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11월|유노무사상담일지]더불어여

일터기사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nextstep1@hanmail.net

2011년 10월 3일,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다. 「실업계 고교생들, 시(詩)로 쓴 절망과 분노」라는 제목의 기사는 서울의 한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낸 시집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나라말)에 관한 글이다.
“난 오늘도 어김없이 배달을 한다/ 또 시작된 딸배/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알바가 직장이 되었다/ 배달을 가면서/ 이리저리 곡예를 부리며/ 차를 제낀다/ 위험한 인생이다/ 그래도 난 돈을 벌 것이다/ 그것이 살 길이다”(김모군의 ‘딸배(배달) 인생’)
“내 나이 열아홉/ 꿈이 많은 나이/ 공부를 하면 대학을 가고/ 대학을 가면/ 취업을 해야 하고/ 남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아홉은/ 꽃다운 나이라고 한다/ 하지만 열아홉은/ 꽃다운 나이가 아니다/ 각자 무거운 짐을 하나씩 들고 있다/ 최고로 고민이 많은 나이?”(박모군의 ‘내 나이 열아홉’)
“짐을 쌌다/ 겉옷 한 벌 속옷 한 벌/ 새벽 두시 집을 나갔다/ 해 뜰 때까지 돌아다녔다/ 아는 형이랑 부산에 갔다/ 찜질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노래방에 가서/ 또 시간을 때웠다/ 가출도 반복된 일상/ 학교처럼 지겨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최후의 수단이다”(김모군의 ‘가출’)

이 학교의 세 선생님은 교실에는 빈자리가 많고, 자퇴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고, 아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 항상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 교사는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시를 써보라고 했고 2008년부터 3년 동안 시화전을 하면서 아이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는 것들을 글로 풀어낸 시를 모아 시집을 낸 것이다.

얼마 전까지 진행했던 부당해고 사건이 중노위 재심까지 마무리 되었다. 결론은 ‘기각’이다. 노동자가 졌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운전원들이다. 2010년, 3단계의 전형-1차 서류전형, 2차 인성 및 적성검사, 3차 면접-을 통해 100여명이 선발됐다. 이 중 14명은 수습운전원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합격통보일로부터 1년간 합격자 유효기간이 적

용되었다. 누군가 빠져나가면 추가로 들어갈 수 있는 대기자 명단인 것이다.
보름 정도의 수습운전원 교육을 마치고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3개월의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수습근로계약서”가 명시되어 있고, 1월 1일부터 3월 25일까지의 기간에 대한 수습근무평가를 통해 본 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과 수습평점표가 붙어 있었다. 수습평점이 76점에 미달하면 수습근로계약은 해지되고 76점 이상이면 4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3단계의 전형에 수습근무평가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친 결과가 최초 수습근로 체계일로부터 1년의 근로계약인 것이다. 그리고 10개월 후 평가를 거쳐 무기계약 전환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제도는 인사권의 범위 내에서 가능할 수 있다. 왜냐면 기간제법이 이를 용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수습평가기준에서 사용자의 지시에 의해 결정되는 운행횟수, 운행거리가 주된 평가항목으로 설정되어 있어 합리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부당함을 제기하였다. 물론 부수적으로 “너무도 엄격한 채용과정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것은 사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수습교육, 수습기간을 거쳐 평점 미달시 본 채용을 거절하는 것은 사실상 해고이다. 어쩌면 사용자에게도 인사관리를 보다 복잡하게 하고 불필요한 경비를 지출하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다소 비용이 들고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보다 강력한 현장통제가 가능한 제도를 만들고 이 제도가 현장에 뿌리박히도록, 우월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업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수습 운전원일 때만이 아니라 수습 을 마친 후에도 끼니를 대충 해결하고, 휴게시간도 잘 사용하지 않는 운전원, 차량․장비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본 채용과 무기계약 전환에서 높은 평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앞의 시(詩)에서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알바가 직장이 되었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절망과 분노가 느껴지는 노동현실! 그래서 다시 한번 되뇌인다. 너무도 절박하기에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고 그 희망을 찾기 위해선 뭔가 짜릿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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