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불산사고의 진짜 원인은?
한노보연 콩
지난 9월 27일 구미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 가스가 누출되어 다섯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인근 노동자와 주민 만여 명이 치료를 받았다. 언론은 이 사고가 ‘근로자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불산 가스를 빼내는 에어밸브와 불산을 빼내는 원료밸브를 순서대로 여닫지 않아 불산 가스가 갑자기 새어나왔다는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20톤짜리 불산 탱크 두 개에서 불산을 빼내고 있었다. 탱크 한 개당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이 걸리는지라 서둘러야 했다. 안전관리책임자는 사무실에 있었고 현장을 관리하는 이는 없었다. 이 공장에서는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회사는 인건비를 아끼려 감원을 해왔다. 이런 맥락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후 얼마나 더 큰 피해를 남길지 모를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하지만 세상은 오직 그 연쇄 반응의 마지막에 있는 노동자, 게다가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노동자의 부주의를 탓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노동부가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안전교육 동영상 <생각의 속도>를 보자. 2008년 ‘근로자의 부주의 및 안전장비 미착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1,448명인데, 이는 ‘근로자의 생각전환만으로 줄일 수 있는 사망자’라 말한다. 안전을 생각하는 건 75분의 1초라는 ‘찰나’에 이루어지는데, 한 해 1,448명의 노동자들이 바로 이 찰나에 안전장비를 착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안전장비 착용은 산재 사망의 원인이 아니다. 이 동영상을 만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산재 사망 사고 중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했다면 재해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경우는 35.6퍼센트였다. 또한 재해를 유발한 설비나 기계에 안전·방호장치를 설치했다면 재해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경우도 39.2퍼센트에 불과했다. 다수의 산재사망은 보호구나 안전장치를 잘 사용해도 피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하긴 개인보호구나 안전·방호장치는 자동차로 말하면 안전벨트나 에어백인 셈이니, 사고가 났을 때 피해를 줄여줄 수는 있지만 사고 발생 자체를 예방하지는 못하는 건 당연하다.
자, 그렇다면 안전장비의 문제가 아닌 나머지는 ‘근로자의 부주의’가 원인인 걸까. 노동자들이 75분의 1초 그 찰나에 작업 절차나 위험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딴 생각을 해서 죽어갔다는 설명이 과연 옳은 걸까.
운전 시간이 네댓 시간까지는 교통사고 위험이 크게 늘지는 않지만, 여덟 시간 쯤 되면 사고가 급증한다는 연구가 있다. 운전만 그런가. 어떤 일도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안전에 신경을 쓸 집중력이 떨어진다. 1997년 키르칼디라는 사람은 독일 의사들을 조사하여 주당 노동시간이 48시간을 넘으면 왕진 도중 사고가 다섯 배 더 많아진다고 보고했다. 배운 것 많고 똑똑한 의사들이라도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75분의 1초 동안 부주의해질 수밖에 없다.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울 만큼 바쁜 것도 문제다. 구미 휴먼글로브 공장의 불산 누출사고처럼 일을 서둘러야 할 때면 안전에 신경 쓸 75분의 1초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통안전 캠페인에서는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갈 수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라고 당부한다. 과속 운전을 막기 위해 길에 따라 속도를 제한하고, 아예 과속 방지턱으로 과속을 ‘방해’하거나 감시 카메라로 단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반대다. 일을 서두르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감시하는 일은 커녕, 일을 하다 딴청부리지 않는지 감시당하기 일쑤다. 물론 찰나의 실수로 손이 절단되기 쉬운 프레스나 밀링 설비에는 일을 서두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치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바쁠 때는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런 장치를 끄고 일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배를 만든다는 한국의 조선소에서는 철판 이쪽에서 페인트를 칠하는 동시에 저쪽에서 용접을 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큰 폭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다. 안전보다는 속도가, 노동자 목숨보다는 이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모답스 기법에 따라 7분의 1초에 해당하는 1모드 단위로 노동자의 몸 동작 하나하나를 잘게 분석하여 작업 속도를 산출하고 업무량을 할당한다. 일터 곳곳에는 안전제일 표지판이 붙어있지만, 절대 다수의 일터에서는 속도가 제일이고 생산량이 제일이다. 이런 현장에서 안전을 생각할 75분의 1초라는 찰나는 낭비, 비효율, 군더더기일 뿐이다.
제대로 안전을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속도와 생산량에 쫓기지 않고 안전에 충분히 신경쓰며 일할 수 있도록 쉬엄쉬엄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오래 일하느라 안전에 둔감해지지 않도록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졸음에 겨워 안전에 신경 쓸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심야노동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사업주가 이런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엄중히 처벌하고, 안전 대신 속도를 선택할 경우 오히려 피해가 더 크게끔 규제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노동자에게 아무리 안전 의식을 강조해도 산재 사고는 예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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