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l 08월ㅣ이러쿵저러쿵] 나는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

일터기사

나는,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

한노보연 / 건설노조 경기건설기계지부
이 미 숙

요즘 난 한마디로 자전거 타기에 ‘꽂혀’있다. 물론 취미로 탄다거나 운동을 위해서 타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이동수단’으로 말이다. 처음엔 같이 사는 친구가 꼬셔서 멋모르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지만, 타면 탈수록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실, 넘쳐나는 자동차 공해로부터 지구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거창한 의무감까지는 아직 아니고, 빠르게만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조금이라도 내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미친 듯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차들을 뒤로 하고 달릴 때면 왠지 모를 쾌감 같은 것이 마구 몰려온다. 물론, 그 안에서 자동차들의 수많은 위협과 무시를 감내 해야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 평택 쌍차투쟁에 연대하기위해 내려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사실 난 1번 국도를 자전거를 달리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자신감이 없다. 1번 국도를 달리는 차들은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전속력을 다해 달리는 차들이 대부분이고, 솔직히 난 자전거를 그다지 잘 타지도 못한다. 특히 화성 동탄에서 평택공장까지 만만치 않은 거리를 그것도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한낮에 가는 것이 내심 두렵기도 했다.

어찌됐든, 시속 15Km/h 가량, 중간에 쉬기도 하고 밥도 먹고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12시 30분 동탄을 출발해서 3시 정각 평택역 도착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린 것!
아는 사람들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하고 있는 틈에 수원역에서 출발한 다른 자전거 팀이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는 모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인데, 그 팀은 수원에서 1시 30분에 출발해서 중간에 밥 먹고 3시 30분가량 도착 한 것이다. 그 페이스를 맞추려면 후덜덜덜~ 같이 안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가량의 집회가 끝나고 쌍차 공장으로 행진을 했고, 막혔고, 최루액이 살포됐고, 물대포가 쏘아졌고, 도망쳤고, 한참 지난 후 경찰들이 밀고 지나간 뒷길을 따라 귀가 길을 출발했다. 어두운 1번국도 길을 자전거로 4명이 1차선을 먹고 달리기 시작했다. 내심 걱정이 많이 됐다. 길도 어둡고, 밤이 되니 자동차 소리는 더더욱 크게 들렸다. 자전거의 안전 따위는 전혀 고려치 않고 바로 옆을 스치듯 달려 나가는 자동차들, 뒤에서 빵빵거리고 비키라고 소리치는 자동차 때문에 난 잔뜩 쫄아 버렸다. 결국 난 집까지의 풀라이딩을 포기하고 같이 사는 친구와 함께 진위역에서 전철타고 병점역까지 점프를 하고 말았다.

병점역에서 집에 까지 가는 길은 익숙한 길이어서 어둡다고 해도 걱정은 되지 않았고, 신나게 달렸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같이 사는 친구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하는 버스와 사고가 날 뻔 했다. 신호에 걸려 멈춰선 버스를 냅다 달려 잡아서 버스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치며 한 판 하려 했으나 버스기사 아저씨가 일관되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바람에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한마디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건서는 도로교통법상 엄연히 ‘차’로 분류되어있다. 도로에서 자전거가 차선위반을 해서 자동차와 사고나 나면 자전거도 일정정도 잘못이 인정되고, 인도나 행단보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면 당연히 ‘불법’이다. 또한 도로에서 아무 생각 없이 역주행하는 자전거를 가끔 보게 되는데 이때 사고가 나면 저전거는 ‘중과실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처럼 자전거도 교통법규상 차로 분류되어있고, 인도에서는 달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에서 달리는 자전거에 대해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자전거가 왜 도로에 나와서 달리느냐’며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자전거 때문에 길이 막힌다.’라고 따진다. 거참.

그날 몇 번의 사고 위험을 경험하고 집으로 오면서 내내 화가 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이기적이고 모순된 이 나라 사회구조가 정말 뭐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경제발전의 진정한 수혜자가 되어야 할 노동자들에게 오직 이윤만을 위해 죽어달라고, 너희들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고 말하는 쌍용차 자본, MB정권의 경제논리나, 법적으로도 보장된 도로통행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전거 이용자들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산업적 가능성만을 따지며 멀쩡한 하천을 파헤쳐서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떠들어대는 MB정권의 자전거정책(?) 사이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소득 2만달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노동권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다. 하천을 파헤쳐 전국을 연결한 잘 닦인 자전거도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도로주행권과 환경을 보존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풍요로움이다.

나는 이윤보다는 사람이 좋다. 나는 속도보다는 자유로움이 좋다.
나는 내 생활의 편리가 환경을 망가뜨린다면 차라리 어느 정도 불편함을 택하겠다.
그래서 난 오늘도 자전거를 탄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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