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09월 |일터다시보기] 비정규직법과 정부의 소란

일터기사

‘비정규직법과 정부의 소란’

한노보연 회원 정 흥 준

저는 도시철도노조의 해고자이지만 요새 활동공간은 노동조합은 아니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입니다. 그곳에서 주로 연구 프로젝트를 하지만 공식적인 직함은 정책국장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는 궁상도 떨고 있어서 상근활동을 하지는 못합니다. 일터 편집위원인 윤성호 동지로부터 일터 다시보기 글쓰기를 부탁받고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볼 만큼 한노보연의 회원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왕년에 편집위원이었는데…

거두절미하고 제가 예년에 무엇을 썼는지 솔직히 잘 생각이 안 납니다. 도시철도 건강권이야기도 썼고 산별노조에 대해서도 썼고, 비정규 노동에 대해서도 썼으니 비정규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며칠 전 노동부가 통계조사결과 하나를 발표했고 신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내용인즉 2년 이상 고용된 기간제노동자(계약직 형태)의 36.8%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37%는 해고되었는데 26.1%는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고용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매체들은 26.1%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했습니다. 노동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이상 언제 해고될지 모르므로 해고나 다름없다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렸고 노동운동진영에서는 2년 이상의 기간제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과 다름없으므로 당연히 정규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참, 다들 아시겠지만 기간제노동자들은 2년 이상 계속 고용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인 정규직으로 간주되므로 기업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법이 있고 법대로 하면 되는데, 굳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26.1%의 기간제노동자들은 법에서 정한대로 이미 2년 이상 고용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되는데도 정부는 ‘그렇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하고 기업들은 어찌할 줄 몰라 눈치만 보고 있으니까요. 필요하면 ‘법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하지만 불리하면 ‘법이고 나발이고’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26.1%의 노동자들이겠지요.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법대로’ 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우리 사회 비정규문제는 비단 26.1%에 속한 노동자들만은 아닙니다. 최근 기업들은 기간제노동자 대신 용역, 파견 등 간접고용형태로 비정규직의 고용경로를 옮기도 있는데 이것은 비정규직을 더 싸게, 더 오래(무슨 배터리도 아니고…)활용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용역과 파견 노동자들은 기간제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낮은 임금과 사회보험 및 부가적인 혜택의 적용률도 낮습니다. 용역, 파견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경우로는 일용직과 호출근로라는 것도 있습니다. 아예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자영업도 아니고, 임금노동자도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도 있습니다. 무슨 놈의 비정규직이 이리도 많은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용도에 맞는 ‘맞춤형 비정규직’을 쓸 수 세상이 되었습니다.

다시 이번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문제로 돌아와서 그 동안 정부의, 특히 노동부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비정규직관련 법안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에 관한 법률이고 다른 하나는 파견근로자에 관한 법률입니다. 기간제 관련 법률의 핵심은 2년 동안은 기간제를 자유롭게 고용한 후, 같은 사람을 계속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을 고용하려면 해고 후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2년과 무관하게 반복해서 기간제고용이 가능합니다. 파견법의 핵심은 32개 업종에 대해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2년 이상 같은 사람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에 대해 정부는 기간제의 2년 계약기간을 3년 혹은 4년, 아니면 무제한 늘리자는 것이며 파견업종을 32개에서 무제한으로 풀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논리는 기업들이 경제가 어려워 기간제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대량해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논리는 맞지 않았습니다. 기업들은 6.8%를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26.1%도 사실 상 정규직전환대상자들이기 때문에 62.9%가 해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처음부터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정규직 전환은 훨씬 더 많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비정규직 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노동자들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회양극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52.1%의 비대한 비정규직 규모는 규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임금(평균 123만원)과 장시간노동, 고용불안이 진짜 문제입니다.

심지어 비정규직이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 2009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졸학력자의 60.8%는 비정규직이 되고 이러한 비율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인 부모의 저임금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들고 사교육을 못 받는 아이들의 대학진입이 낮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즉,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식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은 비정상적인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정소란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신약 마태복음 20장 13-14절에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도”는 말이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가치와 보상을 판단하면서 ‘비록 늦게 와서 일을 하더라도 같은 품삯을 주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성경에서 본 것이 아니라 책(존 러스킨의 한글판 번역서)에서 보고 다시금 노동과 그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보고 되었습니다.

일터 다시 읽기 원고청탁을 받고 결국 비정규직의 최근 사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노동’이란 화두로 아마도 평생을 살아갈 터인데, 지금 노동의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과제가 바로 비정규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언제가 일터에 비정규직 문제를 건조하게 쓴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 애초의 편집방향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여러 회원 동지들께 딱딱하고 논리적인 글이 아니더라도 그냥 편하게 비정규직 문제를 한번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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