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I 1월 I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10명이라도 부족한 일, 그래도 노안활동은 힘이 납니다.”

일터기사


“10명이라도 부족한 일,



그래도 노안활동은 힘이 납니다.”




–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 문길주 실장


정리 :선전위원 푸우씨




노안국장을 할 때도 그랬지만, 실장이 된 후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문길주 동지. 한 시가랑 가량의 짧은 인터뷰 시간이었지만 그를 찾는 각종 전화로 인해 중간, 중간 인터뷰를 중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느 때보다 밀도 있게 나눈 그와의 진솔한 대화를 전한다.



금속노조 노안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셨는데. 어떠세요?



사실 기대 반, 설렘 반이에요.(웃음) 물론 두려움도 큽니다. 15만 금속노조 조합원의 건강권을 책임지는 자리잖아요. 제가 다 책임지는 건 아니지만, 자리가 주는 무게가 상당하죠. 금속노조 5기와 6기를 거치면서 잘 해왔던 노안업무들을 차질 없이 이어가야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또 채워야 하고, 7기때 새롭게 시작해야 할 과제들도 선정하고 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교차지점에, 중간지점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 금속 노안활동가 대회는 어땠나요?



금속노조가 타임오프나 복수노조 도입을 경과하면서 위축된 건 사실인데요. 지난 2010년 노안활동가 수련회 때는 80여명만 참석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140명 정도 참석해서 일정하게 그런 위축을 극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예전 노안문제가 전성기였던 때처럼 조직해 볼 만한 조건이 된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기대도 해보구요. 직업성 암환자 문제나 이런 것이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제기되는데,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불승인 남발은 계속되니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노안업무, 노안실에 대한 요구가 있고 현장의 분위기나 기대도 형성되는 것 같아요.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들도 상당할 것 같네요.



작년 4월 28일 직업성 암환자 산재신청, 8월 산재신청, 그리고 지난 12월 1일 암환자 45명에 대한 산재신청까지 포함하면 금속노조에서 총 80여명 정도 직업성 암환자 산재신청을 했어요. 차츰 그 결과가 나오고 있고요. 각각의 결과에 대한 대응과 작년 12월 1일 산재신청 후속작업을 고민 중입니다. 또 발암물질 실태조사를 지난 6기 중앙교섭에서 실시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라, 실제화를 위해 실태조사 시기 선정과 측정방법, 기관선택 등, 정말 세세하게 따진다면 측정방법과 관련한 것부터 발암물질 사업 전반의 틀에 대한 고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죠.



금속노조 노안담당도 많이 바뀌었죠?



7기 들어서면서 금속노조 노안담당자들이 전체적으로 80%정도 바뀐 것 같아요. 그만큼 노안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동지들도 많고, 따라서 교육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발암물질이 뭔지, 실태조사가 뭔지, 어떤 관점으로 현장조사를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 교육뿐만 아니라 집행부들이 바뀌니까, 지회에서 기초적인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대한 교육 의뢰도 많은 상황이에요.



연말 연초에도 무척 바쁘셨겠네요.



기아자동차 실습생 사망과 관련 대책회의 등에 함께 하는데요. 요즘 안전사고 등이 많았잖아요. 기아자동차 실습생 사고나, 지난 12월에 GM대우에서 발생한 뇌출혈 사망 사건, 당진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사고, 세진중공업 폭발사고. 바로 어제(1/4) 창원 두산 중공업에서 발생한 압착 사망 사고 등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죠. 특히 이런 문제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발생하니,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연말 연초 조금 더 정신이 없었네요.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만 얘기를 들어봐도, 금속노조 노안실에서 다 감당하기에는 굉장히 업무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10명이어도 부족합니다. 노안업무라는게 범위가 넓기도 하고, 세분화 한다면, 각각이 전문분야잖아요. 노안실 개편 후 현재는 노안실에 저를 포함해 2명이 일하고 있는데요. 조만간 현장에서 올라오는 동지들로 충원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명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들이 계속되는 건 한명이 교육가면, 나머지 한명은 실무처리, 상담전화 등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니까 정신이 없지요. 교육을 가면 하루가 다 소요되잖아요.



노안실만이 아니라 지부나 지회의 노안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렇죠. 금속노조는 지역지부 운동의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노안문제에 있어서도 지역지부 노안담당자들이 선임되어 자기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죠. 지역지부만 봐도 절반정도만 담당자가 선임됐고, 그마저도 겸임인 경우가 많거든요. 선거 때든 아니든, 현장에서 노동안전 문제, 건강권의 문제가 많이 제기되는데. 실제로 집행부를 구성할 때는 담당자 선임이 어려우니 안타까움이 큽니다.



노안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어떻게 이 길에 접어들었나 생각해보면…. 전문대를 졸업했는데 학교에서 관련 공부를 한거에요. 다른 것에는 흥미를 잘 못 느꼈는데, 작업장 환경, 안전 이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갔으니, 자연스럽게 산업안전에 대해서 공부를 했고요. 전문대학에서는 자격증을 하나씩은 따서 졸업을 해야 하는 분위기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기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때마침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노동부 산하는 아니고, 노동부의 업무를 대행하는 대한산업안전협회에 취직하게 됐죠. 떠올려보면 급여가 괜찮은 꽤 좋은 직장을 다닌 거죠.(웃음) 그런데 얼마 후 97-98년 IMF가 오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계약직이었던 전 해고가 된 거죠. 당시에는 계약직이나 이런 개념을 잘 몰랐던 때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계약직이었던 거예요.
어쨌든 그렇게 해고가 된 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는데요. 당시 98년 즈음 광주노동보건상담소라는 단체에서, 간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활동을 2-3년 하면서 지금 활동하고 계신 노안활동가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마창거제 산추련 이은주 동지나, 대구의 김은미 동지, 노건연의 전수경 동지 등을 당시에 만났죠. 그런 활동과정에서 노안활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됐고, 노동조합운동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고민도 생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역 활동을 몇 년간 하다 보니. 지역 현장에서 노안활동에 대한 공감대와 인식이 확산된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에도 노안담당자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됐고요. 그렇게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에서 노안부장으로 일을 시작해서 2010년까지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에 있다가, 금속노조 중앙으로 올라오게 된 거죠. 거슬러서 생각해보니 안전협회부터 생각해보면 15년 넘게 노안활동을 해오고 있네요.



지역 활동을 지속하다가 금속노조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고민도 많으셨을 테고, 지역에서 반발도 있었겠는데요?!



하하, 지역의 동지들은 저에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지만, 사실 지역은 어찌하냐?는 하소연도 하더라고요. 저도 고민이 됐죠. 그런데 오히려 제가 없으면 그걸 계기로 다른 주체가 발굴되고 활동이 진행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들더라고요.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서울 물도 먹어보고, 중앙에서 일해보고 나중에 그 경험을 토대로 지역 활동 하면 되지 않겠냐. 그런 의견도 있었어요. 그렇게 올라온 지 2년이 됐는데. 지금 지역은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게 사실이에요. 광주전남에 사건도 많고, 이슈도 많고, 직업병 문제도 많으니까요. 금속노조 중앙에 올라와서 전국을 돌면서 가끔 광주전남도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미안함이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15년 노안활동을 하면서 뿌듯했던 일도 많으실 텐데. 내가 이 활동하기를 잘했다 뭐 이런 계기도 있었을 것 같고요.



눈물 나는 일이 많았죠. 어려운 직업병 산재인정 받은 케이스들도 있고요. 지금까지 한 5천 건 정도 산재상담을 한 것 같아요. 금속에서만 500건 가까이 산재상담을 했고요.
그 중에 기억 남는 일은, 제가 예전에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요. 당시 검사구형이 7년이 나왔으니, 적어도 2년은 실형을 살 것이라고 주변에 동지들이 얘기할 때였죠. 그때 저도 몰랐는데 산재노동자들, 환자들 200여분이 자필로 탄원서를 써서 판사에게 제출했더라고요. 판사에게 이 사람은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내용을 써주신거죠. 그 분들 탄원서는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당시에 감옥에서 정말 많이 울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산재환자들과 울고, 웃는 일들이 많고. 암투병 중인 환자들과 못 다한 이야기들도 많은데. 제 손을 꼭 쥐시면서 헤어지고 돌아올 때 문자를 보내신 분들. 그 분들 문자 메시지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산재환자, 직업병 피해자 이런 일들을 만나는 일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보니까. 산재 승인난 것이 그 중에 기쁜 일이니까요. 그런 일들이 여전히 저에게 노안활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게 아닐까 싶네요.



노안실장 하시면서 어려운 지점은 어떤 건가요?



일단, 뺏지가 무겁죠.(웃음) 역할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노안업무를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지금처럼 고민을 많이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실장이라는 역할도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이 활력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보거든요. 돌아보면 예전 근골격계 투쟁이 한참일 때가 노안운동이 정점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는 현장도 일정한 분위기가 있었죠. 그 최고점 이후 사실 현재까지 계속 하향세니까 어떻게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이 고민되죠. 그 과정에서 금속노조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또 주변의 기대도 있으니까. 정책적 대안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고, 물론 금속노조가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속노조에서 방향을 잡아야 노안단체와 소통도 하고, 얘기를 풀 수 있잖아요.



올해 발암물질 사업 이외에 주요한 사업은 어떤 건지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발암사업은 말씀드렸듯이 6기 사업의 연장인데요. 올해 특히 잘해야 합니다. 노사가 중앙교섭을 통해서 시행을 합의했으니, 잘 매듭지어서 제도적으로 정착해야 할 과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작년에 수면장애 실태조사를 했는데 후속작업을 못했어요. 그 후속작업을 해야 합니다. 또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중대재해도 많고, 중대재해 특별법을 만드는 문제부터 사업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문제도 과제입니다. 건설만큼 금속에서도 사람들이 사고로 많이 죽고 있으니까. 사회적 문제로 이 사안을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마지막으로 소음성 난청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퇴직한 선배 노동자들이 이래저래 귀가 멀고 있고, 특히 직업병에 있어서 상당부분을 차지하지만 사실상 방치되는 부분이 많아요. 소음 기준을 낮추는 것부터 보상투쟁까지 고민해, 하반기에는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있지만, 그 중에 사업계획서를 통해 제출한 주요 사업은 이 정도네요.
또 하나는 발암물질 관련해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사업을 고민하고 있죠. 금속노조에 자동차 관련 업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시민, 소비자, 노동자 모두가 각각의 위치에서 건강한 자동차를 요구하는 사업을 고민 하고 있습니다. 정당과 지자체는 그것을 규제하고 시행할 조례와 법을 만들고, 사업주는 대체물질을 도입할 책임을 고민하게 하는 사업으로 말이죠. 현재 초안을 구성중이고 조만간 제출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사업들을 금속노조만의 힘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동안전보건단체들과 함께 얘기를 풀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사업을 구상중이신데요. 이 사업이 실제화 되려면 중앙차원의 대응만이 아니라, 현장이 주체로 나서야 할 텐데요. 예를 든 것처럼 현장의 주체들은 산재법, 산안법에 대한 기초 교육이 필요한 상황인데, 주요 사업 과제는 어마어마하니.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고민일 것 같은데요.



사실 저도 그게 관건이라고 보고, 가장 큰 고민입니다. 하지만 고민을 해도 숙제로만 남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뭐 특별한 방법이나 정답은 없어요. 열심히 현장을 다니고, 사람들 만나서 진심을 보여주고, 이 사업의 필요성을 설득해야지요. 주변에서 도움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지역적 특성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모으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민주노총 지역본부나 노동안전보건단체들, 금속노조 산하 지역지부 등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금속노조만으로 간극을 줄이기는 불가능 하구요. 지역동지들과 고민을 같이 해야 이런 것이 전국적인 분위기로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금속노조는 그 과정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겠죠. 금속노조는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단체, 지역지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고민하는 자리를 계속 만들려고 시도해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타지에서 생활하고 계시니, 가족들의 불만도 있을 텐데, 어떠세요?



아직 막내가 돌도 아직 안 지났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2년 가까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은 솔직히 많지요. 내일부터 육아문제 때문에 휴가를 쓰고 내려가서 같이 얘기를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런 부분 때문에 미안함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그렇습니다.



서울 생활은 어떻게 적응이 좀 되시나요?



서울에 사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웃음) 지방출장이 워낙 많고, 새벽에 갔다가 저녁 늦게 올라오니까요. 저녁에 시간이 되면 가능하면 금속 이외의 집회에도 참여하려고 하는데요. 근데 그러다보면 늦게까지 술 한 잔씩 하게 되고. 숙소에 늦게 들어가고, 일찍 움직여야 하는 과정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게 좀 쌓이는 것 같아요.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어쨌든 서울 생활을 하게 된 게 노안활동 때문이니까. 아직은 좋아요.



직책이 바뀌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건가요?



국장을 할 때는 맡은 업무를 수행하면 됐는데, 실장은 전체를 관장하고, 다른 실국과 보조를 맞출 것도 있으니 어려움이 있네요.
최근 금속노조 신규노조 구성 유형을 보면 3가지 특징이 드러나고 있어요. 첫 번째는 회사의 인격모독에 때문에 노조를 만드는 경우, 두 번째는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체불임금이 많아지면서 그 불만으로 노조를 만드는 경우, 그리고 세 번째가 특히 최근의 특징인데,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노조를 구성하는 경우에요. 기존에는 신규노조 구성이 대부분 첫 번째, 두 번째 문제였는데, 요즘은 세 번째 작업환경이 문제가 많이 되고 있어서, 미조직실과 신규사업장 조직화를 시작할 때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2012년 첫 인터뷰의 주인공이 됐네요. 매우 영광입니다.(웃음) 건강하게 노동하기 위해 고민하는 만큼, 일터 독자들도 모두 건강한 2012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지금까지 약간 소강상태였다면, 2012년은 지역동지들과 노동안전보건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활력을 찾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고, 그런 분위기를 일터 독자들과 함께 열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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