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9월 | 일터다시보기]“제 하루요? 그 때 그 때 달라요!”를 읽고

일터기사

통권 104호 2012년 8월호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제 하루요? 그 때 그 때 달라요!”를 읽고

한노보연 후원회원 최원영

이 글을 읽으면서 ‘어느 병원이나 대동소이하지만 ‘인력부족’문제로 다들 힘들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병원 측에 의해 조장된 인력부족이라는 사실이다.

환자가 적다고 출근 직전에 오지마라고 하는 것, 짜증난다
글에서 연차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병동에 환자가 많아져서, 혹은 중환이 많아져서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급하게 불려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출근해서 너무 바쁠 때 누군가 불려나와서 내 일을 도와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휴가문제도 그렇고 개인사정에 의한 갑작스런 근무표 변경도 그렇고 병원에서의 불합리한 근무일정은 상부상조한다는 느낌으로 참아내는 것 같다.
하지만 환자가 적다고 해서 출근준비 중이던 사람을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뭐람? 그리고 그렇게 쉬는 것이 온전히 휴일로 계산되는 것도 화가 난다. 이런 휴일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것은 나이트 근무 때 갑자기 나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이다. 나이트의 출근 시간은 밤이지만 밤을 꼴딱 새면서 풀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졸리지 않아도 억지로 자거나 적어도 외출을 삼가고 무리한 운동도 하지 않고 몸이 피곤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신하게(?) 출근시간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출근하려는 찰나, ‘오늘 환자가 많이 빠져서 출근 안 해도 돼.’라고 전화가 온 것이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시간에 억울하다고 혼자 나가서 한강변이라도 뛰고 올 수도 없고…결국 낮에 하루종일 자고 또다시 잠드는 것이다. 낮잠 때문에, 짜증 때문에 잠도 안 오고… 그리고 더더욱 짜증나는 것은 데이나 이브닝일 경우 이렇게 갑자기 오프를 받고 나면 다른 약속을 잡거나 외출을 할 수도 있으므로 어지간히 바빠서는 다시 불러내질 않는다. 그러나 나이트 근무의 경우 늦은 시간이므로 오프가 되었어도 그대로 집에 있을 거란 게 빤히 보인다. 갑자기 병동이 바빠지면? 다시 불려나오는 거다.
이런 걸 미리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간호사 한 명 없어도 되겠다는 게 어느 정도 확실해지는 출근 전 1시간쯤에 알려준다. 한창 병동이 한가하던 때에 내리 3일을 그렇게 쉰 사람도 있었다. 예정된 3일 OFF였다면 가까운 섬에 여행을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간호사는 3일 동안 매일 출근 준비를 했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감’은 환자로부터 나온다. 이런 일이 힘든 것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응급환자가 생길지, 아니면 환자상태가 갑자기 악화될지 우리 ‘일’의 근원인 환자는 항상 예측불허다.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아, 그래 원리원칙대로 해보자. 난 일단 오프 받았으니까 병원에서 전화가 오던 말던 쉬겠다’라고 했을 때, 그 간호사에게 돌아오는 화살은 동료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그것을 외면했다는 것 외에도 병동이 엄청나게 바빠서 이런 저런 실수가 생기고 중요한 약이 누락되거나 환자가 안 좋아지게 되었을 때, 그 도덕적인 비난까지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인력부족의 피해자는 결국 환자일텐데…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의사가 오더를 내지 않았을 때, 그리고 연락이 안 될 때… 혹은 구두오더로만 지시를 내려서 약은 없고(약은 전산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으면 약제부에서 약이 불출되지 않는다.) 약을 줘야 할 때, 만약 다른 회사 같으면 원인제공을 한 사람의 책임이므로 일이 조금 꼬이게 될 것이 눈에 보이더라도 굳이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사태 수습에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자 오더는 없지만 이 환자에겐 꾸준히 이 약을 투여되어왔고 특히나 그 약이 면역억제제나 항생제, 혈압조절약 같은 아주 중요한 약일 경우 ‘오더도 없고 약도 없으니까 안 줘도 되겠네’라고 ‘담당 주치의야 너 한 번 엿먹어봐라’하고 약을 뚝 끊을 수는 없다. 중환자의 경우 Norepinephrine이나 Dopamine같은 약을 고용량으로 쓰면서 겨우겨우 혈압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갑자기 그 약을 끊을 경우 혈압이 후두둑 떨어지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 죽을 것이다. 여태까지 아무도 그렇게 한 적이 없으므로 그렇게 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 될 진 모르겠지만 아마 주치의가 엿 먹는 걸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간호사는 여기저기 약을 빌리러 뛰어 다녀야 하고 담당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사에게 오더를 ‘구걸’하러 다녀야 한다. 그러면 그 의사는 그 환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간호사의 말만 듣고 오더를 넣는다. 그나마도 안 도와주는 의사도 있다. 환자 이름만 듣고 ‘제 환자 아닌데요’라고 하면서 전화를 뚝 끊기도 한다. 이런 일은 병원에서 아주 흔하지만 그럴 때마다 의사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수술중이거나 밤새 수술하고 기절해서 자고 있겠지…하고 이해해주고 만다. 간호사도 부족하게 뽑는데, 더 고급인력인 의사를 넉넉하게 뽑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병원이 돌아가는 것은 ‘내가 이것을 해내지 못 하면 환자에게 해가 된다.’는 의료인들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에너지 때문이다. 환자가 적으면 다 같이 조금 널럴하게 일하고 환자가 많을 때, 환자의 상태가 중해질 때를 대비해서 인력이 항상 넉넉하게 대기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해 일하는 우리들도 피곤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환자일 수밖에 없다. 부족한 인력,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피곤에 절어 있다면 결국 그것은 투약오류, 수혈오류 등의 의료사고로 이어진다. 일차로 당사자인 우리들의 목소리도 중요하겠지만 살면서 언젠가 한 번 쯤은 병원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이 이런 병원의 운영 실태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주치의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고 간호사를 아무리 찾아도 ‘지금 저기 환자가 상태가 안 좋아서 바쁘다’며 눈도 안 마주치고 뛰어다닐 때, 그건 병원이 당신들이 낸 치료비와 당신들이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 공단에서 나온 돈을 의사나 간호사를 고용하는데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질의료 거부한다. 의료인력을 확충해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목소리를 좀 높여줬으면 좋겠다.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