입니다. 저와 같은 일을 했던 5명과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환자들의 혈액 등을 검사하던 임상병리사 자리에 새로운 직원을 고용하고 자리가 없어졌다 말하며, 또 한명을 해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고한 다음날부터 또 다른 직원 에게 똑같은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서울대병원은 업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현 비정규보호법을 악용해 열심히 일해 온 2년 이상 된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지 않으려고 해고를 한 것입니다. 또 법적용을 피하기 위해 2년 근무한 직원을 계약해지 하였다가 며칠 후에 신규직원으로 재고용 하는 등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은 07년,08년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으로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노동자 4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또한 2년 미만 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해고하지 않겠다는 고용보장과 단체협약 적용 및 근무조건 개선 등 차별시정을 합의 했습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생기고, 또 병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켜보며 사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의 보호가 어느 곳보다 밀접하게 작용되어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러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일하는 2년 동안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고 열악한 대우 속에서도 2년 후 정규직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라 불리는 서울대병원은 노ㆍ사간의 약속도 지키지 않고 멀쩡히 하던 일을 외주업체에 넘기고 우리들은 할 일이 없으니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서울대병원은 올해 역시 지난 4월부터 임단협을 위한 교섭중입니다. 5월 14일 교섭자리에서 병원장님은 ‘열심히 일한 직원 길거리로 내쫓지 않겠다‘고 약속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하고는 지금은 저희들의 부당해고에 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고 비정규직은 직원이 아니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2년 이상 된 비정규직들은 정기적인(매월 혹은 격월) 면접과 평가를 통해 재계약여부를 평가하려 하고 있어 노·사간의 충돌이 있었음에도 그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이런 식으로 인사운영을 한다면 정규직,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직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전문성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병원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외주업체를 자꾸 들이고 비정규직을 2년마다 갈아치우며 얼마나 인건비를 아끼고 발전하려는 의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개인사업장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국립병원이지만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업선진화에 발맞추기 위해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경영상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점점 직원 수를 줄이려 하고, 초임임금삭감을 추진하려 하는 등 점점 직원들의 고용을 위협하고 병원에 대한 신임을 잃고 있습니다.
벌써 해고 된지도 3개월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서 많은 간부님들과 조합원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할 때 사무실에서 입었던 흰 가운 대신 ‘일하고 싶다‘ 는 우리의 소망이 적힌 피켓을 뒤집어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부당한 해고를 알리고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하며 병원을 다녀가시는 환자·보호자분들의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병원의 한결같은 입장에 많이도 힘들고 지쳤습니다. 또 병원 측은 졸업한지 수년도 지난 대학교 교수님과 지인들을 이용하여 실습학생을 받지 않겠다, 혹은 함께 일했던 동료의 인사권을 운운하며 우리가 투쟁을 그만둘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회유하였고, 1인 시위가 불법이다, 민·형사적인 처벌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며 말도 안 되는 탄압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다시 복직해야 한다는 강한 일념과 다행히도 서명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가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던 제일 큰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9월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법의 행보는 아직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영희 노동부장관님이 비정규직법 개정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고 2년이 넘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유도하겠다는 발언을 하였음에도 법 개정에 대한 공방전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기업입장에서는 법의 시행 유예나 기간 연장 등 법의 개정을 바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고되어 힘든 삶을 살고 있고, 일하면서도 항상 불안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였다면 이제는 이영희 장관님의 발언이 헛되지 않도록 정규직 전환 지원금 규모와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등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우리 모두 잘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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