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2월ㅣ칼럼] – 학교 폭력과 장시간 노동, 강요된 맞벌이

일터기사

학교 폭력과 장시간 노동,

강요된 맞벌이

한노보연 선전위원 송 홍 석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같은 반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14세) 사건은 우리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14살 아이가 했을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가혹행위와 폭력성에 놀랐고, 그 아이들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중학생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랬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두 가해학생의 성적도, 평소 행실도 보통이었고,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문제아로 취급받지 않았다 한다. 부모조차 ‘우리 애가 정말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믿지 못할 만큼 겉으로는 평범한 아이였다.

실제 통계를 보아도 그렇다. 학교알리미사이트에 공시된 정보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의 폭력심의건수는 2005년 2518건에서 2009년 5605건, 2010년 7823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피해 학생 수는 2005년 4567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3배가 넘는 1만3748명으로 증가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벌인 ‘2010학교폭력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이 전체의 30.8%, 죽을 만큼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한 학생은 13.9%에 달한다고 한다(2011년 12월 24일자 조선일보 기사 인용).

이제 학교 폭력과 왕따(집단따돌림) 현상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화된 문제라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더 이상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자살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이런 현실이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에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평범하지만, 정상적인 환경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

그 아이들은 겉으로만 평범해보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였다. 그 아이들 모두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가해학생의 폭력성과 피해학생의 우울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학교와 가정 어느 곳에서도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왔던 지난한 과정들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개성이, 인격이 충분히 관심 받지 못하고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현실은 참기 힘든 고통과 분노를 자아냈을 것이다. 분노는 우월적 지위로 존재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는 비슷한 서열 위치에 있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화풀이하듯 폭력으로 발현된다. 또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고통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죽고 싶을 만큼의 심각한 우울 감정으로 발현될 수 있다.

폭력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들에 의하면, 폭력은 불평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불평등의 수준이 커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더 위계적인 사회구조일수록 폭력은 더 빈번히 나타난다고 한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낮은 존중감은 자신이 변변찮고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되어지고, 이에 맞서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폭력 그 밑바탕에는 학교사회에서의 낮은 지위, 낮은 존엄성,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구조가 깔려 있다. 성적 위주, 입시 위주의 획일적이고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경쟁에서 도태되고 제껴져버린, 존중받지 못하고 관심 받지 못하는 학교생활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현 입시 교육의 문제점은 대구의 한 자사고에서 수업시간 중 학생이 교사를 흉기로 위협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을 위한 개별활동 시간도,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급회의시간도 국영수 수업이나 자율(타율?) 학습으로 대체하였고, 예체능 수업도 축소 운영했다고 한다(2012년 1월 19일자 경향신문 인용).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렇게 소외된 아이들에게 게임은 망각하고 싶은 현실의 좋은 도피처가 될 수 있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7조원이 넘을 정도로 게임 산업이 초고속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그런 아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이 있다(대구중학생 자살사건의 학생들이 즐겼다던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넥슨의 시가총액은 약 8조원, 한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고, 또 다른 메인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는 시가총액이 5조원에, 프로야구단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행성, 폭력성을 조장하는 게임도 물론 문제겠지만,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차단’ 보다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은 그 아이들에게 게임 속 가상의 현실 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세상을 실제 이 사회가 열어주고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정부 대책에는 대책이 없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함에도,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현 정부의 수장들과 교육관료들, 보수언론의 생각들과 대책들을 보면, 학교폭력의 근본이 되는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하나같이 강력한 처벌, 학교폭력 문제아들을 이번 기회에 뿌리뽑아보겠다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발상과 대책들이 주를 이룬다. 조선일보는 대응시스템이 잘못되었다며 3번 이상 가해에 참여한 학생들은 퇴학시키거나 특수학교에 격리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고, 왕따 전력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가해학생리스트를 만들어 대입에 반영하고, 가해학생 학부모소환제를 도입하고, 학생관리를 소홀히 한 교사에게 승진불이익으로 책임을 묻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시행으로 교사들의 학생 생활지도가 어렵다며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무산시키려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대통령과 총리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신기하게도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들은 정부가 2월 6일 발표한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가해학생에 대한 엄중 처벌,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교사와 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인성교육과 교사의 행정업무를 경감시키기 위한 교육환경개선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영수 중심의 입시제도가 있는 한, 급조한 대책인 이상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전교조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대통령은 “학교폭력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부모와 자녀의 대화 단절”이라며 학부모가 아이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 역시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학교폭력의 문제는 가정과 학교의 문제이며, 가정과 학교가 해결해가야 할 일”이고, 가정교육에 아빠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정부대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하다. 소외되어 있었던 아빠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 ‘말잔치’ 뿐이라는 걸 정부 빼고 모든 일하는 이들은 다 안다. 종합대책안 중「매주 수요일을 ‘가족사랑의 날’로 정하고 수요일 정시 퇴근을 위한 기업 참여 독려, 수요일 7시 이후 학원 강좌 미개설 권장」항목에선 정말 코웃음만 나온다.

부모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장시간 노동, 맞벌이를 강요하는 현실부터 해결하라!

비단 학교폭력 문제뿐 아니라,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자녀와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자녀에게 관심 없는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중요한 건 ‘부모가 자녀들에게 관심과 대화를 나눌 시간, 무언가 함께 할 시간을 이 사회는 얼마나 주고 있는 것인가’이다. 대부분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구조를 정치경제인들이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치솟는 전월세 값에, 장보기 겁나는 물가고에,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에, 교복 값에 등록금 때문에 아빠는 잔업, 특근, 야간노동에, 엄마는 최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부모가 아이들과 제대로 대화 나누고 여가활동을 함께 할 여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담임선생님을 만날 시간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시간이 얼마나 제대로 주어지겠는가. 비정규직 부모가 집안 살림, 아이들 경제적 뒷바라지하기에도 빠듯한 현실 아닌가? 엄마아빠들에게 부모로서 역할을 할 여건을 충분히 만들어주면, 웬만하면 다들 하지 않겠는가?

대구중학생 자살사건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 가해자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폐기물처리업체에 다니는 아버지와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어머니, 그리고 직업군인 아버지와 방문교사로 일하는 어머니, 피해자의 부모도 모두 맞벌이 교사였다. 조선일보에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의 사례로 소개된 경우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만 집에 왔고, 엄마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야 귀가했다. 학교폭력 문제로 대통령이 학생들과 나눈 간담회에서도 어느 한 여고생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반항을 많이 했다”, 또 다른 여고생은 “부모님이 맞벌이해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가출까지 했다. 엄마랑 속내를 터놓고 울면서 얘기하다 보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대통령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 사회의 가장 무서운 형태의 폭력은 장시간 노동, 맞벌이 노동을 강요하는 정치경제인 들이 만들어놓은 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일지 모른다. 연간 2천2백 시간에 육박하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 10년 넘게 OECD 국가 내에서 노동시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 현실, 비정규직노동자가 더 일반화된 현실,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최저임금의 현실, 그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가 210만 명이나 된다는 임금노예와 같은 이 세상의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삶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학벌 불평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입시교육이 바로 서고, 아이의 교육에 적극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부모의 노동시간이 확 줄고 생활임금도 확보되면, 학교 폭력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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