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이 박혔던 눈에서 흐르던 눈물
<나의 노안활동이야기>
한노보연 회원 문 언 우
먼저, 제 소개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나이는 서른 중반이며 부산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산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 본 경험이 없는 부산 촌놈입니다. 직장은 한국철도공사이고요,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정비창지부 조합원입니다.
제가 노동안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종업원 20명 정도의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다가 겪은 작은 사고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 저는 밀링기에 매달려서 커터를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대형선반에서 엄청난 가공물을 절삭하고 있었구요. 열심히 커터를 교환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 눈으로 ‘탁’하고 무언가 부딪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옆에서 작업하는 대형선반의 절삭 칩이었습니다.
기계에서 내려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화장실에 있는 거울로 한쪽 눈으로 다친 눈을 쳐다봤습니다. 눈동자 수정체에 칩 모양의 화상이 있었습니다. 속으로 “큰일 났다.” 외치고 찬 물로 계속 화상 난 부위를 식혔습니다. 때마침 그날이 토요일이라 안과의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여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일요일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수정체에 화상 입은 것은 상처가 깊지 않아서 2주 정도면 정상의 눈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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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친 눈에서 칩을 뽑아내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먼지 같이 미세하고 날카로운 칩들이 10 여개나 박혀있었던 것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제 직업을 물어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님 같은 분들이 일하시는 현장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이 정도는 박혀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요. 지금도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박혀있겠지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장을 찾아가서 “사고 당해서 치료를 받았는데, 영수증에 적혀 있는 치료비 주세요.” 했더니 알았다면서 확인하고 줄 테니 현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돌아오질 않는 겁니다.
1주일 뒤에 조장을 찾아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못준다고 하더라.” 1주일 뒤에 과장을 찾아가도 똑같은 소리, 또 1주일 뒤에 직장(공장장)을 찾아가도 똑같은 소리, 또 1주일 뒤 곧바로 부장한테 올라갔더니 부장도 또 똑같은 소리… 부장한테 욕만 먹고 다시 현장으로 내려왔었죠.
이것은 분명 제가 잘못해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잖습니까? 며칠 뒤에 곧바로 사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치료비를 주십시오.”했더니 그 옆에 있던 경리책상에서 하얀 봉투가 나왔습니다. 영수증의 금액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봉투를 받았습니다. 이놈들은 주려고 준비했다가 사람 봐가며 주는 놈들 같았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현장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현장에서 이 일로 영웅이 되었지요. 하지만 이후 제게 돌아온 것은 임금동결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당이 작게는 3,000원, 많게는 6,000원 정도 인상되었는데도 저만 임금이 동결이었습니다. 치료비를 청구했다는 게 이유이지요.
너무 열 받은 나머지 다음 날부터 출근을 안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으로 전화 와서는 일당 1,000원 올려줄 테니 회사에 나오라고 합니다. 더 열 받았지요. 그 다음날에도 집으로 전화가 옵니다. 2,000원 올려줄 테니 나오라고요. 참으로 더럽지요. 3일째 되는 날까지 출근을 안했습니다. 그때도 전화가 왔지요. 5,000원 올려줄 테니 나오라고요. 또 안 갔습니다. 젠장, 짤렸지요. 그 당시에는 노동부 찾아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알지 못했으니까요.
한 달 뒤에, 받지 못한 일당을 정리하기 위해서 다시 회사를 찾아갔는데 같이 일했던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아주머니께서 해주시는 이야기에 가슴이 들뜨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누구는 선반에서 물건이 튀어나와 코를 다쳤는데 치료비하고 보상금도 받았다더라, 누구는 다리를 다쳤는데 치료비 받았다더라……’ 며 산재를 당한 동료들이 치료비를 받고 보상금을 받은 게 제 덕이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심 속으로는 ‘이 정도면 됐구나. 내가 회사에서 짤려도 됐구나.’라고 혼자서 즐거워했지요. 나머지 일당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당당하게 걸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노동안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계기였습니다.
잠시 쉬다가 고용보험으로 재취업을 위한 학원을 다니면서 자동차정비기능사2급 자격증을 따고, 수료할 무렵에 철도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여 지금껏 철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합에서는 부산차량지부 산업보안전보건위원회 위원을 1년 정도 했었습니다. 그 때 가졌던 마음을 다시 다지고 싶어서 부산연구소에 문을 두드리고, 지금은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노동자 건강권은 기본입니다.
그 기본을 토대로 각 현장에서 산재가 사라지도록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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