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8월ㅣ이러쿵저러쿵] 강철로 된 무지개-상근을 시작하며

일터기사

강철로 된 무지개
– 상근을 시작하며

한노보연 선전위원 연아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적이 있다. 내 손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남들보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운명을 움켜쥐기엔 턱없이 작아 보였지만, 주먹을 꽉 쥐고 기도를 하니 한결 자신이 생겼다.

학생 때 휴학을 하면서, 부모님과 싸우고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었을 때의 일이다. 이젠 그 당시의 내가 귀엽게 느껴져서 웃음이 픽 나온다. 겁이 많은 어린아이 같고. 하지만 그 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지금 나는 상근 활동가가 되었다.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이라는 명함도 생겼다. 그리고 여전히 공포영화는 1초도 보지 않고 있다.

상근을 시작할 때는 두려움보다는 가슴이 벅찼다. 이젠 사회생활도 해봤고, 경제적 능력도 생겼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대추분교가 파괴되는 날, 학교 시험을 치러가는 내가 너무 싫었었다. 그 다음날 가서 한편의 진흙탕 활극을 하고 오긴 했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 미안함은 여전했다.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내가 상근을 하고 싶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상근을 하면 모든 현장에 가 있을 것 같고, 모든 투쟁을 다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 살아가는데 긍정적 역할을 했던, 무지개와 같은 환상이었다. 이제 나는 한 사람의 활동가 몫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느끼고 있다. 2006년의 나 역시 자기 위치와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것이고,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상근은 고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책임지고 내 역할을 해내는 것, 또한 그것이 타인의 고민, 실천들과 결합되어 연대의 힘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는 것.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지도 않고, 그런다고 내가 푸는 것을 포기하거나 풀지 못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답답하다.

이상적 세계를 흔히 무지개에 비유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 다채로움에 항상 매혹된다. 단순하고 고된 일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일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고, 그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가로서의 삶도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대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위해선 누구보다 더 단련되고 강해져야 된다는 생각도 한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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