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11월|소설쓰는 이강]<하룻밤 꿈처럼 잊지 마소서> 4화

일터기사


나는 그를 기어 다니는 왕이라고 부른다. 지난 1년 2개월, 이 녀석의 등장으로 나는 어느새 찬밥이 되어버렸다. 견생의 가장 큰 위기가 오고 만 것이다. 모두가 그 앞에서 쩔쩔맨다. 나보다 조금 더 큰 이 녀석은 나보다 훨씬 더 바보 같은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큰 소리로 울고, 마음대로 먹은 거 토하고, “미안해요”도 할 줄 모르는 녀석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응가를 하는데, 화장실도 구분 못하는 이 냄새나는 멍텅구리를 도대체 왜 엄마, 아빠, 할머니, 지오 모두 좋아하는 것일까? 내가 서열 4등이었는데, 이 녀석한테 밀린 것 같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모두가 잠을 자는 한밤중에 자기 마음대로 소리를 질러대고 우는 이 녀석에게 내가 그만하라고 몇 번 경고를 했건만, 아빠는 그 녀석이 아니라 나한테 베개를 던졌다. 아니, 누가 먼저 엄마 아빠를 깨웠는데!

얄미운 녀석에게 편애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박죽을 그 녀석은 원하는 데로 먹는다. 나도 입이라고요, 엄마. 나라고 말라비틀어진 사료만 좋아하겠냐구요. 여기까진 참을 수 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데로 당겨버리고 입에 무는 녀석은 특히나 내 귀를 퍽이나 좋아한 것이다. 아파도 참으리. 3등한테 어찌 5등이 하극상을 하겠나.. 그러나 복수할테야. 아무도 없을 때.

모두가 다 외출한 한 낮, 혜화 아줌마는 빨래하느라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때는 이 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녀석의 낮은 탁자로 달려들었다. 호박죽은 내꺼야! 수저를 들고 있는 녀석은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내 긴 혀로 달콤한 호박죽을 낼름낼름 핥기 시작.. 황홀경이 시작됐다..

그래.. 이 맛이야. 남의 것 빼앗아먹는 맛… 아차, 떨어트리면 안 돼. 들키니까.

바닥을 보인 호박 죽 그릇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나는 부리나케 내 자리로 가서 낮잠 자세를 취했다. 혜화 아줌마가 화장실에서 내다보는 것 같다.
-민오, 다 먹었어? 뭔놈 8개월 아-가 이래 수저질을 잘 해? 여기 한국 아-들은 다 빠른가베..잉?

입에 남은 달짝지근한 호박죽의 맛을 되새기는데 민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ㅎㅎㅎ 꼬우면 너도 사료 먹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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