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2월ㅣ이러쿵 저러쿵] – 활동가와 연애하기

일터기사

활동가와 연애하기

한노보연 회원 김 경 근

몇달전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지라 연애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활동하는 이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반갑고 재미있기도 하고 가끔은 고민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라 더 그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한노보연 송년회 자리에서 우연히 어떤 선배 활동가 부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와 연애하기’ 초급에 갓 입문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왠지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활동가들이 안 그러하겠냐마는 제 친구 역시 늦은 퇴근 시간, 잦은 밤샘으로 일상생활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하죠. 당장 해결해야하는 과제들 속에서 ‘자신이 행복한가’와 같은 고민들은 너무 호사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너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약간은 걱정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 친구와 저 모두에게 말이죠.

요즘 제 고민은 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입니다. 쉽게 말해 그의 활동에 대해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요? 그의 삶에 대한 존중과 방관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요? 상호간의 교감을 높이는 것과 자율성의 침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 일까요?

예전, 짧은 시간이지만 구치소 독방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 내팽개쳐왔던 몸에 대해 신경쓰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은 낯선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자신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그래서 저의 몸과 마음 모두를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였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감옥에 오래 있다 나오면 ‘이상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채 자신에 대해 집중한다는 것은 자칫 판단의 기준과 지향 모두를 자기 자신으로 귀결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를 가진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우리네 운동판을 들여다보면, 활동가들이 ‘관계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보통의 상식과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의견인지라 많은 분들에게 어이없게 들리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활동가들의 노력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커다란 흐름으로 집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각개약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느덧 운동판은 독립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운동판마저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이 각광받는 것일까요?

어쩌면 제 고민은 ‘활동가와의 연애’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과 같은 의미의 ‘조직’이 사라진 지금,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은 서로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지시를 내릴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못한 현실에서, 각 주체들의 활동이 유의미한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각 주체들의 활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참여하기 때문에, 내가 동시에 네가 행복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관계맺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까지 어떻게 서로에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일까요? 활동가들이 어떻게 서로를 ‘길들여야’ 하는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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