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산재보험 개역 방향과 정책방안
발제 _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 임 준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장 푸우씨
[특집1.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정책 방안]은 노동자 건강권 실현을 위해 당장의 산재보험의 개혁을 넘어 건강보험과의 장기적 통합, 노동자 건강보장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특집2. 민주노총 안전보건 제도개선 추진현황]은 현재 추진 중인 민주노총의 안전보건 제도개선 과제의 핵심내용과 쟁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터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발제문 원본은 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전쟁 같은 노동은 과거의 일인가?
한국의 사망만인율은 OECD평균에 비해 3배나 높다. 하지만 업무상 사고 또는 직업성 손상률만 보면 OECD 평균에 1/5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재해율은 낮은데, 중대재해 또는 사망재해만 높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재해율이 낮다는 것은 산재보험 급여를 받지 못한 채 건강보험의 급여를 받고 있거나 의료기관에서 일반 환자로 처리가 되어 아예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노동자가 절대 다수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2. 산재보험이 아픈 노동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가?
가) 보장 수준이 높다?
현재 산재보험에서 제공해 주는 치료비(요양급여)의 범위는 건강보험에 준한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요양급여 내에서 치료비 중 본인부담이 없다. 그러나 산재보험의 요양급여 범위가 건강보험의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에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시술이나 검사 등은 재해 노동자가 치료비를 내야하고 이는 산재노동자의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 산재보험의 휴업급여는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를 제공하고 있어 재해를 당한 이후 실질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 결과 빈곤 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맞벌이인 경우가 많은데, 배우자가 간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또다시 가계의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현행 산재보험은 치료 종결 후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해 장애로 인한 소득 손실에 대해 장해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나 장해등급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얻기 어려울 정도의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조차도 보상의 수준이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아 재해노동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준다.
나) 모든 노동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그나마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행복한 편이다. 농업, 건설업 등 업종별로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소규모 음식점 등과 같이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 1인 사업장 또는 농민 등 자영업자,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병원간병인 등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는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해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을 정하고 산재 보험료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 전체 취업자 중에서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사업주가 신고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어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일괄 납부하도록 한다거나 사전 예방보다 사후 약방문식의 행정 처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주는 이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산재 은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넌 안 돼!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산재 신청을 해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는 어렵다. 재해노동자 본인 또는 보호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고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사전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재해가 업무 때문인지, 업무 수행 중에 발생했는를 따져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산재로 인정한다. 그러나 비과학적이고 임의적 잣대로 산재 및 직업병을 승인하고 있어 상당수가 인정받지 못한다. 사전승인 절차,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재해노동자의 입증 책임, 산재인정 기준의 협소함 등 여러 이유로 인하여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량 발생하고 있다.
라) 산재보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는 산재보험
산재보험의 목적은 재해노동자가 신속한 치료와 보상을 통해 직장과 사회에 조기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데에 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 제도 하에서 실제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초기 산재가 발생한 시점부터 재활체계가 작동해 원직장에 복귀할 때까지 통합적인 치료와 재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재해를 당하면 처음에 대부분 건강보험을 이용해 치료받아 직업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그 중 일부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되어 직업재활프로그램에 적용을 받는 등 직업재활이 매우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재해노동자가 직업재활프로그램을 받더라도 상당수가 원직장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제도적으로 원직장 복귀 등을 포함한 사업주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 재해노동자의 과거 직업력과 현재의 상태에 기초한 적절한 직업재활프로그램을 적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창업 중심의 재활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마) 예방 효과라는 허울로 민간보험의 논리를 확대 강화하고 있는 산재보험
현재 산재보험은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과 사업장이 산재보험료를 많이 부담하는 차등보험요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예방 효과를 이유로 차등보험요율제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산재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재해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차등보험요율제도는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보험료 부담을 증가시켜서 오히려 산재 은폐의 기전으로 작동하고 이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반영되어 그렇지 않아도 낮은 임금을 더 낮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차등보험요율제도는 사회보험의 연대적 원리 및 보편적 가치에 위배된다. 산재라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공동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산재보험을 만들었는데, 위험에 따라 기여를 다르게 한다면 사회적 연대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강제 가입의 원칙과도 맞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차등보험요율제도는 실제 위험을 생산한 자는 보험요율이 낮고 힘이 없어서 위험을 떠안은 자는 보험요율이 높은 매우 불공평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은 대기업에서 하청이나 용역 등의 방법으로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에 전가되고 있다. 그렇게 발생한 산재 결과에 의해 보험요율을 높이 설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3. 건강보험은 꼭 의료비만 보장해야 하는가?
현행 산재보험 체계에서는 명확하게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려운 질병도 사실은 노동자의 업무 또는 직업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직업관련성을 의심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산재보험 처리되어 사업주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노동자 개인 부담 비율이 훨씬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되어, 사업주에서 노동자로 부담이 전가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치료비의 전가 문제는 소득 문제를 고려할 때 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가) 진료비 할인제도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건강보험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보험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용 대상의 보편성 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다.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의 부담은 치료비만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는 건강보험에서 소득보장을 해준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보험에 소득보장이 전혀 없어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가능하다.
나) 노동자 건강과 보편적 건강보장제도
노동자 건강 문제 발생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을 못해 소득이 줄면 소득 손실에 대해 보전해야 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불건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산재보험에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원인을 한 두 개의 원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고 있고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엄격하게 업무의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당장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 현재 건강보험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평등하게 담보할 만큼 보편적 건강보장제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고, 이의 핵심적 문제가 바로 보장성 수준이 매우 취약해, 산재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아무리 낮아도 매우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과 비교해보면 상대적 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 장기적으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통합되어야 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단일한 건강보장제도로 통합되어야 한다. 건강할 권리가 노동자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라면, 불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최대한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원인의 종류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그 재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왜 노동자는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왜 불건강 상태라는 동일한 상황에서 노동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각각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4. 산재보험제도의 개선 방향
가) 변화를 담지하지 못하는 체계
현행 산재보험은 산업재해에서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산재로 인한 개별 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산과정의 급격한 변동을 막아 자본주의 생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표에서 성립, 발전했다. 그러나 노동 및 사회시민운동의 발전과 시민 의식의 향상 등으로 인해 사회적 권리 의식이 커졌고, 노동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 더 나아가 모든 시민의 건강권이 보편적 권리로 확장되어 나가게 되면서 기존의 산재보험은 변화된 권리 의식을 담아내기 어려운 틀이다.
많은 선진외국에서는 엄격한 원인주의에 기초한 과거의 틀을 벗고 노동자의 불건강 상태라는 결과에 착목해 노동자와 보편적 시민의 건강권을 어떻게 평등하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제도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또한 사업주배상책임보험적 성격의 산재보험의 성격을 벗어나야 한다.
나) 원인주의 시각에서 결과주의 시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면 산재 인정방식이 원인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결과주의 시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본래 원인주의 시각의 장점은 재해노동자를 특별하게 보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 초기 산재보험의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산업재해의 구성도 그 원인이 명확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 등과 같이 그 원인이 복합적인 재해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절대적 비중은 높지만 점차적으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줄어들고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서 선진국형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결과주의 시각의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타 사회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산재보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당장 결과주의 접근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건강보험 및 타 사회보장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서 결과주의 시각으로 전환하는 것이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5. 노동자의 완전한 복귀를 보장하는 노동자건강보장제도 정책 방안
산재보험제도는 노동자의 완전한 복귀를 보장하는 노동자건강보장제도로 전면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모든 일하는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고,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하고, 보장성을 늘리며, 직장 및 사회복귀가 가능하도록 재활이 강화되어야 한다.
가)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소규모사업장, 서비스 부문 노동자 등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웠던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의 실질적 적용 확대
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비공식부문 노동자, 자영업자 재원 방안 마련 후 비공식 부문 노동자, 농민 등 자영업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단계적 확대
등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의 단계적 확대
나) 사전승인절차의 폐지, 건강보험과 동일한 청구 및 승인 절차 신설
직업과 관련하여 발생한 산재, 직업병 등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모두 산재보험으로 보장
산재심사평가원 신설에 따른 급여 청구 적정성 평가
다) 노동자의 실질 손실을 보상해주는 제도
산재로 인하여 소득 및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산재보험 급여의 보장성 강화
라) 치료부터 직장 및 사회복귀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재활체계의 구축
산재노동자가 원칙적으로 원직장에 복귀하고 최대한 산재 이전의 상태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직업 및 사회 재활체계 구축
마) 재원조달에서 사회연대 원리의 강화
사회보험의 연대성 원리에 맞는 형평적인 재원조달 방안 마련
바) 근로복지공단을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재편
노동자 건강보장제도로서 산재보험의 공공적 운영을 위한 산재보험관리운영체계 전면개편
6. 결론에 대신하여
산재보험의 문제는 한두 가지 정책이나 프로그램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의 문제임은 명확하다. 현행 산재보상보험법의 전면 개정 또는 새로운 노동자건강보험법의 제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더 이상 노동자 건강 문제를 이런 저런 요구안의 하나쯤으로 생각하는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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