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9월 | 칼럼] 분서갱유를 통해 보는 독재

일터기사

분서갱유를 통해 보는 독재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최종배
지하철역, 바쁜 걸음을 붙잡는 풍경을 종종 마주한다. 가난한 이웃과 가난한 국가의 주민을 돕자는 절박한 호소, 아주 작은 금액도 굶주림과 질병, 추위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그들의 외침. 인간이라면 뿌리치지 못할 참상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마주친다.

IMF가 휩쓸고 남겨둔 것
1997년 말 한국사회를 덮친 IMF는 많은 것을 바꿨다. 그 중 가장 확연히 눈에 뜨이는 것이 물신주의다. 이제 돈이 신의 위치에 올랐다. 국민들은 국난이라는 IMF를 극복하고자 장롱 속의 금붙이를 아까운 줄 모르고 내놨다. 그러나 곧 한국사회 전체를 휩쓴 구조조정을 경험하며, 자녀의 돌반지나 어렵사리 장만한 금붙이를 내놓은 사실을 자책했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를 경험한 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불신을 새겼다. 험한 세상을 사는데 믿을 것은 가족과 돈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맹자는 나라 다스리는 법에 대해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꾸준히 일할 생업을 가져야 백성이 사람의 도리나 법과 제도를 지키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사회는 과연 그러한가? 오륙도(오십육살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 사오정(사십오세면 정년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을 그만 두라는 의미),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 등 신조어는 현실이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미래를 꿈꾸는 자 누구인가? 온갖 상식 밖의 일들이 눈과 귀를 채우고, 당장 보이는 성과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명품의 차가움
글로벌시대, 과연 수입외제차가 귀하지 않다. 길에서 3초면 하나씩 마주치는 일명 ‘3초 백’ 루이뷔통 스피디백은 100만원 초반의 가장 저렴한 명품이다. 수량 한정으로 없어서 몇 년씩 대기해야 손에 들 수 있다는 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 버킨백은 1200만원에서 1억2천만원선이다. 명품백도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가지고 있어야 행세를 할 수 있단다. 대한민국 0.1%의 소수들은 600만원~1천만 원 대의 샤넬 시계, 통상 1천만 원 대의 샤넬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나 상류층이요’한다. 0.1%에 진입하고 싶은 계급적 강박에 물든 차상위층도 ‘나도 한 가락한다’는 표시를 내고 싶어 한다. 이른바 명품의 대중화현상이다. 명품이 혼수예물 아이템이 되고, SKY대학 입학선물로 대세를 형성했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의미에서 자뻑 아이템은 자아성취를 뜻한다. 샤넬백을 사두면 시간이 지나 원금은 물론 수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재테크, 일명 ‘샤테크’는 상속과 증여의 수단됐다. 1%에 진입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된다는 계급적 강박, 계급적 물신주의의 추악함이 판을 친다.
2011년 11월 건강관리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억대 연봉자의 수는 32만3천명. 2002년 4만1600명에서 불과 10년 만에 8배가 늘었다. 대중명품의 시대를 지지하는 물적 기반이다.
명품은 이제 일부 여성의 관심사가 아니다. ‘웃옷 속으로 팔목에서 명품시계가 살짝 눈에 띌 때 과시의 만족감을 더 느끼게 한다’는 시계는 300만 원 대의 태그호이어부터 시작해서 1WC, 바쉐론콘스탄팀, 제니스, 파텍필립, 브레게, 롤렉스 등 즐비하다. 기술적, 역사적 의미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며 명품은 파고든다. 정장은 물론 구두, 커프스 버튼, 넥타이 핀, 만년필, 지갑 등 품목은 끝이 없다.
‘이걸 사면 나도 고상한 존재, 멋진 인생이 된다’는 믿음의 삽질은 어지간한 수입으로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런 짠함을 비웃으며 슈퍼리치들은 일반 명품보다 10배 이상 비싼 초고가 명품을 선호한다. 이른바 위버럭셔리(uber-luxury)현상이다.
슈퍼리치 그들은 경제위기를 기화로 세계의 재화와 경제구조를 자신의 입맛에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올해 3월 현대자동차 정몽구는 주식배당으로 456억3천만 원을 받았다. 배당부자에서 빠지지 않는 현대중공업 정몽준은 지난 해 574억7천만 원에서 308억7천만 원을 받아 2위를 기록했다. 국민이 모두 좀 더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훈계남으로 등극한 삼성 이건희는 지난 해 510억8천만 원에서 285억9천만 원을 받았다.
슈퍼리치, 재벌이 공들여 구축해 온 사회에 냉기가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리치나 슈퍼리치가 만든 불안사회에서 믿을 건 돈이라는 생각은 가족의 미래와 건강에 집중하기도 벅차다.

피폐해진 사회
“수정 씨가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인사시키러 갑니다. 저기야 저 집이야…. 수정 씨 집은 래미안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누구나 한번쯤 살고 싶은 아파트, 누구나 갖고 싶은, 그러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름 – 롯데캐슬”
물신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주거생활이다. 업무에 열중하느라 부동산 호황과 투기세력이 한 몫 잡을 때 승차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런 광고카피는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고 계급장벽을 강하게 암시하며 계급적 물신주의를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한 가지의 가치, 한 종류의 삶으로 몰아가는 사회구조에서 부자가 아님을 절감한 이들은 자녀교육과 건강관리에 집중한다. 능력 이상으로 자녀의 사교육에 투자하며, 교습비가 따로 들지 않는 등산과 자전거 타기에 동참한다. 촌티나지 않게 갖추는데 160만원이 드는 등산용품, 입문단계에서 좀 벗어날수록 욕심이 커진다는 자전거는 400만~500만 원 대의 기본비용이 대세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한 자치단체인 서울 서초구의 보건소에는 노인환자가 북적인다. 좋은 병․의원이 밀집한 동네, 웬만큼 먹고 사는 분들의 부모가 보건소에 가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1~2천원을 아껴 손주들 과자라도 사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조기유학, 다양한 사교육, 해외여행 등으로 등골 휘는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돈 안 드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되고 후한 보수를 받는 교수직종도 돈에 쪼들린다. 국가 프로젝트 수행, 학생과 조교 인건비 착복, 계절학기 강의, 논문심사 등 밤낮으로 뛰며 긁어모은 돈은 자녀들 유학과 사교육비 대는 데 벅차다.
남들보다 더 가져야 한다, 더 높아져야 한다는 소유의식이 피폐의 경쟁을 초래한 사회를 겪고 있다.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사회갈등지수가 높은 나라(삼성경제연구원), 조기퇴직 압박에 휘말려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쫓겨나 자영업자 등으로 인생을 견디지만 실질 은퇴연령이 70.3세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나라. 노인 빈곤율, 자살률 등 1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항목들이 넘치는 나라. 온갖 몰상식이 상식으로 통용되지 심신이 편안할 날이 없다.

동․서양의 폭정, 그리고 대한민국
동양의 이름 높은 임금 중에 진시황이 있다. 그는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포악하고 무도한 절대군주의 최고봉에 올랐다. 음양가(陰陽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도가(道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등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저마다의 철학과 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운영하는 학문을 활발하게 논했던 춘추전국을 마감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그는 문자통일, 경제통일, 제도통일 등을 뒷받침할 사상통일을 원했다. 법가의 대표적인 학자인 한비는 한비자(韓非子)를 저술하며 선현(先賢)을 배척하고 인의(仁義)를 멀리하라고 썼다. 아버지가 법을 어겼으면 아들은 이를 숨기지 말고 반드시 고발하라는 내용이다. 특히 현자(賢者)나 유식하다는 유가들은 알량한 글로써 나라의 법을 어지럽히기만 하니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시황은 이 책에 깊이 감동했고, 승상 이사(李斯)의 주청대로 역사와 의술, 농업과 점복에 관한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을 몰수해 불살랐다. 이후 1년이 지나 불로장생과 영원한 통치를 꿈꿨던 그를 농락하고 거금을 챙겨 도주한 방사(方士 :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사건을 계기로 아방궁과 만리장성, 전쟁 등에 비판적이었던 유생들을 잡아 산 채로 땅에 묻었다. 제자백가의 저술을 숨긴 자는 노역형, 그에 대해 논하는 자는 참수형, 옛일을 돌이켜 지금의 정치를 비방하는 자는 일족을 멸했다. ‘음풍농월하는 쓸모없는 사상은 단호히 배격한다’는 조치를 통해 학문과 사상에 압제를 가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아니 영생불사의 영원한 통치를 만들려고 했다.
한편 서양에는 진시황을 능가하는 표본으로 히틀러가 있었다. 극단적인 사상통일, 민족주의, 식민주의를 품은 그는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6천만 명의 희생자를 냈고, 유태인 6백만 명을 학살했다. 히틀러의 언론장악은 괴벨스를 통해 운영됐다. 괴벨스는 라디오에 주목했다. 라디오는 국민의 정신을 장악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였다. 1934-35년 국가 보조금을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값싼 라디오를 전국에 보급했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 영화를 활용했다. 괴벨스는 언론이 정부의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괴벨스를 통해 독일인들은 미친 상태로 펄펄 끓었다.
한 무용가에게 20억이 넘는 일감을 몰아주고 법인카드로 7억 원이 넘는 금액을 사용한 자가 공영언론의 최고책임자로 170여일의 파업투쟁과 국민의 성토를 거뜬히 받아 넘기고 있는 2012년 한국사회. 한국사회에 미래가 있는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하며, 시장(市場 : 재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퇴임한 전직 대통령은 무엇을 보았을까?
괴벨스 평전을 낸 랄프 로이트는 괴벨스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워했던 세력은 ‘현실에 눈을 감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잘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광우병 촛불집회로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자신의 미숙한 대응을) 반성했다는 독재자의 정부는 이후 촛불집회 참가단체의 자금원을 조사하고 정부지원을 끊었다. “정부는 앞으로도 시민사회단체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좌파 진영이나 광우병 촛불사태에 참여했던 단체들을 지원할 방침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수년간 시민사회단체의 축소와 해산, 활동가의 이탈이 얼마인지 집계가 되지 않는다. 반면 작년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3단체는 정부에게 수십억 원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한국자유총연맹은 13억 원,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10억 원 등이다. 일반 시민단체는 천만 원 단위의 지원금도 받기 힘든 상황에서, 3개 단체에 28억 원이 몰렸다. ‘종북몰이’ 군변단체는 우후죽순으로 늘어 MB정부 4년 새 국고지원이 8.5배 늘었다.
시민사회단체 탄압은 분서갱유의 현대판이다. 다양한 목소리와 가치관을 말살하는 것이야 말로 돈을 신격화시키는데 필수적인 사업이다. 현실에 눈감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고난을 감내하며 오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의 투쟁에 가로막혀 재벌과 정권이 나와 당신의 항산(恒産.직업)을 대놓고 흔들지 못 한다.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이 축소되고 소멸되지 않게 하는 유효한 방법이 연대와 후원이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따뜻한 마음으로는 법과 제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축적된 많은 경험과 명확한 판단으로 어렵게 투쟁을 이어가는 단위들에 대한 연대와 후원은 사회를 살리고 변하게 한다. 나와 당신의 타오르는 뜨거운 마음이 미래를 바꾸는 변화의 힘이다.

함께 가자.
천하통일과 사상통일, 위대한 제국건설, 경제성장을 외치는 물신주의는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말살시킨다.
사이후이(死而後已)를 외치는 정권이다. 죽은 후에야 일을 그만 둔다는 어려운 말이다.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사내 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을 준비한 철저한 자본가 정권이다.
후한 말기에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저술하며 분서(焚書 : 책을 불사름)와 갱유(坑儒:유학자들을 땅에 생매장함)를 기록했다. 궁형(거세형)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형벌로, 살려 두고 살아 숨 쉬는 평생을 그리고 후대까지 치욕을 겪게 하는 형벌이다. 사마천으로 해서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가장 반문화적이고 반인륜적인 폭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여 인류사에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게 됐다.
거짓을 드러내고 진실을 세우고자 투쟁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많다. 탄압을 겪으며 변화를 향해 투쟁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많다. 함께 가자. 중국의 작가 루쉰은 가는 이가 많으면 큰 길이 된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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