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12월|기획]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은

일터기사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은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동근

1.
얼마 전 발전노조 탄압에 이명박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2009년 9월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차장 주재 ‘노사관계회의’와 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주재 ‘BH(청와대)회의’가 발전노조 노무관리 본격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후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 발전노조 선거 개입, 기업별 추진위 설치 등 민주노총 탈퇴 시도가 진행되었으며, 실패로 돌아간 후에는 ‘강제 퇴출제도’ 및 ‘드래프트제’를 통해 개별적인 발전노조 탈퇴 압력이 있었다. 정부는 민주노총 탈퇴 노력을 발전5개사 경영평가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지경부와 노동부는 실시간으로 민주노총 탈퇴와 회사노조 설립 과정을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원 1명에게 관리자 3~4명이 붙어서 끈질기게 탈퇴 압력을 가하고, 응하지 않는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원거리 발령을 내는 등의 과정에서 발전노조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발전5개사 노동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했다.

2.
지난 10월 29일 경제자유구역법 시행규칙이 공포되었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이 마련된 가운데 시행규칙까지 공포됨으로써 국내에 영리병원이 설립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완비되었다.
2012년 초 지식경제부가 전국 6개 경제자유구역청이 참여하는 정책협의회를 발족하면서 영리병원 현실화 시도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이 사회운동의 반대로 힘들어지자 시행령 개정, 시행규칙 제정이라는 꼼수를 썼고, 동시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삼성증권, 삼성물산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ISIH 컨소시엄을 투자자로 선정하면서 송도에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최대 3,000억원의 공공 자금을 컨소시엄에 지원하기로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새삼 되돌아보는 지난 5년은 대기업, 재벌과 뜻을 같이하며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정부, 그리고 그에 힘겹게 맞서왔던 민중운동진영 사이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언급한 발전노조 사례뿐 아니라 쌍용차의 기획부도에 이은 대량해고, 컨텍터스와 창조로 대표되는 노조파괴 산업의 호황, 영리병원 도입과 KTX 민영화 시도 등은 상징적인 사례들이다. 삼성, 현대 등 재벌들은 역대 최고에 육박하는 수익을 내는 와중에 사람들은 죽어나갔다.

그리고 이제 대선을 앞두고 지난 5년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색깔을 지우려는 박근혜, ‘참여정부의 아들’ 문재인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권 심판론’과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가 2012년 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런데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잊은 것은 없는지 한번 따져보자. 소위 ‘이명박이 죽일 놈’이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발전노조 탄압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부터 진행되어온 발전부문 분할 매각 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영리병원 도입 역시 참여정부 5년간 기틀이 마련된 의료민영화 정책의 일부이다. 사기업이 경찰력을 흉내 내면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경찰이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비가 비싸지고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진다는 비판에 대해 ‘의료산업화’와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는 정부의 논리는 노무현 정부와 판박이처럼 똑같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으니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짜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자는 얘기다. 정권과 자본이 합심하여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휘몰아친 노조파괴를 막아낸 것은 유성기업, 두원정공, SJM 등에서 단결하여 싸운 노동자들의 힘이었고,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민영화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것 역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저항이었다. 쌍용차 문제를 전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내면서 ‘만들어낸 경영위기’를 근거로 한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널리 알려낸 것 역시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이었다.
입에 발린 말들의 향연일 뿐인 선거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앞으로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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