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1월 / 칼럼] 신종인플루엔자를 통해 살펴본 전염병과 노동자 건강권

일터기사

신종인플루엔자를 통해 살펴본
전염병과 노동자 건강권

한노보연 소장 김 인 아

어느 날 한 사업장의 노안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신종플루 때문에 회사에 못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거 관련해서 규정이 어디 없나요?”라는 질문이었다. 그 이후 보건관리대행을 하면서 만난 중소규모사업장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종플루를 통해 한국의 산업보건체계와 노동과정의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종플루가 유행을 하면서 많이 이야기되었던 축산자본의 문제나 공공의료와 제약자본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관련해서 발생하는 사업장의 다양한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노동자의 건강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신종플루가 대유행을 하면서 사업장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사업장에 신종플루 환자가 생겼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란 질문과 “며칠을 쉬게 하고, 언제 어떻게 복귀 시켜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서두에서 언급한 질문에서처럼 전염병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태가 혼란을 가중시켰다. 산업안전보건법 상에 전염병이나 정신질환 등 다른 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경우에는 근로금지를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임금 대책은 어디에도 정리되어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지방 노동청에서는 ‘무급으로 하는 게 맞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사업장별로 노동형태별로 ‘알아서’ 관리 원칙이 정해졌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의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안건으로 신종플루와 관련한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원칙적 대응을 한 사업장은 본인은 물론 가족이 의심환자 이상일 때도 유급으로 병가 사용이 가능하도록 조처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이 없거나 힘이 약한 대부분의 사업장은 무급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 보니 ‘가족이 신종플루 확진인데 나와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거나 마스크를 하고 와서 ‘(옆에 있는 노동자의 딸이) 신종플루라는데 나와서 일을 하니 불안해 죽겠다며’ 걱정을 하는 노동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가장 좋은 예방 방법이라고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불안 속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체 일을 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또한 신종플루는 우리 노동시장의 특성도 극명하게 반영한다. 예방 백신에 대한 1차적 접종을 보건의료인에게 실시하면서 실제 환자들과 가장 접촉이 많은 간병인이나 청소노동자가 병원의 직접 고용 의료진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심한 감기나 몸살이라도 나와서 일할 수밖에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고,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감내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신종플루가 의심되지만 임금도 걱정되어서 그냥 참으면서 일을 하고 있고, 작업과정에 감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인정이 어려운 노동자들도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건강보다 기업의 생산이 더 중요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가 신종플루와 관련해서 사업장에 내려 보낸 지침은 이름 자체가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업무지속계획 수립 매뉴얼’이다. 전염병 확산방지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건강보호도 아닌 ‘업무지속’이 핵심인 계획인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의 핵심 내용은 손을 열심히 씻고, 마스크 잘 쓰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라는 것이 전부이다. 실제로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가족 중에서도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 보낸 지침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신종플루관련 복무지침을 발표했다. 이번 지침에 따르면 신종플루 감염확진·판정된 공무원은 완치될 때까지 ‘병가’로 격리치료토록 했다. 그리고 신종플루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1주일 동안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공가’ 처리토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 중 신종플루 감염자가 있는 경우에는 가족이 완치될 때까지 공가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공무원들의 경우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에 적절하게 치료받을 권리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전염병이 전파되는 것도 차단하고 가족이 아플 경우 충분히 보살필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지침이 공무원에게만 적용이 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간병인과 AS같은 특수고용직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신종플루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미 자본주의적 축산산업의 결과로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고 있고, 사스나 조류독감을 통해서 그 파괴력을 경험한 바가 있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면역력을 키우는 것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면역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잘 먹고, 잘 쉬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병원 갈 시간조차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제 2의, 제 3의 ‘신종’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전염병이 대유행에 접어든 지금 만이라도 아프면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고 일이 힘들면 쉴 수 있고, 법에 정해진 대로 하루 8시간만 일을 하고, 작업 중 휴식시간이 충분하게 갖는 것이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업무 지속’의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업무를 지속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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