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ㅣ3월ㅣ풀어쓰는 판례이야기] 현대사회의 막장 드라마

일터기사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일터>의 새로운 코너「풀어쓰는 판례 이야기」입니다. 이 코너에서는 김재민 노무사(노무법인 필)와 이영애 노무사(가온컨설팅)가 주목할 만한 판례를 쉽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설명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읽으며 생긴 궁금증이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laborr@jinbo.net으로 적어 보내주세요, 다음 호에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현대사회의 막장 드라마

노무법인 필 노무사 김 재 민

안녕하세요, 일터 독자 여러분. 이번 호부터 “풀어쓰는 판례이야기”를 일터에 연재하게 된 노무법인 필의 김재민 노무사입니다.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열심히 쓰겠으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질타 부탁드립니다.
막장드라마라는 이야기가 있듯 요즘 TV드라마는 어쨌든 간에 출생의 비밀이나 친자확인 정도는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하는 게 대세인 것 같더군요. 하긴 조선시대에 나왔던 홍길동전 역시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출생의 비밀이 원인이었으니 이 소재는 고금을 통 털어 참으로 매력적인 소재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출생의 비밀이 소설이나 TV가 아닌 현실로 나오면 단순히 보고 즐기는 소재에서 심각한 비극으로 변하게 됩니다. 오늘은 아버지는 아니지만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의 막장드라마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바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판례입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즉 파견법은 어찌됐건 간에 파견허용 업종을 정한 뒤 허용 업종 외의 업종에서 파견행위가 있을 경우 불법파견으로 규정하며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구)파견법에는 2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사용사업주는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현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파견법의 이러한 입법내용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진짜 사장이 누구냐는 문제는 파견법 제정이후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불법파견을 숨기기 위해 사용자가 쓰는 방법만 해도 도급, 위탁, 사내하청, 소사장, 분사, 용역 등 수없이 많으며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위장도급, 즉 겉으로는 도급이지만 그 실제 내용을 보면 파견인 형식이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664조에 규정된 도급은 “수급인이 어떠한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도급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의미하는데 만약 진정한 도급이라면 도급인이 수급인이나 수급인의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나 지휘감독 등의 행위를 못하게 됩니다. 즉, 진정한 도급에서는 도급인은 단지 수급인이 일을 완성할 것만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지 각종 노동법상의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행사할 수 없으나 현실에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면하고 파견법상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위장도급의 형태를 가진 채 불법적인 위장도급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현대자동차(주)사내하청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전의 사건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2005년 2월 초, 현대자동차(주)의 생산공정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하청업체가 해고를 통보
󰋼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를 상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현대자동차는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
󰋼 중앙노동위원회에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만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신청을 하였으나 같은 이유로 재심신청도 기각
󰋼 서울행정법원에 위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 현대자동차(주)는 피고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가하여 실질적인 피고로서 소송에 응소
󰋼 원심판결(1심과 2심)은 묵시적 근로관계 성립 부정,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불법파견에는 구 근로자파견법 제6조 제3항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역시 참가인인 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원고들의 사용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
󰋼 대법원에 상고,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하고 있다는 주장, 그렇지 않더라도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하고 구 근로자파견법 제6조 제3항이 적용된다고 주장함

사건 경과에서 알 수 있듯 현대자동차(주)의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하청업체가 해고를 통보하여 이와 관련된 법정 분쟁 중 과연 누가 진정한 사용자인가를 다투는 문제에 있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 모두 하청업체가 진정한 사용자일 뿐 현대자동차(주)는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였지만 대법원은 2010년 7월 22일 이러한 원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현대자동차(주)가 진정한 사용자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의 주요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의 주요 요지>
① 현대자동차의 자동차조립 ․ 생산 작업은 대부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으로 진행 되었는데, 참가인과 도급계약을 체결한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의장공정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② 원고들은 컨베이어벨트좌우에 참가인의 정규직근로자들과 혼재하여 배치되어 참가인 소유의 생산관련시설 및 부품, 소모품 등을 사용하여 참가인이 미리 작성하여 교부한 것으로 근로자들에게 부품의 식별방법과 작업 방법 등을 지시하는 각종 작업지시서 등에 의하여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의 고유 기술이나 자본 등이 업무에 투입된 바는 없었다.
③ 참가인은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 권과 변경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직영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원고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방법, 작업순서 등을 결정하였다. 참가인은 원고들을 직접 지휘하거나 또는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소속 현장관리인 등을 통하여 원고들에게 구적인 작업 지시를 하였는데, 이는 원고들의 잘못된 업무수행이 발견되어 그 수정을 요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방식의 작업지시가 이루어졌다.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 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도급인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도급인 등에 의해 통제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④ 참가인은 원고들 및 그 직영근로자들에 대하여 시업과 종업시간의 결정, 휴게시간의 부여, 연장 및 야간근로결정, 교대제 운영 여부, 작업속도 등을 결정하였다. 또 참가인은 정규직 근로자에게 산재, 휴직 등의 사유로 결원이 발생하는 경우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로 하여금 그 결원을 대체하게 하였다.
⑤ 참가인은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를 통하여 원고들을 포함한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근태상황, 인원현황 등을 파악 ․ 관리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들은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참가인의 사업장에 파견되어 참가인으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 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사정만을 들어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들이 원고들을 고용하여 참가인의 지휘 ․ 명령을 받아 참가인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은 근로자파견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 참가인 : 현대자동차(주) ※ 원고 : 비정규직 노동자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비록 도급관계를 맺은 하청업체에 입사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업무를 수행하면서 현대자동차(주)의 정규직 직원과 동일한 장소에서 근무하였으며 실제로 현대자동차(주)의 작업지시서 및 업무지시를 받아 일한 것으로 보아 이는 진정한 의미의 도급이 아닌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근거에 의해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주)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2005년 2월 당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은 (구)파견법이 적용되어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자동적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이쯤에서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쓰여진 홍길동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길동전은 같은 집에서 같은 아버지를 두고 살았지만 첩의 자식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천대와 구박을 받자 결국 집을 나가 펼치는 길동이의 모험이 그 내용이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다음은 홍길동전과 이번 판결문을 재미삼아 비교해 본 것입니다.

홍길동전 대법원 판결문
주인공 서출 출신의 홍길동 위장도급(불법파견)된 비정규직노동자
생활공간 아버지 집(단, 아버지라 부르지는 못함) 실제 사용자인 현대자동차(주)의 생산공장 (단, 사용자라 부르지는 못했음)
동거인 정실 출신의 형 등 다수 현대자동차(주)의 정규직 직원 외 다수
생활의 규율을 정하는 사람 홍길동의 아버지 현대자동차(주) (업무지시, 작업지시서 등)
분노한 이유 서출이라는 이유로 각종 천대와 구박 해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매우 쌀쌀하더니 어느새 봄이 온 것인지 점심 때는 얇은 웃옷 하나만 입어도 큰 추위를 느끼지 않게 되었네요. 하지만 春來不思春(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있듯 날씨는 따뜻해져도 마음속의 봄은 아직 오지 않은 분들이 많지요.
500년 전의 홍길동은 결국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율도국을 찾아가서 왕까지 해먹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이 사용자를 사용자라고 판단하였음에도 아직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을 해야만 합니다. 올 해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분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 속에 진정한 봄이 오길, 다시 한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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