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I 1월 I 칼럼] 웃음의 혁명성

일터기사

웃음의 혁명성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김 정 수





나는 유행을 즐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그것보다 내 가치관과 내 삶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아날로그적이다. 인터넷으로는 이메일과 몇몇 게시판을 확인하고 뉴스를 보는 게 전부다. 남들이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다시 트위터로 옮겨 다닐 때 나는 책으로, 그것도 고전으로 파고들었다. 스마트 폰 2천만 시대, 나에게는 아직 스마트 폰이 없다. 이런 나도 나는 꼼수다는 전편을 다 들었으니 그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직업상 건강관련 서적을 많이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웃음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 책들을 몇 권 읽게 되었다. 면역기능을 강화시킴으로써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토피성 피부염에도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에도 최고의 치유책이다,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운동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등등. 백 번 동의하고 남을 만한 얘기다. 나 역시 별로 웃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기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TV 개그 프로, 예능 프로, 코미디 영화, 라디오 컬투쇼 등을 전전하다 나꼼수를 알게 되었다.



나꼼수의 존재 자체는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 폰도 없는데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의 시시껄렁한 건달같은 이미지도 별로였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일단 처음 몇 편 듣다보니 그 재미에 푹 빠져 며칠에 걸쳐 전편을 다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어지간하면 사지 않던 신간, 나꼼수 출연자들의 신간 책도 거의 다 사서 보게 되었다.


나꼼수 피디 김용민은 자신의 책 [나는꼼수다 뒷담]에서 나꼼수 흥행의 비결을 캐릭터, 스토리, 웃음의 혁명성, 울분, 편집으로 꼽고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웃음의 혁명성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웃음이 역시 그가 나꼼수의 흥행의 5가지 배경 중 하나로 주목한 홍보 수단의 혁명, SNS와 접목될 경우 폭발적인 혁명성을 지니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서 언급한 웃음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혁명성의 기본 바탕 쯤 될 것 같다.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진지한 것보다는 웃긴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 재밌으니까!!! 웃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니까!!! 메시지 전달 효과도 뛰어나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진 저항의 역사에서 진지함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저항 자체가 곧 죽음으로, 구속으로, 해고로 이어지는 수 십 년간의 현실에서 결연함과 비장함은 저항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혹은 어쩔 수 없는 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의한 죽음, 구속, 해고는 여전하지만 저항하는 것 자체가 죽음, 구속, 해고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선배 투사들의 수 십 년에 걸친 투쟁의 결과 우리가 누리게 된 행운이다. 그렇다면 이제 저항의 태도로 진지함웃음중에 무엇을 택할 것인지 선택해 볼 여지가 생긴 것 아닐까? 모든 저항은 당연히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사안과 상황에 따라 웃음의 태도를 취하기 위해, 우리의 주장을 담아 대중을 웃기기 위해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SNS 자체는 정보공유와 소통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SNS의 세계가 절대적으로 평등한 곳은 아니다. 거기도 역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SNS의 세계에서 강자는 콘텐츠가 강한 자다. ‘재미혹은 웃음은 강한 콘텐츠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SNS의 세계에서 웃음은 가공할만한 혁명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봉도사의 구속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멤버들 역시 각종 고소 고발로 목이 조여 오는 상황에서 결연함과 비장함은 본능적인 반응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웃음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만약 우리가 슬프게 나가면 청취자는 같이 슬퍼하는 게 아니라 공포에 절게 될 거야. 생각해봐. ‘이명박에게 덤볐더니 결국 좆된다는 공식만 확인해 주는 꼴 아니야?”([나는꼼수다 뒷담화]에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말) 김어준 총수의 쫄지마!!!”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집회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구호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한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 구호가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저 구호를 들은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해고는 살인이니까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막상 그 구호를 외친 노동자는 구호를 외칠 때마다 스스로를 살인의 피해자로 규정했을 수도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런데 나는 해고되었다. 그래서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죽음의 공포 속으로 빠져 들었던 것은 아닐까? 저 구호를 들은 대중들 역시 분노와 더불어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죽을 만큼 힘든 시련일 것이다. 하지만 해고는 결코 살인이 아니다. 해고가 살인이라는 프레임은 분노뿐만이 아니라 공포 또한 조장할 수 있다. 이렇게 조장된 공포는 자본가에게 합법적인 살인을 간접적으로 허용하는 꼴이 된다. 세상이 뒤집어지기 전에는 어쨌든 자본가는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으니까. 공포 분위기 조장은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노는 충분히 담기되 공포는 확 떨쳐버릴 수 있는 좀 더 재밌고 웃긴 구호는 없었던 것일까? 별 생각 없이 집회에 참석해 아무 생각 없이 앞에서 외치는 구호를 따라 외쳤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웃음혁명적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의 무기는 분노다. 그 이면에는 공포가 있다. 분노와 공포는 인간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긴다. 이 스트레스는 순간적으로 폭발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에너지원이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자신을 갉아 먹는다. 몇 번의 폭발로 단숨에 바꾸기에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지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여유. 바로 웃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2, 웃을 일이 많은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나부터 좀 더 웃기게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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