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12월|뉴스]고용노동부, “산재입증책임 못 나눈다”, 인권위 권고 거부

일터기사

고용노동부, “산재입증책임 못 나눈다”, 인권위 권고 거부

국가인권위원회는 산업재해와 관련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근로자뿐 아니라 근로복지공단과 사용자도 함께 입증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으나, 고용부가 이를 거부했다. 대신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역량을 강화하고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1월 14일 인권위에 따르면 노동부는 최근 이러한 답변을 담은 의견서를 인권위에 전달했다. 노동부가 거부한 업무상 질병 입증책임 배분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맞물려 이슈로 떠오른 문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다수 발생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승인을 거부했고,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재판에서 번번이 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피해노동자에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의학적인 연관성을 밝힐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5월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첨단 전자제조업이 발전하면서 산재입증이 쉽지 않고, 노동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산재보상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피해근로자가 아닌 상대방이 증명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 법령을 개정하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또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정기적으로 추가·보완하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독립성·공정성·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이러한 권고를 환영하면서, “2007년도 기준 국내 총 암 관련 사망자 중 4%인 2700여명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년 산재로 인정되는 직업성 암은 20~30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십수년 간 산재신청 시 사업주 날인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조차 바뀌지 않고 있다”며 “이번 인권위 권고를 계기로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이 이뤄지도록 행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최근 답변서를 통해서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확대와 질병판정위 전문성 강화는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입증책임에 대해서는 “업무관련성을 밝히기 어려운 질병에 무분별한 보상과 과도한 재정지출이 우려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기섭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관은 “입증책임을 공단에 부과한다면 의학적인 연관성이 명백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모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해 보험기금 재정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공단의 조사역량을 강화하고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를 넓혀 피해근로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인권위 권고안은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그 근거가 되는 사실에 대하여 입증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입증 책임의 일반원리에 반하는 내용”이라며 “업무와 질병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정부는 또다시 자본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계속 되는 조선소 사고…
산재 위험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조선업 하청노동자

조선소 노동자들의 사망과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재은폐와 임금체불 등 노동권 침해도 심각하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조합원이 있는 하청업체는 아예 폐업 조치되는 방식으로 원청이 노조활동을 방해해, 금속노조는 이런 횡포에 맞선 지역적 전략조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 23일 금속노조 전남지역지회,
“노동부 해체하라”

지난 10월 말 조선소 대형 폭발사고로 11명의 사상자를 낸 전남 영암군 대불산단 선박 블록제조업체에서 20여일 만인 11월 22일 안전사고가 또다시 발생해 70대 경비원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신안군 신안중공업에서도 근로자가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등 산업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10월 31일 오전 대불산단 내 원당중공업 바지선 작업장에서 가스가 폭발해 하청업체 근로자 베트남인 B(40)씨와 오아무개(47·여)씨가 숨지고 박아무개(36)씨 등 내국인 근로자 9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영암경찰서는 원당중공업 대표이사 김아무개(52)씨와 원당중공업 상무 이아무개(45)씨, 하청업체 민주ENG대표 김아무개(41)씨 등 5명을 형사입건했다.
또한 지난 11월 22일 밤 9시 30분께 영암군 삼호읍 대불산단 내 원당중공업에서 바지선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의 금속 와이어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인근을 순찰 중이던 경비원 이아무개(74)씨가 파편에 맞아 머리 등을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 중이나 의식불명으로 중태다.
금속노조 전남서남지역지회는 이날 사고가 “중량에 맞지 않은 두께의 로프를 사용한데다 무엇보다도 중량물 이동에 필요한 러그를 사용하지 않았고 철판 단부에 직접 고리체결해 와이어로프가 철판단부에 의해 파손되면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산재은폐 의혹도 일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신안중공업에서 태국인 노동자 K씨(38·남)가 선박 블록 구조물 작업 중 바닥으로 추락해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한 사건과 관련 “신안중공업이 산업재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두개골 함몰로 중상을 입은 중상환자를 구급차량이나 구급헬기를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로 읍 단위 병원으로 옮기고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사고발생 4일 만에 광주광역시 소재 조선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는데 노조는 “산재환자 초기 치료 논란과 함께 산업재해를 제대로 관할기관 등에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기 급급했다”고 비난했다.
23일 노동부 목포노동고용지청 앞에서 금속노조 전남서남지역지회 노조는 “연이어 발생한 산업재해는 안전관리자의 무능과 무책임도 원인이지만 진짜원인은 사고 발생 후 전반적인 산업안전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노동부의 직무유기에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노동자의 산업 재해와 임금 체불문제는 등한시 한 채 산업현장을 노동자의 피로 물들이고 있는 노동부의 뒷북행정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노동자의 세금을 갉아먹는 노동부를 해체하고 목포지청장을 파면하라”며 목포지청 현관 등에 페인트를 투척하며 기습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확대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
조선소 비정규 노동자들이 산재 위험부터 상시적인 임금체불, 속칭 ‘데마찌’로 통칭되는 무급휴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12일 한국조선협회에 따르면 조선노동자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주요 조선소 9곳(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한진중공업·신아SB·대선조선)의 하청노동자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7만6천670명으로, 전체 조선소 노동자 가운데 68.5%를 차지했다.
그런데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칠 위험은 원청 노동자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노동법이론실무학회’에 의뢰해 최근 발표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원·하청 관계의 사업주 책임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9대 조선소의 원청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2004년 17명에서 2009년 3명으로 5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반면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은 2004년 2명에서 2009년 10명으로 5배 늘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산재와 산재은폐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달 공장 내 탈의실에서 쓰러진 하청노동자를 응급차가 아닌 트럭에 실어 병원으로 후송한 현대중공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비정규직지회는 올 들어 발생한 10건의 산재은폐를 고용노동부에 고발해 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선업 경기침체로 인한 임금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중소 조선소가 몰려 있는 통영의 올 상반기 임금체불 건수는 지난해 대비 25% 증가했다. 올 연말께는 임금체불 금액이 105억 원 이상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8월에는 경남 진해 오리엔탈정공 조선소에서 하청업체가 1억7천만 원의 임금을 떼먹고 잠적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장실을 점거하는 등 임금체불로 인한 원·하청 노사갈등도 증가하는 추세다.
또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무기한 무급휴업을 하거나 출근한 뒤에 비가 온다는 이유로 무급휴일로 처리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106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1천552명을 대상으로 올해 6월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하청노동자 3명 중 1명꼴로 무급휴업을 경험했고, 이들 대부분은 사용자 귀책사유로 휴업을 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 조선소 ‘물량팀’을 아시나요?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통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최근 조선소마다 이른 바 ‘물량팀’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물량팀은 건설업으로 치면 십장 같은 제도다. 8~10명의 노동자들이 조선소 사내하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일했다. 도급단가의 13% 가량을 받아 동료들과 나눠 갖는다. 유보임금(일명 쓰메끼리) 25일치를 깔아 놓는 것도 건설업과 유사하다.
과거 물량팀은 파워공 같이 선박건조 업무 중 고숙련이 필요한 분야나 오작업 보수업무 등 갑작스러운 초단기 돌발작업에 투입되는 돌발팀 같은 형태로 운영됐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중소조선소가 난립하면서 고숙련 업무뿐만 아니라 취부·용접·사상 등 대부분의 공정에서 물량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기점으로 물량팀이 단기·일회성 하청에서 상시·고정적 재하청의 양상으로 자리 잡는 상황이다.
통영 중소조선소의 경우 하청업체 1곳당 최소 4개, 최대 10개 가까운 물량팀을 운영하고 있다. 재하청업체인 물량팀은 4대 보험 가입도 하지 않는다. 물량팀은 특수고용직 형태여서 4대 보험은커녕 임금이 체불돼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다. 앞서 설명한 대불산단 바지선 가스 폭발 사고 역시 중대형조선소 → 블록제작 공정 위탁 → 공정별 하도급업체 제작 → 물량팀으로 이어지는 3~7단계 재하도급 관행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속노조는 “조선소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금속노조, 조선업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 전개
금속노조는 지난 11월 12일 “울산과 경남 거제·통영·고성을 비롯한 남해안지역과 목포·영광 등 전남 서남지역의 조선벨트를 연결하는 거점지역에서 하청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적 불황의 영향으로 조선업 하청노동자의 산재은폐와 임금체불, 고용불안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노조는 2000년대 들어 한라중공업·현대중공업 등 주요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조합원이 있는 하청업체는 아예 폐업 조치되는 방식으로 원청이 노조활동을 방해해 조직화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0년 3월 노조활동을 이유로 폐업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청구소송에서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형 조선소의 이 같은 횡포에 맞서 노조는 사업장별 조직화가 아닌 지역별 조직화에 주력해 왔다. 2008년 전남 영광·신안·목포·영암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서남지역지회가 결성된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에는 현대삼호중공업을 제외하면 중소형·블록 가공공장을 중심으로 조선벨트가 형성돼 있다. 조선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현대미포조선 대불공장은 울산공장과 달리 95%가 하청노동자로 구성돼 있다. 노조는 지역지회에 취부·용접·마킹분회 같은 업종별 분회를 설치해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70여명의 노조원이 지회에 가입해 있다. 노조는 경남 거제·통영·고성지역 조선소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해안 벨트에는 중소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하청업체가 다시 재하청을 주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심각하다.
일터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 연아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