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1월 / 현장의 목소리] 누구를 위한‘공영방송’인가…!

일터기사



누구를 위한‘공영방송’인가…!

한노보연 이 지 연

“저는 대학을 갓 졸업한 1999년부터 KB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정규직, 비정규직 그 간격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많지 않은 월급 또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회사로 알고 충실히 일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시간, 공영방송 KBS를 만드는데 기여했던 책임감으로 이제는 KBS를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기 위해 차기 사장후보로 등록하고자 합니다”

‘일자리가 희망이다’라는 對 국민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KBS에서는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지금 KBS는 최근 2년간 적자가 1,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경영합리화가 불가피해 정규직 전환 여력이 없다”며 기간제(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거부된 계약직 노동자들은 TV제작본부 컴퓨터영상팀에서 9년 동안 일해왔던 노동자부터 뉴미디어센터 IT인프라팀에서 1년 동안 일한 노동자까지 해왔던 일도 근속연수도 다양하다. 시설관리부터 방송제작(편집, CG, 조명, 오디오, 뉴스진행제작, 사운드 등), 시청자상담, 안전관리 등 방송국 내 대부분의 업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이들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연봉계약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KBS 연봉계약직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5년 2개월이었으며, 30대 76%로 가장 많았고 남성이 62%, 기혼자의 비율은 42%로 조사되었고 한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업무가 아주 다양한 만큼 처우 또한 천차만별이다. 연봉은 1000 ~2000만원 사이, 주5일에서 6일 정도 일하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일 하기도 한다. 방송이라는 특성상 일하는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지만 공통점은 정규직보다 많이 일하고 돈은 적게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신기술팀의 경우 전봇대에 올라가 업무를 하기도 하는데 정규직 직원은 생명수당을 받는 반면 기간제 노동자는 받지 못하는 식이다.

계약직 지부와 KBS 사측은 단체교섭을 위한 만남을 몇 차례 가졌지만 사측이 제시한 단체협약 안에는 고용안정 등 핵심적인 내용들은 모두 제외되어 있다. KBS 사측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영합리화 계획을 살펴보면 기존 자회사인 비즈니스, 아트비전, KBS-i로 87명, 신설 자회사로 122명을 전직시키고 시청자상담업무를 맡고 있는 30여명의 노동자들의 경우는 전원을 외주화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또 전적 동의서를 쓰지 않는 노동자들은 전원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2011년 까지 15% 인원 감축을 목표로 대량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사측에서도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한다고 해서 경영실적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흑자 발표까지 했었다. 9차 까지 실무교섭이 진행되었지만 사측은 애초의 계획대로, 계약직 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되는 시점인 내년 6월만 손꼽아 기다릴 뿐 문제해결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다. 심지어 9월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KBS가 경영혁신을 한다며 비정규직을 대량해고 했다. 해고된 비정규직 인원이 몇 명인가?”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이병순 사장은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이 종료돼 자동해지상태가 된 것으로 해고 인원은 없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우리는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을 뿐 해고한 것은 아니’라는 파렴치한 말 장난으로, 해고된 KBS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난 6월 ‘기간제사원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KBS계약직지부는 창립 150일을 넘기고 있고 해고된 노동자들, 해고를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KBS 계약직지부 조합원)은 KBS 본관 앞에서 매일 아침과 점심시간에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에는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집회를 열어 전국 5개 권역별로 흩어져있는 조합원들의 결속을 다졌다. 그리고 11월 10일, 홍미라 지부장은 차기 KBS 사장공모에 후보로 등록했다. KBS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 지부장은 “이병순 사장 취임 후 KBS는 자본과 효율로 움직이고 있지만, 프로그램의 질은 떨어지고 다양성은 훼손됐으며, 사회적 약자는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공익과 인간이 핵심이 되는 KBS로 정체성 재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KBS는 이제 공정성, 공익성, 공영성, 인간다움을 더욱 강화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며 국가와 시장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비정규직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다양성, 창의성 등 KBS계약직 지부가 바라는 7가지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병순 사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병순 사장 연임시도 규탄대회’에서 한 조합원은 “그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KBS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한 이 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목에 걸린 가시 정도로 여기는 KBS 계약직 지부 문제를 투쟁을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이라 발언했다.

매주 수요일 KBS앞에서 열리는 지부의 집회는 딱, 점심시간에 맞추어 진행된다. 계약직 지부를 이루고 있는 조합원들이 해고자와 해고를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발언하는 조합원들은 스스로를 ‘몇 월 몇 일에 해고된 따끈따끈한 해고자’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1시가 넘어서면 사회자는 ‘해고예정’ 노동자들에게 들어가시라, 안내하기도 한다. 내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KBS로 다시 일하기 위해 들어가는 노동자의 마음은, 그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말, 해고는 살인이며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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