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 3월 | 문화읽기] – 삼촌팬/이모팬이라면, 생각해 봐야 할 몇 가지

일터기사


삼촌팬/이모팬이라면,

생각해 봐야 할 몇 가지

     

                                한노보연 선전위원장  푸우씨

     

케이팝(KPOP) 한류열풍,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점령!” 따위의 기사가 대형포털을 도배합니다. 소녀시대의 미국 진출과 세계인의 관심이 자랑스러운 팬도 있고,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노래를 따라하는 해외의 기이한 케이팝 팬덤 현상을 지켜보며, 한국 아이돌 그룹의 국위선양(?)이 흡족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열풍 때문인지 제2의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등을 꿈꾸며 각종 오디션에 지원하는 10대 청소년들을 보는 것도 익숙합니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즐겨듣는 삼촌 팬의 한 사람인 전 이런 문화 현상이 마냥 즐겁거나, 유쾌하지 않습니다. 때론 불편하고 못마땅할 정도입니다. 왜 그런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상까지 잠식당한 그/그녀들.

작년 한창 서태지의 비밀 결혼과 이혼이 이슈가 됐습니다. 당시 서태지는 많은 이들에게 욕을 먹고, 지탄을 받았지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그가 지금껏 사람들을 속여 왔다, 그러니 욕을 먹어도 싸다, 뭐 이런 것들이 주된 비판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비밀 결혼생활이 그토록 욕먹을 짓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서태지가 비판받게 된 배경에는 최근의 아이돌 문화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당최, 뭔 소리냐고요?

서태지가 활동했던 1990년대, 연예인들은 드라마, 영화 등의 작품 활동, 혹은 음반활동 이외에 그리 사생활 노출이 많지 않았습니다. 공적 영역에서의 연예활동과 개인의 영역/사생활이 철저히 분리됐던 것이죠. (그러니 가끔 터지는 연예인의 사생활 스캔들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불과 오랜 예전은 아니니 언뜻 떠올려보면 여러분도 기억하실 텐데요. 가령, 가수들은 앨범 활동을 마치면 잠정적 휴식기간을 갖고, 차기 앨범을 준비하며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 컴백했습니다. 앨범준비 기간은 곧 대중의 관심을 벗어나 재충전과 휴식을 갖는 그들만의 시간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최근의 문화산업, 특히 아이돌 산업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작과정부터 그들에게 사적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뷔 전부터 그들의 일상은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멤버구성 과정부터, 연습/훈련, 숙소 생활, 심지어는 침실까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의해 전달됩니다.  Mnet  같은 케이블 가요전문채널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딴 **TV 등의 형태로 말이죠.

이런 분위기는 최근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가 주된 소재가 되는 SBS 강심장 등의 예능토크쇼를 통해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은 자신과 멤버들의 일상을 공개하고, 때로는 연애 사실을 과감히 밝히고, 성형을 당당히 고백합니다. 이런 최근의 문화현상 속에서 비밀스런 사생활은 곧 사회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지요. 따라서 신비주의의 대명사 서태지는 뒤가 구린 놈, 이상한 놈 취급을 받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휴식은 언제? 밥은 먹고 다니냐?

이처럼 그/그녀들의 일상이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등장하고, 소비되는 현실이니, 그들은 과도한 노출이 식상하지 않도록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고, 또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앨범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소위 유닛/솔로라는 형태로 개별 활동을 하고, 때로는 드라마, 영화, 시트콤, 뮤지컬 등에 얼굴을 내밉니다.

그럴 때마다 휴식이나 재충천은 언감생심, 잠은 자니? 밥은 먹고 다니니? 이런 궁금함이 생깁니다. 그렇게 각종 공중파 TV출연, 각종 케이블 방송, 라디오, 콘서트와 개별 활동 생각만 해도 벅찬데, 해외활동까지 해야하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형국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한때 국민요정 대우를 받았던 여성그룹 핑클의 옥주현씨가 작년 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회사에서 너무 돌려서, 이렇게 할머니가 되는구나 생각했어요라고 했던 얘기가 오버랩 됩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유명그룹 멤버의 탈진, 실신으로 인한 병원입원 등의 기사도 익숙해 졌습니다. 심지어 그/그녀들은 부상을 입은 상태로 음악방송 무대에 서기도 합니다. ‘부상 투혼!’, ‘프로 정신!’이라는 찬사와 함께 말이죠.

     

아이돌을 부탁해!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지 모릅니다. 그만큼 부와 인기를 누리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거 모르고 시작한 것 아닐 텐데, 세상에 쉬운 게 어딨냐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터 독자들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도 괜찮겠죠? ^^) 그 얘기는 곧 연봉 4-5천만 원의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감히 야간노동을 철폐하자는 배부른 소리를 해? 그 정도 받으려면 잔업, 특근, 철야쯤은 기꺼이 해야 하는 것 아냐?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얼마 전 기아차 광주공장 고3 실습생의 뇌출혈 사고 이후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 실습생 제도의 근본적 폐지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현장에서 구사대로 동원되고, 성폭력에 노출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으며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현실이 재조명되며, 근본적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스타가 되면 많은 보상이 뒤따른다는 이유로, 이미 관행처럼 번져있는 소속사와의 불공정 계약의 문제,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 노동의 현실을 가볍게 비웃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작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인의 표준전속계약서를 개정하고, 과도한 노동을 금지키로 하며 아동청소년 연예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등의 내용을 신설하고 아동청소년 연예인에게 과도한 시간에 걸쳐서 대중문화예술용역을 제공하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쯤은 가볍게 무시되는 형국입니다. 구속력이 없는 모범답안일 뿐이니  말이죠.

이들의 현실은 2010년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연예인과 연예인지망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자료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응답자의 36%가 하루 8시간 이상 초과근무에 시달렸고, 41%는 야간노동 및 휴일노동 경험이 있으며, 47.6%는 일주일에 반나절 이상 수업에 빠졌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당최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통상부가 아이돌 케이팝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신 한류열풍을 이끈다며, 경쟁적으로 아이돌 산업과 관련 전담부서를 만들었다는 얘기뿐입니다. 오호 통제라!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어느 때  보다 10대들의 오디션 열풍이 뜨겁습니다. 연예인이 장래희망 1순위로 자리잡힌지도 오래됐습니다. 한 비평가가 말한 것처럼 사육이라는 다소 심한 말이 나올 정도로 엄혹한 환경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생존한 그들은, 대중이 가질 수 없거나 될 수 없는 인공적인 대리물을 지켜보며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인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위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TV에 출연한 인기여성 아이돌 그룹이 하루 2시간 정도 밖에 못자요. 바쁠 때는 30분만 잘 때도 있구요라며 인형 같은 미소를 짓더군요. 어느 때 보다 그녀들의 웃음이 예뻐보이지 않는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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