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0월 |이러쿵저러쿵] 연구소 해체 그 날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일터기사

연구소 해체 그 날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부산연구소 상임활동가 새우의 깡

부산 연구소 상근으로 들어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불끈 쥔 주먹을 힘차게 들어 올려 가슴 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함께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때문에 별 기대 없이 내가 읽어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얼렁뚱땅 작성해서 메일로 부쳤고, 내심으론 경광등 생산직 채용 같은 것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저는 가공할 집중력과 지구력에다 체질적으로 귀사가 원하는 신체조건을 타고나……기업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임을 항상 인식하고 근면과 성실로 무장하고 땀 흘려 일하는 산업의 역군이 되겠습니다.』

이런 완벽한 자소서도 외면 받은 지가 6개월을 훌쩍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장기실업자는 어차피 모양새 자체가 좌절해도 표시가 잘 안 나니, 넉살좋은 이력서를 후딱후딱 쓰며 근성만 키우고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광어회를 앞에 두고 했던 술자리 면접에서 이리 저리 침을 튀며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 때마다 안 하니만 못한 수습으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만 있을 때, 소장님과 숙견동지는 싱긋 웃으며 그런 나의 모습을 즐기는 듯 했다. 사람들이 편하고 좋았다. 어디까지 말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거진 다 말한 것 같다. 싱긋 웃기만 하는 이 사람들에게 밑바닥까지 다 털린 것이다!

면접이 끝나고 술기운인지, 가슴 한켠 응어리가 풀렸는지 가벼운 몸으로 훌렁훌렁 걷다가 지하철에 올라타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활동에 대한 고민들이 스쳐지나갔다. 막연하고 생소하지만, 자본가들의 악랄한 이윤추구 앞에서 늘상 다치고, 골병들고, 죽어가는 게 바로 우리 노동자가 아닌가. 건강한 신체를 내세우며 써 내려가던 나의 자소서는 바로 착취로 빨아 먹힐 그것이 아직 충분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내 몸 둥아리를 기꺼이 탐욕스런 자본의 재단에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난 그들이 원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좇는 돈 냄새엔 우리의 피와 살점과 뼛가루와 애환이 뒤엉겨 있지 않은가……

8월 초, 여름휴가 기간이라 숙견 동지가 지리산에서 팔랑팔랑 멱을 감고, 소장님이 해외여행을 가서 두 팔을 휘휘 저으며 유람하는 동안, 맘 편히 놀지도 못하고 뙤약볕 아래 점점 짙어지는 그림자로써 온몸으로 수심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꼭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통 소식이 없었다. 내가 여기 면접 본 사실이 평소 경솔하다는 공통점으로 잘 어울리는 동지들을 둔 탓에 소문이 파다한데……물론 그 소문엔 갸우뚱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하지만…어쨌건!

지금은 내가 채용 될 당시의 경쟁률이 몇 백 대 1쯤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어떤 땐 정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내가 나라는 사람을 관찰해 볼 때 활동가가 될 확률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부족하고 자질도 갖추지 못한 내가 활동가로서의 첫 발을 용감하게 내디딘 것! 그것은 1%도 안 되는 나의 가능성을 믿어 준 동지들이 있어 가능했다. 연구소가 해체 될 때까지 멋지게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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