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2012년 새해가 밝아 어느덧 1월이 지났다. 1월이 마무리될 즈음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발걸음”이 시작되었다. 1월28일~29일 재능교육 투쟁 1,500일 함께하는 ‘희망 색연필’, 1월30일부터 2월11일까지 정리해고,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순회하며 서울시내-강남지역-과천-안양-인천-안산-수원-둔포-평택까지 13일간 걷는 ‘희망뚜벅이’, 2월11일~12일 쌍용차투쟁 1,000일 이전 함께하는 ‘희망캠핑’, 2월15일 쌍용차 1,000일 투쟁까지 한겨울 살을 에이는 듯한 혹한을 뚫고 희망발걸음이 진행되었다. 2011년 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쌍용차의 희망열차, 희망텐트 그리고 강정마을의 희망비행기 등 ‘희망’을 쟁취하기 위한 수많은 투쟁이 진행되었다. 희망발걸음은 2012년 노동자의 ‘희망’을 찾기 위한 힘찬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노동법률가단체(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는 1월30일 세종호텔노조 지지방문, 1월31일 세종호텔~강남역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결합하였다. 1월31일 9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발검음에 동참하는 노동법률가단체 공동선언’을 통해 ‘힘찬 연대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구호도 힘차게 외치고, 함성도 지르며 희망뚜벅이들은 세종호텔을 출발하며 ‘힘차게 전진하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채 1분도 되지 않아 세종호텔에서 퇴계로2가 교차로 사이 인도에서 희망뚜벅이들의 앞과 뒤를 전경이 에워쌌다. 경찰측은 ‘신고되지 않는 집회다’ ‘정치적 구호가 적힌 몸자보를 떼고 삼삼오오 흩어져서 가라’ ‘3차 경고방송을 마쳤다. 곧 연행하겠다’ 등 ‘힘찬 전진’을 외쳤던 희망뚜벅이들을 가두어 두었다. 사실상 인도에 감금된 상태였다. 변태도 아닌데 희망뚜벅이들에게 이 추운 날씨에 ‘벗고 가라! 그러면 보내주겠다’고 연신 방송을 했다. 거리를 걸으며 희망뚜벅이들이 외치는 주장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두려움의 대상이 된 걸까?
이후 일정도 있었던 상황에서 더 이상 말장난에 대꾸할 가치도 시간도 없었다. 희망뚜벅이들은 감금되었던 인도 옆 건물 지하를 통해 삼삼오오 흩어졌고 동국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동국대 집결 시간에 맞춰 도착해 보니 빨간 희망뚜벅이 조끼보다 형광색 옷으로 차려입은 경찰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별 마찰없이 남산을 넘어 한남대교를 넘어 강남으로 들어섰다. 무전기를 든 경찰 몇몇이 뒤따랐지만 이들은 세종호텔에서 만난 경찰들과 관할이 틀려서인지 신사역에서 강남역까지 구호도 외치고 훌라송도 하고 시끌벅적 거리를 활보했지만 우리에게 ‘몸자보를 벗어라’ ‘구호를 외치지 마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삼성이 세계 최악의 기업을 선정하는 ‘공공의 눈(Public eye)’ 온라인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것에 맞춰 삼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결합할 예정이었다. 강남의 경찰들은 모두 삼성을 지키는 것에만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희망뚜벅이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경찰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경찰이라는 미명하에 공권력을 동원하거나 공권력을 집행함에 있어 그 어떠한 기준도 근거도 없이 무작정 지휘권자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말바꾸기를 눈 깜빡이듯이 하는 세상이니 경찰들의 이러한 태도는 애교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인가?
강남역 일정을 마치고 난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떠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다. 철부지 어린이라면 마냥 눈이 반가울테지만 거리를 걷고 있을 희망뚜벅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추운 날씨와 눈보라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이들의 발걸음이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추운날씨는 우리를 더욱 힘겹게 하기에 괜시리 미안함까지 밀려왔다.
‘희망뚜벅이’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뚜벅뚜벅 걸었다. 느리고 힘없이 터벅터벅, 터덜터덜 걷지 않았다. ‘뚜벅’이라는 단어는 ‘뚜벅거리다’의 어근으로 ‘발자국 소리를 뚜렷이 내며 걸어가는 소리가 잇따라 나다’라는 뜻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너무도 뚜렷한 목적과 의지가 있기에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희망뚜벅이들의 힘찬 발걸음은 계속 될 수 있었다. 보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희망’이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한 수많은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그마한 실천이 소중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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