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8월ㅣ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제 하루요? 그때 그때 달라요!

일터기사



네 번째 이야기
“제 하루요? 그 때 그 때 달라요!”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세희(가명)씨에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 중 어떤 걸로 알려드려요?” 라고 되묻는다. 아차, 그녀가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인 걸 깜박했다. 우선 데이(day)근무를 할 때를 알려 달라 했다.
“새벽 5시 10분에 집에서 나가요. 정해진 출근시간은 6시까지이지만 나이트(night, 야간) 근무한 간호사에게 인계받으려면 5시 반 전에 도착해서 옷 갈아입고 5시 반에는 자리에 앉아야하죠. 어떤 조에 속해있던 출근 전과 퇴근 후 30분 근무는 기본이고 최소에요. 퇴근은 보통 오후 2시반이나 3시쯤 해요. 늦으면 오후 5시에 퇴근할 때도 있죠.”
새벽같이 집에서 나가면 오후는 그녀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간만에 일찍 끝났다 싶으면 CS교육이나 보수교육을 받아야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병원일정(병원이 드러날 수 있어 생략함)에 참여해야하죠. 교육받고 차팅하러 다시 들어오기도 해요.”
차팅은 근무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의료기관 평가로 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환자가 낙상하거나 욕창이 생길 때 차트에 ‘낙상이 있었음’ 내지는 ‘욕창이 생김’이라고 적으면 됐었는데, 요즘엔 ‘낙상이 발생하지 않았음’, ‘욕창이 발생하지 않았음’이라고 일일이 내용을 기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데이 근무 때는 새벽 5시에 집에서 나가 집에 오면 대략 4-5시, 집안일 좀 하고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9-10시 정도. 이브닝은 오후 2시부터 10시, 나이트 근무 때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근무다. 물론 정해진 근무가 그렇다는 것이고 앞뒤로 넘치는 초과근무가 존재한다.
“이브닝 근무 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교육받고 오후2시부터 10시까지 근무하고, 인계마치고 새벽에 집에 돌아온 적도 있어요. 데이근무는 보통 아이를 가진 간호사들이 하죠. 연차도 좀 되고, 저녁에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요. 이브닝 근무는 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간호사가 하고요, 나이트 근무는 너무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돌아가면서 하는 편이에요. 교육이 있거나 일이 넘치면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일도 적지 않아요.”
초과근무는 일상이지만 수당은 없다. 초과근무를 하는 것은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인지 세희씨는 ‘잠에 대한 집착’이 늘었다고 했다. 잘 수 있을 때 자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희씨가 이 병원에 들어간 것이 2010년이니 3년차 대학병원 간호사다. 하지만 30명쯤 되는 병동 간호사 중에 그녀는 중간 정도의 연차다. 그녀와 함께 병원에 들어온 10명의 동기들 중에 절반이 퇴사하고 지금 병원에는 5명이 남아있다.
병원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래에 비해 경제적 보상 정도는 만족스러운 편이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다음 주를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노동이 이직을 결정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4주 단위로 근무표를 짜요, 연차가 높은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짜는데 이런 저런 일정을 조정하고 나면 확정된 근무표는 보통 1주일이나 3-4일 전에 받죠. 심할 때는 내일 근무를 오늘 알게 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짜진 근무표지만 사이사이 근무가 안 바뀌고 4주를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상상해보자. 세희씨의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다음 주 토요일에 뭐해? 그 날 애들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세희씨는 답한다. ‘어… 나 아직 근무표가 안 나와서 나 그 때 근무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는데…?’ 이런 상황이 되는 거다. 자신의 다음 주 조차 스스로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고통이 느껴졌다.
세희씨의 여름휴가 계획을 물었다.
“저 여름휴가 없어요, 남아있는 연차도 얼마 안 되고 여름휴가 가는 것도 부담되고요. 제가 쉬면 누군가 못 쉬고 나와서 일해야 하거든요.”
본인이 쉬면 누군가 못 쉬기 때문에 여름휴가도 부담스럽다는 세희씨의 연차는 왜 몇 개 안 남아 있는 걸까?
“병동에 있는 환자가 빠지면(퇴원 등) 수 선생님(수 간호사)이 전화해서 오늘 쉬라고 해요. 그러면서 연차 하나씩 까먹는 거죠. 당일 날 전화 받고 쉬고, 그 다음 날 출근하려는데 또 전화 와서 ‘오늘 쉬라’고 해서 또 연차 하나 빼먹고. 그렇게 5일을 쉰 적이 있어요. 말이 좋아서 5일 쉰 거지 그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오늘 쉬었지만,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 늦게 까지 뭔가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날 출근 전에 또 전화가 오는 거죠. 형식상 보면 5일이지만, 아무것도 못한 5일인 거예요.”
가끔은 쉬라고 했다 다시 나오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최소 인원으로 병동 간호를 하도록 하니 발생하는 일이다.
그녀에게 간호사여서 좋은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음… 집에 오면 병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집에서 병원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남들 쉴 때 쉬는 것은 힘들죠. 당장 남편하고 근무가 안 맞으니까요.”
올해 초 결혼한 세희씨는 남편과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고 정해진 근무가 있지만 언제 나오라고 할지 모르니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그녀가 집에 없고, 그녀가 집에 있을 때는 남편이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죠. 어떻게 근무를 맞춰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고요.”
세희씨는 아플 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나와서 일해야 할 때 서럽다고 했다. 아프다고 하면 욕먹는 분위기라 아파도 나와서 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파도 쉴 수 없고, 장시간 노동에 교대근무를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니, 사람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느 기업이 그렇듯 병원도 최소의 인원으로 운영하고 그 운영에서 오는 문제는 간호사들의 무료노동과 예측하기 힘든 일상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얼마 전 중환자들을 간호하는 세희씨 병동에 허리디스크가 유행(?)했다고 한다. 그녀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간호사들이 건강할 권리, 간호노동을 하기에 빼앗긴 삶의 권리들을 찾아오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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