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0월 |송선생의특검일기] 반도체 산업 내 보건문제와 특수검진

일터기사

첫 번째 이야기

반도체 산업 내 보건문제와 특수검진

한노보연 / 산업의학전문의 송 윤 희

반도체 회사가 여성의 자연 임신중절률이 많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자연 임신중절과 연관성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자연 임신중절률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오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많은 반도체 산업의 후원을 받은 연구 결과들이 반도체 산업 내 직업성 질환에 대한 사실관계를 흐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특수검진 출장 중에 몇몇 수검자(=검사 대상자)들에게서 주위 동료들의 유산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업무와 관련된 생식계 영향이 의심이 되었다. 안티몬이라는 금속 물질의 경우 자연 유산과 월경 불순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곳에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 주요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면서 여성의 자연임신중절률을 증가시킨다는 2-methoxy ethanol이라는 물질은 막상 특수 검진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특수 검진 대상 물질의 한계에 대해 짚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한 명확한 몇 개의 화학 물질 이외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도 생식계 영향을 주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요인들이 있을 수 있을까? 이 글에서 반도체 산업 내 보건 문제와 특수검진 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1. 특수검진 대상 물질 선정의 문제

특수검진의 한계 중 하나인데, 작업환경 측정을 특검기관과 별도로 다른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우에는 특수 검진을 담당하는 의사는 회사의 환경안전보건팀에서 지정해준 물질만으로 특수검진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다른 기관 역시 다 그렇겠지만, 특수 검진 대상 물질의 선택에 있어 의사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것이 문제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일일이 작업환경 측정에 대해서 산업의학의사의 확인을 거친 후에 특검 물질을 지정하는 방식은 결국 의사 업무량의 과중을 불러오기에 의사로서는 사측에서 정해준 대상 물질을 믿고 검진을 하고 있다. 이 사업장에서 실제로 2-methoxy ethanol을 쓰고 있는지, 혹시 주요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그저 환경안전팀의 보고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 해결 방식: 1) 작업 환경 측정 시 의사의 참여. 2) 회사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질 관련 서류에 대한 특검기관의 요구 사항에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법적 규제를 강화

2. 반도체 회사에서 자연 유산이 많은 이유?

화학물질 중 명확하게 생식계에 영향을 주고 자연 유산을 일으키는 것으로는 안티몬이 있고, 이는 반도체 산업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의 증언에 의하면 미미한 수준으로 노출이 되고, 다음 해에는 아마도 특수검진 항목에 포함되지도 않을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그 물질외 어떤 요인들이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버니복이라는 옷을 입고 들어가 봤는데, 산소가 부족할 법 하다.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다가 코 바로 밑까지 가리는 모자 겸 마스크가 있어 눈과 코를 제외한 머리를 다 덮는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그 복장으로 돌아다녔는데, 정말 답답했다. 그런 만성적인 산소 부족 상태가 행여 임산부에게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상태에서 다른 유해요인들에 노출되었을 때 상가작용, 상승, 혹은 잠재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정상 산소 공급 상태에서 유기용제에 노출 되었을 때와 달리 산소가 조금 부족한 상태에서 노출되는 경우 더 건강에 악영향이 있지는 않은 것일까.. 임산부의 복중 태아에게는 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그 많은 산업장의 화학 물질들과 관련하여 질병과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미완의 산업의학 분야에서는 때로는 무모한 공상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온갖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다.

3. 반도체 산업장 “문제 의식”이 부족한 노동자들과 “문제”가 많은 노조

임신한 한 수검자에게,“주위에 그렇게 자연중절이 많은데 걱정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사람에 따라 그냥 다른 것 같아요..그냥 되는 사람은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고..”라는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작업과 관련하여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대부분이 작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퇴사뿐 일 테이니, 아무런 도움도 안 될 문제의식을 왜 가지려 하겠는가.
특검을 하는 중에 노동조합의 복지부장님을 만나게 되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소한 임신 말기인 여성들에게는 야간 근무를 빼주어야 한다는 요지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했지만, 그는 아주 자랑스럽게(?) 답했다. “본인 동의하에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라고. 너무나 당당한 그의 대답에 다소 황당했지만 다시 한 번 임산부에 대한 복지 배려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보았더니,“현실을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지, 어떻게 임산부 배려 차원에서 다른 사람에게 야근을 더 시키냐”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일면 그의 반응은 우리네 모두의 이기적인 내면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임신해서 그 혜택을 도로 받을지 모르는데, 주위에 수두룩한 임산부들을 위해서 야근을 늘리는 것은 당장 한 개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업무 하중일 것이다. 교대제로 인해 이미 극도로 몸에 피로가 쌓인 상황에서 그런 희생을 받아들기는 힘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회사가 인원 충원에 힘쓸 것 인가?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회사는 그렇다치고, 노동조합의 복지부장이라는 사람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의 지위와 완장은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할 것이고 다른 수많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권력이다. 그런데 그런 힘을 가진 그의 의식 안에는 건강권, 모자보건에 대한 의식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후… 한숨이 나온다. 좁혀지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는 몇 분간의 지껄임(말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껄일 뿐이다)으로 순간 피로가 몰려왔고, 속이 상했다.

변화의 시도도 안하고, 임산부에 대한 당연한 사회적 배려에 대해서도 마음이 꽁꽁 닫혀 있는 노동조합, 아니 우리 사회의 인식.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알고보니 조직률이 90%에 육박하지만, 선거 없이 만들어진 어용 노조였던 것이다!!)
교대 근무가 발암 가능한 물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교대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사회에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대제의 피해가 노동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서 후세대까지 영향이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의 생산적 효율을 위해 이 체제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야간 근무로 인해 몸의 자연 일주기(circadian rhythm)가 깨지고, 그로 인해 면역 저하가 일어난다. 엄마 몸의 자연적 주기가 깨짐으로서 복중 태아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서 우리 산업의학 의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계속되는 교대제, 야간근무로 반도체 산업장에서 버니복을 입고 산소가 부족한 산모들의 복중에서 소리 없이 생명들이 죽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세대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세대인 복중 태아의 문제야 별로 회자화되지 않을 듯하다.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도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4 교대제와 임신 중절율?

교대제 근무를 하는 경우 자연유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 결과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덴마크에서 시행된 연구에 의하면 교대제와 생식계 이상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발표를 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임신 중 교대근무가 태아의 발달, 성숙에 미미한 영향을 미쳤으나 야간 노동의 경우 임신 기간을 늘리고, 복중 태아의 성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평가하는 수준에서 증거가 불명확하나 영향은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고정 야간근무를 피할 경우 연간 7건의 유산이나 사산을 예방할 수 있다 고 하여, 고정 야간근무만이라도 회피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준까지 있어, 관련성이 없다고 증명되지 못한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교대제가 임산부의 유산에 영향을 어느 정도, 어떻게 주는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집중될 것으로 본다.

근로기준법 상 임산부의 야간 근무는 법으로 금해져 있지만, 야간 근무가 필수적인 사업장의 경우 3교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상, 여성 노동자 스스로 동의서를 작성하여 야간 근무를 지속하고 있다. 그나마 병원의 경우 반도체 산업과는 달리 월 3-4회 정도로 야간근무가 단축되기도 하지만 반도체 사업장은 출산 휴가 직전까지 일말의 타협의 여지가 없다.
만삭인 여성 노동자가 야간 근무를 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건만, 인력 보충이 안 되는 대부분의 병원과 사업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은 법적 규제도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단서가 붙어서 실상 효력이 없다고 보면 되겠다. 본인 동의서라는 단서는 법 조항의 의미를 거의 상실케 만들었다.

19세기, 그리고 지금에까지 계속되기도 하는 아동 노동에 대해서 양심에 근거하여 금지령을 내리고 법적 규제를 가했던 것은,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지만, 19세기 그 당시에는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어쩔 도리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또한 아동이라 할지라도 돈을 벌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그 노동에 참여했던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누구나 참 안타까워하고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던 것이었겠지만, 그런 노동의 강제에는“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라는 상황논리가 항상 존재해왔다.
임산부에 대한 야간 노동 강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생산이 중단될 수 없는 어쩔 도리 없는 상황이며, 임산부 역시 돈벌이를 해야 하기에 “자발적 동의서”를 작성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인식을 바꾸고 그 인식이 보편화되려면 첫 째로 꾸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고, 둘째로 그에 대한 전사회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 전사회적 동의를 얻는 데는 대중의 지각이 필수적이며, 그러한 대중을 일깨우는 데는 학계의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대중에 호소할 수 있는 여론과 문화적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연구 작업이 선행된 이후에도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한 대중과의 소통, 공유가 있어야만 사회 흐름의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본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보편적인 인식 변환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인류 내 공유하고 있는 양심(영어로 conscience: 공동으로 알고 있음 의 뜻)에 우리 모두 곧 눈을 뜰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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