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 04월 | 새세상열기] 두 번째 | 장애인의 현실과 장애인운동

일터기사

두 번째 이야기

장애인의 현실과 장애인운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국장 남 병 준

namtoosa@naver.com



1. 장애인의 현실

대한민국에 장애인은 몇 명이나 살고 있을까?

매우 상식적인 질문으로 들리지만, 곧바로 답할 준비가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2009년 6월말 현재 241만여명이 장애인으로 등록을 한 소위 ‘등록장애인’이다. 2009년 한국 인구가 4800만명을 넘었으니, 한국의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약5%란 얘기가 된다.

숫자들은 비교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최근 보고된 다른 나라의 장애인비율과 비교해보자.

독일의 경우 인구의 10.2%로 한국에 비해 매우 높았고, 미국은 19.3%, 영국은 19.7%란다. 이쯤 되면 커다란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외국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일본은 약4.7%로 한국과 비슷한데,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장애인등록제도는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기 때문이며,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장애인등록제도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란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고 범주화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주제는 지난 기고에서 심도깊은 해설이 있었으니 여기서는 현실의 이야기를 더 살펴보기로 한다.

이렇게 정부에 의해 ‘장애인’으로 낙인찍힌, 장애인들의 삶은 어떨까? 이름도 없이 그냥 ‘장애인’으로 불리고,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거나 외면하는 주위의 시선, 이곳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무시되는 일상적 차별들은 측량하기 어려우니, 우선 소위 ‘객관적’이라 불리는 통계 자료들로 장애인의 삶을 살펴보자. 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2005년, 2008년등)에 의하면 전체 장애인중 45.2%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라고 한다. 비장애인은 저학력이어도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곤 하지만, 장애인의 경우는 학력이 낮다는 것은 공부를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1년에 10번도 외출을 못하는 장애인이 전국에 10만명 이상, 1주일에 한번 꼴로도 외출을 못하는 장애인이 30만명이 넘는다는 충격적 보고도 있다. 결국 신체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년 세월을 골방에 틀어박혀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로 낙인찍히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려지고 격리된 인간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의 54% 수준에 불과하지만, 중증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생활비를 월20만원 이상 추가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장애인가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제적 부담은 더욱 크지만, 장애인의 신체수발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2중 3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신문에 보도된 장애인가족의 자살사건은 무려 15건이나 된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의 공통된 소망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라고들 한다. 장애를 가진 자식이 부모없이 무슨 해코지나 학대를 당할지, 밥이나 제 때 먹을지, 추운데 떨지나 않을지 하는 걱정에 먼저 눈을 못 감는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들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식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는 생활시설을 찾아 자식을 보내고 싶어 한다. 인권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생활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77%이상이 본인의 의사가 아닌 타의에 의해 시설에 입소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장애인의 삶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선택만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2. 한국 장애인복지의 문제점

한국은 공적 사회지출 예산규모 자체가 비참하게 작은 수준이다. OECD국가들 중에서 GDP대비 공적 사회지출예산이 가장 낮으며 평균의 약1/4 수준이라고 한다. 장애인복지예산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며, OECD국가들 평균의 약1/8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 무슨 복지를 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 수시로 장애인복지를 선전해대고 있지만, 실상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예산을 가지고 장애인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것들일 뿐이다. 장애인운동이 세부적 정책대안보다 큰 틀에서의 물리력 투쟁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예산의 틀 속에서는 애초에 장애인의 권리는 없는 것이다.

복지예산을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의 문제도 심각하다. 소위 복지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는 1970년대를 전후하여 대규모생활시설이 폐쇄되거나 축소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위 ‘자립생활패러다임’으로 복지의 기본 이념과 방향이 크게 전환하였다. 한국에서도 10여년 전에 장애인 ‘자립생활’이 소개되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 역시 자립생활로의 전환을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복지예산의 대부분을 생활시설에 퍼붓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보호시설수용이라는 전근대적 이념과 방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장애인 개인의 입장에서는 개인과 가족이 무권리상태로 방치된 삶을 살다, 결국 버티지 못하게 되면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길밖에 열려있지 않은 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공적 책임을 회피하고 민간에 책임을 전가하는 복지의 시장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비리와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서도, 정부는 관리감독과 사후 조치의 책임조차 회피하고 있다. 민간에 사업을 위탁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간 복지사업 예산항목의 대부분은 민간단체 위탁의 형태로 집행되었으며, 장애인복지의 경우 위탁기관은 주로 장애인단체였다. 그 결과 장애인단체들이 체제내화 혹은 권력화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의 실질적 확산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3. 장애인운동의 현황과 전망

한국의 장애인운동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장애인당사자와 장애인부모를 중심으로 전개된 수년간의 투쟁과 그 성과들은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다.

리프트사고로 장애인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2001년부터 전개된 장애인이동권투쟁은 한국의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전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5년간의 목숨을 건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었고, 대중교통체계가 바뀌고 길거리와 건물에 장애인을 차별하는 장벽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과 미친 듯 돌아가는 자본의 속도에 맞서, 장애인의 당당한 권리를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장애인의 권리들은 원래 마땅히 보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었으나 우리 사회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국어사전에 이동권이란 말은 없었다. 하지만, 장애인 스스로 이동의 권리를 찾아내고 투쟁으로 만들어내고,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가히 ‘장애해방의 첫 깃발’이라 하겠다.

2003년부터 장애인부모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교육권투쟁은 장애인의 교육환경을 크게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사회적 의제로 올려놓았다. 장애인운동은 빠르게 성장하였고, 수년간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2007년 장애인등의특수교육법,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2007년 활동보조전국시행 등 법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법제도들이 의미하는 것은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적 권리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그 내용들을 보면,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인 장벽과 차별과 배제를 없앨 것과 교육과 교통 등의 보편적 제도들에 장애인들의 실질적 접근을 보장하는 것 등 매우 기본적인 것이라 하겠다.

이동권과 교육권투쟁에서부터 활동보조와 탈시설-주거권 투쟁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운동의 핵심적 의제들이 가지고 있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립생활’이라는 운동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자립생활이 수용시설을 중심으로 장애인을 격리시키는 구시대적 장애인복지정책을 거부하고, 지역사회에서 보편적 권리를 누리며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했을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의 중심축은 자립생활이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모든 과정들이 자립생활의 의제들을 확장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장애인운동은 커다란 장벽과 탄압에 직면해있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정권의 민생예산삭감과 민중운동탄압이 장애인운동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은 4대강 삽질에 퍼붓기 위해 장애인예산마저 대폭 삭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장애인연금제도를 도입한다더니, 결국 기존에 지급되는 장애수당을 이름만 바꿔놓은 사기극으로 판명이 났고, 오히려 중증장애인에게 생존권 그 자체인 장애인활동보조는 지침을 개악하여 장애인에게 절망과 고통만을 안기고 있다. 이명박정권은 그야말로 장애인에게는 대재앙인 것이다.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과제는 매우 선명하다. 이명박정권의 장애인생존권 탄압에 맞서,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더욱 확장하는 것, 그리고 자립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더 많은 복지제도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복지를 시장경쟁에 내던지지 않고 사회의 공적 책임을 확보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 방식 또한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이동권투쟁에서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이어져오는 장애인운동의 정신으로,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는 당당한 권리의식, 장애인주체와 장애인부모주체가 중심이 되어 전체 진보운동과 함께 하는 연대이며, 비참한 현실을 비참한대로 표현하는 실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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