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8월ㅣ문화읽기] 세속의 철학자들과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통해 본 나의 대단치 않은 독서 편력

일터기사



책의 숲으로 난 두 개의 오솔길
세속의 철학자들』과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통해 본
나의 대단치 않은 독서 편력

한노보연 소장 김정수

우선 자축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본격적으로 책 읽기를 시작한 게 재작년 8월 말쯤이었으니까 이제 딱 만 2년이 됐다. 근래 며칠 책을 내려놓기도 했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책 볼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버스로 출퇴근 하는 게 습관이 돼서 이제 아침에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어 아침잠이 없어진 건 아닌가 싶어 조금 씁쓸하기는 하다.) 몇 권을 읽었느니, 무슨 책을 읽었느니 자랑질(?) 하고 싶은 맘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나보다 훨씬 대단한 독서편력을 자랑하는 강호의 고수들이 많이 계시므로 번데기 앞의 주름질은 삼가기로 하자. 이제 겨우 2년이지만 책과 절친이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브라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어 했던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이런 식이다. 인간 마르크스를 만나 흐뭇했었다는 얘기는 지난번(일터 6월호)에 간단히 소개했었다. 말미에 잠깐 언급했던 [자본론]은 나도 아직 안 읽었다. 마르크스 전기를 읽고 나니 [자본론]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원전을 읽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본론] 번역가인 김수행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김수행, 두리미디어]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너무 도식적으로 설명한 듯 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자본론] 전체를 개괄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 보니 김수행 교수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어라? 애덤 스미스라면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며 자유방임을 주장했던 자본주의 경제학의 원조가 아니던가? 애덤 스미스를 “적들의 괴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내게 “[국부론]을 바로 읽어 시장만능주의를 개혁하자”는 김수행 교수의 주장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같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발간한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김수행, 두리미디어]가 있어 읽어 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국부론]에 대한 편견(시장만능주의자들이 곡해했던 [국부론]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던)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질 때 나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낀다. 내 자신이 더 커지는 느낌……. 이런 쾌감이 나를 더욱 책으로 이끄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충격으로 급기야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국부론(상), (하), 김수행 번역, 비봉출판사] 원전을 질렀다. 이 책은 지금 책꽂이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또 한권의 책이 바로 [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이마고]이다. 어디서 이 책을 알게 됐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읽고 싶은 책을 모아서 함께 주문하는 습관 때문에 이런 경우들이 종종 있다.) 첫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의 흥분은 아직 선명하다.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해 맬서스/리카도-오언/생시몽/푸리에-칼 마르크스-베블런-케인스를 거쳐 슘페터까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 그들의 삶과 사상을 잉태한 시대의 모습을 간결하고 명확하면서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역시 “경제사상사는 당연히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하일브로너는 “좌파 경제학자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라는 타이틀보다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데 크게 공헌한 전기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듯하다. 나의 편견을 깨주고 경제사상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준 저자에게 경의를……. 나는 지금 그가 쓴 다른 책을 먼저 읽을지 그가 소개한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원전을 먼저 읽을지 고민 중이다.
내가 선호하는 새로운 책을 만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떠벌리기”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 혹은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틈나는 대로 떠벌리는 거다. 그러면 게 중에 반드시 그 책(혹은 그 책의 저자나 핵심 주제)에 대해 평을 해주거나 또는 그 책(혹은 그 책의 저자나 핵심 주제)과 관련된 다른 책을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자칫 “자랑질”, “번데기 앞의 주름질”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떠벌리고 다니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소개 받은 책 중에 너무 소중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소개받은 대표적인 책은 [맑스주의 역사 강의, 한형식, 그린비]이다.
출발은 똑같이 인간 마르크스. 마르크스 전기를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얘기를 술자리에서 떠벌리던 중 자연스레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차이, 맑스주의 내부에 있었던 다양한 논쟁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함께 얘기하던 어느 분이 이 책을 소개시켜 주셨다. 얼마 후 이 책을 읽고는 “전율을 느꼈다.”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에서부터 시작해 맑스․엥겔스의 초기 사상/후기 사상과 그 변화 과정, 맑스 당대에 맑스가 참여했던 여러 논쟁들,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수정주의 논쟁과 총파업 논쟁, 반전 논쟁과 식민지 논쟁), 러시아 혁명을 둘러싼 논쟁, 스탈린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쟁, 마오주의와 관련된 논쟁 등 지금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핵심 이론들과 논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대학 시절 운동권 내에서 이루어졌던 “학습”을 충실하게 받았었더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혹은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학습”은 매우 부실해서 “공산당 선언” 정도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 이후 대학 다니는 동안은 누가 나에게 특별히 “학습”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 역시 “학습”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 사회인으로서 단체 활동을 계속 하다 보니 비로소 “학습”의 필요를 느끼게 되고, 어느 순간 “학습”이 절실해졌는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누구한테 손을 뻗쳐야하나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소개 받은 것이다. 책 속의 글자들이 눈을 통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 정도면 적절한 표현일까? 그리고 그 안에 또 수 십, 수백 권의 책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유럽 근현대사, 러시아 혁명, 중국 근현대사 등등 알고 싶은 게 갑자기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 마침 집에 아직 읽지 못한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 레닌 전기가 있는 게 생각났다. 맑스주의를 마르크스 전기를 통해 만났듯이 맑스 이후의 맑스주의도 이들의 삶을 통해서 만나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마르크스 전기를 읽으면서 사두었던 엥겔스 전기 [엥겔스 평전,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 이광일 옮김, 글항아리]를 읽고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와 레닌 전기는 예약 대기 중이다.
이렇듯,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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