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0월 |현장의 목소리]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보호자 없는 병동”

일터기사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보호자 없는 병동”

글, 사진 / 한노보연 부산연구소 새우의 깡

“간병인이 병원 직원 아니었어요?”

요즈음 병원 입원실의 새로운 풍경 중 하나가 보호자 대신 간병노동자가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병인제도가 참으로 불합리하게 운영되고 있다. 가족들도 꺼려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매시간 묵묵히 대신 해주는 간병노동을 통해 환자는 돌봄을, 보호자는 편리를, 병원은 환자 유치를, 간병노동자는 일을 얻으니 모두가 좋지 아니한가? …라고 행여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안정 간접고용과 무권리, 저임금, 장시간 노동, 인격적 무시로 고통 받는 노동자가 바로 간병노동자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간병인은 보통 간병인협회가 제공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이후 간병인협회의 소개를 받아 병원에 채용된다. 그런데 병원의 정식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병원과 업무협약(내용상 도급계약)을 맺은 모 간병인협회가 파견한 협회 회원으로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월급의 일부는 협회 회비로 징수 당한다. 간병노동자는 병원 직원도 협회 직원도 아닌, 계약서상으로는 누구하고도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신분인 것이다. 그러면서 일은 병원직원의 지휘와 감독 아래서 한다. 한 마디로 간병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이다. 그리고 대개의 특수고용이 고용불안을 극대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듯, 간병노동자도 투쟁이 답일 수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려 있다.
부산센텀병원 간병노동자들도 열악한 실태를 참다 참다 못해 결국 투쟁에 나선 경우이다. 부산센텀병원은 2005년 8월부터 “보호자 없는 병동”을 표방하며 간병서비스를 제공했다.

광고문대로라면 센텀병원 간병노동자들은 ‘본원 추가 교육 및 실습으로 양성된 자체 전문 간병인’인 셈이다. 실제 센텀병원은 간병노동자로 하여금 병원이 지정한 간병복을 입게 하고 직원증을 패용하게 했다. 그런데 간병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병원이 간병노동자들을 해고한 구실이 자신과 도급계약을 맺은 OOO간병센터의 회원이 아닌, 탈퇴자는 간병업무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해고 며칠 전에 OOO간병센터는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회원이 싫으면 회원탈퇴를 해도 된다고 회유했고, 병원의 직원임을 꼭 믿고 있었던 조합원들은 탈퇴했었다. 조합원들은 병원과 간병센터의 농간과 특수고용 현실에 떠밀려 순식간에 일터를 잃은 것이다.

스스로도 돌볼 수 없는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어떻게 타인을 돌볼 수 있겠는가?

한편, 부산센텀병원 간병노동자들은 해고되기까지 4년여 동안 24시간 맞교대로, 월 100만원의 임금만 받으며 일해 왔다. 그들이 법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에 의해 계산하면 2005년에는 160여만원, 그리고 2009년에는 220여만원이다. 그런데 센텀병원 간병노동자들은 4년여 동안 한 푼의 임금인상 없이 법적 적정임금 미만의 월급만 받으며, 또한 주말, 휴일, 명절 전혀 없이 24시간 맞교대로 일해 온 것이다. 게다가 간병노동자들은 병원 간호과장의 지시에 의해 간병업무 이외의 배식, 청소 등의 일까지 추가적으로 해야만 했다. 심지어는 병원의 지시로 전문의료인이 수행해야 할 인공도뇨, 관장 등의 의료행위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간호과장은 간병사들을 모아놓고 훈시하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불러서 혼내기도 했는데, 그로 인한 인격적 모욕과 멸시였다고 한다.
결국, 간병노동자들은 2009년 7월 9일 자발적으로 민주노총 부산본부 노동상담소를 찾았고, 상담과정에서 공공노조에 가입해 의료연대지부 부산지역 간병인분회를 결성했다. 이어서 7월 23일 공공노조 부산본부가 센텀병원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직접고용과 임단협 체결을 요구하자, 병원은 자신들은 사용자가 아니며 간병인은 노동자도 아니라며 발뺌했고, 28일부터 ‘탈퇴자 간병업무 중지’를 사유로 출근을 막았다. 이에 간병인분회는 현재까지 투쟁을 계속 해오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부산센텀병원 간병노동자 투쟁은 한 병원만의,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로 떠밀려 있는 특수고용직 간병노동자의 일반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간병노동이 병원자본의 주도로 본격적으로 상품화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간병서비스산업은 마치 산업화 초기의 온갖 폐해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간병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무권리 상태로 내몰려있고, 저임금은 물론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조결성은 물론 노동자성 자체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새로이 성장하고 있는 간병서비스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병노동자들도 금속노동자, 공공노동자 등처럼 힘차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열악한 처지를 스스로 벗어던지고자 말이다.
지금 부산센텀병원 간병노동자들이 앞장서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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