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10월| 칼럼]추석 명절, 안녕하셨습니까?

일터기사

추석 명절, 안녕하셨습니까?

한노보연 선전위원, 내과 의사 송홍석

지난 추석 명절, 평안하게 지내셨나요?

추석과 건강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과 달리 어릴 적 추석은 참 즐거운 기억이 많습니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는 기쁨만큼이나 그날 햅쌀은 씹어서 먹어도 맛있었고, 잔칫상을 차려놓고 송편을 빚고, 추석맞이 새 옷을 사 입고 새 신발을 사고 온 동네 아이들, 친척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보낸 설렜던 추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들어 맞는 추석은, 물론 어릴 때 어른들의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즐겁고 맘 편치만은 않은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명절 증후군’이란 신조어가 생길만큼 말이죠. 특히, 또 하나의 가정을 꾸린 후로는 더욱 불편해지는 게 명절인 것 같습니다.

으레 일가친척들이 모이면 이래저래 말들이 오가는데, 아직까지 백수로 사는지, 변변찮은 직장이나마 탈 없이 다니고 있는지, 누구네는 연봉이 어떻고 보너스를 두둑이 탔다는데, 누구네는 애가 몇인데 너는 결혼은 언제 하냐는 잔소리에, 친척 아이들 용돈, 부모님 용돈 같은 금전적 스트레스에, 평소 스트레스도 심한데 명절 되니까 더 심해지고, 이런 일들로 부부간에 가족 간에 싸우기도 하고, 술로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해서 명절 음식에 체하고 토하고 배 아프고, 끊었던 술도 다시 마시게 되고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본래 즐거워야 할 추석 명절의 의미와는 다르게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고 스트레스 받는 이런 것들이 다 ‘명절 증후군’으로 통칭하여 불리는 것이겠죠.

이렇게 된 데는 한국의 오래된 가부장 문화가 여성에게 주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탓이 가장 클 겁니다. 물론 과거에도 존재했었던 문제지만, 양성 평등의식의 고양으로 구시대적 문화와의 충돌이 사회화한 것이겠죠. 여기에 더해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 불안정해진 노동자의 삶,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노동시장에서 조기 탈락되거나 진입조차 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힘든 삶으로 인해 몸과 맘이 더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많아진 것은 아닐런지요.

내 건강관리도 돈 내고 해야 하나요?

온 가족들이 모이는 추석이 되면 가족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됩니다. 노부모의 크고 작은 병치레가 걱정이고, 병치레 비용 또한 걱정입니다. 병원들이 경쟁하듯 규모가 커지고 시설도 삐까번쩍 좋아지는 만큼 병원비는 쭉~쭉~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좀 큰 병원 한번 갔다 하면 내 의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50만원, 100만원은 기본으로 내 호주머니를 털어갑니다. 삼성, 현대와 같은 한국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병원들이 이를 주도합니다. 전문병원이다 뭐다 해서 생겼지만, 불필요한 검사나 수술을 권하지는 않는지 도통 믿음이 안갑니다. 이래저래 병치레 비용만 높아져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돈을 주고 하게 생겼습니다. 들인 돈만큼 질병을 예방할지도, 건강이 관리될지도 전혀 모르는 일인 데도요. 무슨 말인고 하면, 삼성이나 SK텔레콤 같은 대기업에서 질병의 예방과 건강관리를 ‘헬스케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 많이 남겨먹겠다는 것입니다. 친기업적 정부는 이를 한국의 미래를 이끌 고부가가치의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요.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한국이 반도체, 휴대폰, 인터넷 같은 IT(정보통신) 강국이쟎아요. 그런데 이제 이런 전통적인 IT산업만으로는 기업의 성장에 한계가 있으니, IT를 의료, 교육, 금융과 같은 서비스분야와 접목하여 미래의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삼아보겠다고 합니다. 삼성이 이를 이끌고 있는데요, 2010년 이건희가 삼성을 먹여 살릴 신사업분야로 바이오제약과 의료기기를 꼽았어요. 이렇게 되면 보험회사-의료기관-제약-의료기기 산업 클러스터가 완성되게 되고, 이를 이미 구축된 삼성의 정보통신(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 건설, 자동차 클러스터와 서로 연결시켜 기업의 성장을 지속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올해 8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낸 세리연구보고서 ‘헬스케어 3.0 건강수명 시대의 도래’에서 삼성은 아주 그럴싸한 논리를 전개했는데요, 이 보고서는 “21세기 의료 소비자들은 ‘단순히 오래 사는 욕구’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욕구’로 변하고 있고 이런 소비자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춰 헬스케어의 변화 방향도 1.0(전염병 예방) 시대를 거쳐 2.0(질병 치료로 기대수명 연장)에서 3.0(예방과 관리를 통한 건강수명 연장)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방향은 중증질환과 외래환자를 감소시켜 급증하는 의료비를 줄이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3.0시대에 삼성이 그리는 ‘질병 예방과 건강관리’의 모습은 첫째, 핸드폰, 스마트TV, 아파트 인터넷 시스템 등 IT 기술을 활용하여 의사와 환자 간에 원격 네트워크로 연결, 병원을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건강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둘째, 2001년 인간 지놈(유전자정보)의 완전 해독을 계기로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중심의 시대가 전개되어 개인의 유전적 소인 및 체질을 고려한 맞춤치료제가 확산된다. 셋째, 유전자 기술로 조기진단이 가능해지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수술이 일반화된다. 이에 따라 환자편익과 효용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IT기업이 개인화된 의료기기 시장에 진입할 여건을 넓혀주고, 이에 연관된 부품 및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분야가 주목 받을 것이고, 개인 맞춤 치료제의 상용화에 따라 제약기업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고 신개념 디지털 진단 의료기기 사업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게 헬스케어 3.0시대를 맞아 기술개발 지원과 투자 확대가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정리하면,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기술이 현재의 의료산업(보험-병원-제약-의료기기)과 연결되면 질병 예방과 건강수명 연장에 기여할 것이니, 기업은 적극적으로 둘의 영역을 접목하여 기업의 성장을 지속할 수가 있고, 정부는 기업이 예방과 건강서비스영역을 상품화할 수 있도록 투자와 법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정부에게 강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즈니스프렌들리 정부는 시간차 없는 속공으로 바로 화답했습니다. 9월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성장동력 성과 평가보고대회에서 건강관리서비스를 기업이 상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의사-환자 간 IT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를 허용하기 위한 법 개정을 하반기에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참 잘 짜인 각본입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거침없는 자본가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게 정보통신과 유전자 기술로 가능해? 게다가 의료비 절감까지?

오! 마이! 갓!

질병의 예방! 일상적인 건강관리! 건강하게 오래 살기! 참 아름다운 구호입니다. 음, 게다가 골치 아픈 의료비 증가 억제에도 한 몫을 한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솔깃해지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물론 ‘질병의 예방’, ‘일상적 건강관리’, ‘건강하게 오래 살기’는 IT와 유전자 기술 활용으로 가능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한, 고강도의 노동에 찌들려 있는 한, 심야 노동에 몸과 삶의 리듬이 망가지는 한, 직장이나 사회에서 스트레스에 찌들려 사는 한, 일자리가 복지다라며 노인에게 고달픈 일터로 내모는 한 가능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연금으로 굳이 일하지 않아도 여유 있는 노후생활이 보장된다면, 직장에서 일하고도 일상 건강관리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는다면, 심야 노동으로 내 몸과 삶의 리듬이 파괴되는 일이 없다면, 그리고 내 몸과 맘을 가족처럼 돌봐주고 상담해줄 믿을만한 병원이 존재한다면, 그 길을 찾는 것이 예방적 건강관리,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일 것입니다. 만일 기업의 상품을 구입해야 하거나 원격진료로 건강관리를 받아야 한다면, 노동과 삶의 여유가 그만큼 없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의료비의 증가의 억제? IT를 활용한 예방적 건강관리로? 이것 역시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예로 들면 혈압센싱기술의 발전, 휴대용 소형 의료기기의 등장으로 자동차나 아파트, 휴대폰 등 일상생활에서도 건강모니터링이 가능해져 만성질환(당뇨나 고혈압과 같은)의 악화로 인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쁘고 지친 노동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고음 때문에 더욱 스트레스가 올라가 더 혈압이 오르진 않을까요? 노동과 삶의 여유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질병 치료비와 불필요한 종합건강검진 항목으로 의료비만 한껏 부풀려놓았던 그간의 삼성, 현대 자본의 병원 행태를 보았을 때, ‘건강과 의료’를 기업의 성장 산업으로 바라보는 한, 의료비가 억제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휴대폰 사업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그래서 휴대폰처럼, 종합건강검진 상품처럼 소비자로써 구매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테니까요.

그들의 헬스케어 방식이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고, IT기술과 접목한 개별적 건강관리 방식이라는 점에서 개인정보 유출과 인권침해의 가능성, 그리고 질병 발생, 건강불평등의 계급적, 사회적, 성차별적 요인들을 배제시키거나 은폐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병 발생의 다양한 원인중의 하나에 불과한 유전적 요소를 중심적인 문제로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부차화 시킨다든지, 개인의 식생활 습관, 태도의 문제로 문제를 협소화시킴으로써 더 주요한 문제를 은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오래살기’를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로!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뿔싸! ‘건강하게 오래살기’라는 모토와 담론과 삶속에 파고들기를 자본이 선점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힘을 가진 그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매 안하면 되지’라는 소극적이고 개별적인 저항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살기’ 위해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불건강을 초래하는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질병과 건강 불평등의 계급적, 사회적, 성차별적 요소들을 지역 노동자, 지역 주민들의 노동과 삶의 모습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 밖에 외치고 또 외쳐야 합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세상이 바뀔 때까지. 그래야 그들과 맞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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